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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김회평 논설위원 게재 일자 : 2017년 09월 22일(金)
‘골목’에 갇힌 유통 혁신·일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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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평 논설위원

2000년대 초반 백화점 셔틀버스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고객의 편의를 위해 상권 내 행선지별로 버스를 운행하는 형태였다. 2001년 6월 금지법안이 통과됐다. 지역 상인과 버스업자를 의식한 국회의원들이 앞장섰다. 셔틀버스가 동네 손님들까지 끌어가는 바람에 골목상권이 죽는다는 논리였다. 결과는 어땠을까. 고객은 승용차를 몰고 나섰고, 셔틀버스 기사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운행비를 아낀 백화점은 성장세를 이어갔다. 동네 가게가 나아졌다는 흔적도, 시내버스 고객이 늘었다는 얘기도 없었다. 그저 소비자만 불편해졌을 뿐이다.

10년쯤 지나 선의(善意)를 앞세운 유사한 규제가 나왔다. 이번엔 주 타깃이 대형마트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2년 월 2회 휴업·영업시간 단축 규제가 시작됐고, 이후 강도를 높이는 과정을 밟았다. 이번에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직후에 나온 조사로는 대형마트 근로자 3000명가량이 일자리를 잃었고, 그중 93.5%가 비정규직이었다. 마트 매출도 꺾였지만, 납품하던 농수축산업 종사자와 중소업체 매출 역시 떨어졌다. 마트가 쉰 휴일 전통시장 매출도 의미 있는 변화는 없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7년 정치권에서 대형마트 규제론이 불거지자 당시 산업자원부는 ‘문제는 많고 효과는 적다’는 보고서를 냈다. 그랬던 것을 임기 초 친시장을 내세운 이명박 정부가 ‘친서민·공정사회’로 선회하면서 밀어붙인 것이다.

거대 유통업체가 골목상권을 침해한다면 물론 방관할 일이 아니다. 다수 시민이 유통 규제에 따른 불편을 감수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규제 5년이 지나면서 성과를 따져본 여러 연구 분석 결과는 가해자 대 피해자로 보는 세간의 통념을 뒤집는다. 요약하면 이렇다. 전통시장의 일평균 매출은 2012년 4755만 원에서 2015년 4812만 원으로 미세하게 늘었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사실상 줄어든 것으로, 규제 효과가 없었다는 뜻이다. 전국 5개 전통시장에서는 대형마트 의무 휴무일보다 영업일에 최대 957명이 더 찾아왔다. 신용카드 사용 내역을 추적했더니 대형마트 이용 고객의 60% 이상이 당일 반경 1㎞ 이내의 음식점·편의점·슈퍼마켓 등에서 구매했다. 대형마트 매출이 늘면 인근 골목상권 매출도 늘었고, 대형마트 고객이 특히 몰리는 주말엔 그런 연동 추세가 두드러졌다. 충남 당진을 비롯해 26개 시·군에서 다른 이도 아닌 전통시장·소상공인 주도로 주말의 대형마트 휴무일을 평일로 옮겼다. 부산 연제 이마트 등의 입점은 지역 상인의 반대를 소비자 대표들이 나서 관철했다. 규제의 오류를 시장 참여자가 앞장서서 교정한 사례다.

또다시 ‘유통괴담’이 나돈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이미 발의된 규제 법안들을 합친 ‘패키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이달 중 발의할 예정이다. 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다. 이번에 벼르는 대상은 복합쇼핑몰이다. 대형마트 수준의 영업 규제를 하되, 기존의 월 2회 휴무를 4회로 늘리는 방안도, 신고제를 허가제로 바꾸는 출점 규제도 거론된다. 덩치 큰 유통업체는 아예 나올 생각도 말라는 메시지다. 최근 문을 연 스타필드 고양은 음식점을 빼고도 오락·스포츠 시설이 30%다. 주말에 가족 단위로 찾는 일종의 테마파크 시설이다. 대형 유통업체 등장은 탐욕이 아닌 혁신의 산물이다. 유통은 단순히 상품을 파는 것을 넘어 라이프사이클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인근 전통시장의 손익과 나란히 비교하는 건 난센스다. 정부·여당은 오류로 드러난 지난 5년의 규제를 폐기하는 대신 ‘형평’ 논리로 복합쇼핑몰 등에도 똑같이 적용하겠다는 식이다.

문 대통령은 일자리 상황판까지 만들어 고용에 올인하겠다고 했다. 제조업보다 확실하게 보장되는 일자리가 서비스업, 특히 유통이다. 대형마트가 출점하면 500∼1000명, 복합쇼핑몰은 5000명 안팎의 일자리를 만들고 간접 고용효과는 이보다 3∼4배 더 크다. 일자리 상당수는 그 지역에서 뽑는다. 대형 유통업체 입주자의 절반은 평범한 소상공인이다. 바깥의 자영업자와 다를 바 없다. 대형마트 규제 이후 마트도 전통시장도 매출세가 함께 꺾였다. 오프라인 소비 자체가 실종된 것이다. 영업 규제는 매출과 수익, 고용을 함께 줄인다. 소득주도 성장과도 어긋난다. 저성장시대에 빈부 논리에 사로잡혀 일자리를 내치는 정부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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