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lobal Focus >정권교체 희망 부푼 케냐… ‘독재 → 부패 → 가난’ 악순환 끊나

내달 17일 大選재선거 주목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는 케냐 나이로비의 빈민가 키베라. 이곳에서 재봉 일을 하며 생계를 꾸리는 한 아이의 엄마 제인 이스카 오요라는 “춤을 추고 또 췄다”며 기쁨을 표했다. 지난달 치러진 대통령 선거를 무효화하고 재선거를 치르라는 케냐 대법원의 판결이 나온 직후다. 그러나 ‘부정 선거’라는 지적을 받아온 이번 대선에 대해 이례적으로 재선거 결론이 내려졌음에도,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케냐의 ‘뿌리 깊은’ 유혈사태가 이번을 끝으로 마감될지는 미지수다.

8일 외신들에 따르면, 케냐는 대법원의 판결로 오는 10월 17일 대통령 재선거를 치른다. 우후루 케냐타 현 대통령이 승리한 지난 8월 대선이 ‘부정선거’라고 주장해온 야권 후보 라일라 오딩가 전 총리 지지층은 환호하고 있다. 외신들도 대법원이 현재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사상 초유의 대선 무효 결정을 했다는 것을 고무적인 일로 평가한다. 비로소 케냐에도 진정한 민주주의가 찾아오느냐는 희망찬 전망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케냐 안팎에선 아직 폭동을 우려하는 시선이 멈추질 않고 있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기 전에도 20명 이상이 대선 불복 시위를 하다 사망했다. 재선거에서도 케냐타 대통령이 승리할 경우, 야권의 오딩가 후보가 승리할 경우, 양쪽 모두 시위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케냐타 대통령은 케냐 내 최대 부족인 키쿠유족 출신이다. 키쿠유족은 2002년부터 대통령을 독점해 왔다. 여기에 맞서는 오딩가 전 총리는 소수 부족인 루오족 출신으로 1997년, 2007년, 2013년, 그리고 지난 8월 대선까지 총 네 번의 대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지난 2007년 대선은 특히 끔찍했는데, 당시 오딩가 후보의 득표가 키쿠유족 출신인 므와이 키바키 당시 대통령보다 앞서자 개표 방송이 중단됐고 개표 부정 시비가 일었다. 결국 키쿠유족과 루오족 간 유혈 사태로 번졌고 1500명가량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폭력으로 얼룩진 케냐 대선의 역사는 훨씬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한 독립 투쟁 끝에 케냐가 영국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것은 1963년. 그러나 독립 이후에도 백인의 자리를 대체한 극소수 지배층에 부와 권력이 편중됐고 부정부패는 끊이질 않았다.

1978년 건국의 아버지라 불린 조모 케냐타가 갑자기 숨진 뒤 대통령직을 승계한 대니얼 아랍 모이는 24년을 장기 집권했다. 냉전이 막을 내린 뒤 모이 정권은 압력에 못 이겨 1992년 다당제를 받아들였다. 그해 12월에 치러진 총선은 역사상 처음으로 복수의 정당이 참여했는데, 당시 선거를 전후로 폭동이 잇따르며 수십 명이 사망했다. 부패한 정치인들이 부족 간 비방전을 부추기면서다. 그때부터 케냐에서 지방선거, 의회선거 등 선거가 있을 때마다 부족 간 유혈 충돌은 ‘관례’가 됐다.

하지만 단순한 부족 간 갈등으로 치부할 순 없다. 우선 가장 큰 원인은 뿌리 깊은 선거 불신에 있다. 이는 선거를 장기 집권의 수단으로 이용, 조작해온 권력자들에서 기인한다. 독립한 뒤 지난 2007년까지 케냐의 헌법은 약 30번 개정됐다. 사법부와 입법부를 희생시키고 대통령직의 힘을 강화하는 동안 케냐 국민은 소외됐다. 심지어 권력자들은 케냐에 만연한 부정부패를 묵인하며 자신의 주머니를 채웠고, 그러는 사이 나이로비의 빈곤지역은 더욱 늘었다. 케냐 부채구조 네트워크의 정치 분석가 카야마 카라는 “케냐의 정치 지도자들은 개인적 이익을 위해 국가의 자원을 통제함으로써 이익을 챙겼다. 이로 인한 케냐 국민의 좌절감은 엄청나다”고 분석했다.

케냐는 국제투명성기구가 조사한 지난해 투명성 지수가 167개국 중 145위의 하위를 기록한 부패국가다. 올해 케냐의 국내총생산(GDP)은 751억 원으로 세계 68위다. 화훼와 관광 산업이 중심이 되어 이끈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그러나 케냐 국민의 절반 이상은 빈곤에 허덕인다. 이들 ‘절반’의 분노가 선거 때마다 폭력 사태로 표현된다는 분석도 있다. 여기다 ‘All or Nothing’으로 표현되는 케냐 정치도 극단적 충돌을 부추긴다. 독재는 부정부패를 낳고 부정부패는 가난을 낳는다. 가난은 국민의 분노를 낳았고 분노는 폭동으로, 유혈 사태로 번져왔다. 다음 달 치러질 대통령 재선거가 이 불행한 고리를 끊어낼 작은 계기가 될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박세희 기자 says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