< Consumer >몇천만원에 골프장 수십 곳?… ‘입회금 돌려막기’로 버티는 사기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싼값에 골퍼들 홀리는 ‘유사 회원권’

‘강남 기준 1시간 내 명문 골프장 55여 곳 이용 가능. 주중 그린피 면제 또는 5만 원. 2년간 월 3팀, 총 72팀 이용. 골프텔 정회원가 이용.’골퍼라면 관심이 갈 만한 내용이다. 더구나 비용은 2년 계약에 1700만 원. 기존 회원권보다 싸게 여러 곳의 골프장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은 매력적이다. 하지만 이는 사기였다. 유사 회원권을 판매한 회원권거래소 대표 박모 씨는 신규 가입자의 돈을 기존 회원의 골프장 사용료로 썼다. 이른바 돌려막기를 한 것이다.

회사는 적자 상태로 돌아섰고, 결국 박 씨는 313명에게서 약 71억 원을 가로챈 뒤 베트남으로 도주했다. 경찰은 공조 수사를 통해 박 씨를 국내로 소환했지만, 소비자가 입은 피해를 보상받을 길은 없었다.

이처럼 유사 회원권은 ‘달콤한’ 광고 문구를 내세워 소비자를 유혹한다.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유사 회원권을 팔아 회원들에게 약 1500억 원의 피해를 안긴 T레저 역시 비슷한 수법을 사용했다. T레저는 ‘2630만 원 비용에 매년 48회씩 3년 동안 그린피를 지원하고 1000만 원은 보증금으로 5년 만기 양도성 예금증서 발행’이라고 홍보했다. 하지만 회원들은 만기가 되고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유사 회원권은 골프 회원권과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 골프 회원권은 골프장이라는 ‘부동산’ 혹은 ‘현물’이 존재하고 이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배타적 권리를 한정된 사람에게 파는 것을 뜻한다. 체육시설의 설치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장의 승인을 받아야 판매할 수 있고, 골프장을 운영하는 업체가 한국골프장경영협회에 등록 절차를 거친 후 발행한다. 회원권을 무제한으로 판매할 수 없으며 회원권을 구입하면 취득세도 내야 한다.

하지만 유사 회원권은 골프장을 보유하거나 운영하는 업체가 판매하는 것이 아니다. 골프장이라는 체육시설을 보유하지 않은 업체가 골프장과 일정 기간 부킹 등의 제휴를 맺은 뒤 이를 근거로 회원권이라는 이름으로 파는 것이다. 체육시설을 보유한 것이 아니기에 지자체장의 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고 골프장경영협회에 등록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다.

유사 회원권 판매업체들은 대부분 입회금 외에 수입이 없다. 입회금을 활용한 사업을 통해 이익을 창출해야 회원들에게 약속한 혜택을 줄 수 있지만, 그런 사업 구조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 2010년대 초반 검찰에 적발돼 유죄가 선고된 한 업체의 판결문을 보면 이런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가입자로부터 받은 입회금 중 부가가치세, 판매대행수수료를 제외한 실질적인 수입금 중에서 일정 시점에 가입자에게 돌려줘야 하는 보증금을 공제하면 회사가 그린피를 지원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자금은 50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 업체는 회원들에게 1회당 5만 원씩, 매월 3회, 1년 중 9개월, 3년 동안 그린피를 지원한다고 약속했다. 3년간 그린피 지원에 필요한 돈은 405만 원이다.

하지만 이 업체는 부족한 350만여 원을 마련할 방법이 없었다. 나중에 돌려줘야 할 보증금을 활용해 부족한 그린피 지원금 이상의 수익을 내야 했지만 어떤 수익도 창출하지 못했다. 이들은 나중에 들어온 회원들의 입회금을 그린피 지원 등에 활용했고 업체는 매년 수십억 원의 손실을 냈다. 법무법인 로고스의 전용희 변호사는 “문제가 된 유사 회원권 사례를 살펴보면 사실상 금융 다단계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이윤을 낼 수 있는 사업 구조 없이 입회금 돌려막기로 버텨 온 사기였던 것이다. 이 때문에 판매업체는 무한정 회원권을 판매한다. 손실을 메우려면 입회금을 계속 받는 방법밖에 없다. 법률의 구속을 받지 않아 회원권을 계속 찍어 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조금만 따져 봐도 유사 회원권이 허구라는 점을 알 수 있다고 지적한다. 골프장 한 곳에서 발행하는 회원권 가격이 많게는 수억 원에 달하는데 수천만 원에 여러 곳을 이용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특히 회원권이라는 상품은 살 수 있는 권리를 비싸게 판매하는 대신 상품의 가격은 최대한 낮추는 구조로 돼 있다. 즉, 회원권을 보유해야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갖거나 다른 사람보다 싸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골프장 등 시설운영업체가 경쟁업체보다 월등하게 낮은 가격에 회원권을 판매할 이유가 없다. 이현균 에이스회원권 애널리스트는 “휘황찬란한 광고만 볼 것이 아니라 과연 제시한 조건이 실현 가능한지 먼저 따져 봐야 한다”고 말했다.

조성진 기자 threeme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