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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김회평 논설위원 게재 일자 : 2017년 10월 23일(月)
民意 오독한 ‘탈원전 마이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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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평 논설위원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 재개로 판가름난 직후 청와대는 “감동적”이란 엉뚱한 반응을 내놓았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초 던진 회심의 카드가 압도적 표차로 좌절됐다면 ‘참담’ 아니면 최소한 ‘유감’ 표명이 상식일 텐데, 일종의 동문서답을 한 셈이다. 사안을 정면돌파하기보다 얼버무리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사실 그동안 시중에선 문 정부 내에서 급진적인 ‘탈원전’ 정책을 누가 실권을 갖고 총지휘하느냐는 의문이 계속 떠돌았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국산 원전의 당위성과 우수성을 받아들였다. 두 정권을 계승한다는 문 정부 들어 유독 원전 배척으로 급선회하면서 갸웃거리는 반응이 적잖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탈원전 공약에는 환경운동가 중심의 이른바 ‘4인방’이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 한 사람인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는 7월 한 강연에서 “문 캠프에 들어가 탈원전 정책을 계속 제안했더니 싹 받아줬다. 이게 정부 정책이 돼버렸어”라고 했다. 온 나라에 평지풍파를 일으킨 정책이 치열한 토론이나 정교한 검증 없이 뚝딱 결정됐다면 놀라운 일이다. 원전은 고도의 과학기술과 복잡한 변수가 얽힌 ‘100년 사업’이다. 원자력·에너지 전문가나 관료, 혹은 참모들까지 배제된 탈원전 공약이 순항한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에너지는 국가 안보, 국방, 경제, 모두의 심장이다.” 에너지 분야 석학인 리처드 뮬러 미 버클리대 교수가 ‘대통령을 위한 에너지 강의’에 쓴 말이다. 그래서 대통령은 에너지만큼은 깊숙이 알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에너지 안보와 기후변화가 양대 쟁점이다. 문 정부 탈원전 정책은 이 두 가지 측면 모두에서 취약하다.

러시아는 2006년 1월 돌연 우크라이나로 가는 천연가스 공급을 끊어버렸다. 가스 요금을 4배 올린다고 일방 통고한 뒤 협상에 성의를 안 보였다는 이유에서다. 우크라이나는 물론, 이곳과 파이프라인이 연결된 유럽 주민들은 난방 없이 혹한을 견뎌야 했다. 러시아는 이후에도 정치·경제 이슈가 있을 때마다 툭하면 압박용으로 주변국에 ‘가스시위’를 벌여왔다. 에너지 안보를 남의 손에 맡긴 나라의 비극이다. 천연가스는 문 정부가 원자력의 주 대체재로 설정한 연료다. 원자력은 사실상 국산 에너지다. 반면 LNG는 철저히 외부 변수에 좌우되는 발전원이다. 더구나 한국은 지형상 유사시 연료를 끌어올 수도 없는 ‘에너지의 섬’이다. 원전 축소론은 에너지 안보를 타국에 넘기자는 얘기다. 기후변화 측면에서도 이산화탄소 배출이 없는 원전을 LNG로 대체하면 친환경 흐름에 역주행하는 아이러니를 낳는다. 저명한 환경운동가 마이클 셸런버거는 “한국 원전을 모두 없애면 2700만 대의 휘발유 차량이 더 도로를 달리는 격”이라고 했다.

한국의 원전, 나아가 에너지 논의에서는 산업 측면도 빠질 수 없다. 한국 원전기술은 이승만 정부 시절 맨땅에서 시작한 뒤 60년 적공(積功)으로 세계 최고 수준에 올랐다. 세계 6대 수출국 지위는 물론, 안전성을 대폭 높인 제4세대 원전에서 미국·유럽의 까다로운 품질 관문을 앞서 통과하고 있다. 한국형 원전은 공사 기간, 효율성, 고장정지율 등에서 경쟁국들을 단연 앞선다. 원전은 사양산업이 아니다. 지난해 신규 설비용량은 25년 만에 최대였다. 반도체 못지않은 성장 잠재력을 지닌 국내 산업의 든든한 자산이다. 원전 자립화를 위해 미국·일본·프랑스 등 선진 기술국과 힘든 싸움을 해온 엔지니어들은 피땀 어린 성과를 내치려는 문 정부를 향해 배신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문 대통령은 22일 신고리는 신고리이고, 탈원전은 탈원전이란 취지로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공론화위원회에서 표출된 민의(民意)는 특정 발전소의 운명을 넘어 급격한 탈원전이 가져올 재앙을 경고한 것으로 봐야 한다. 유감 표시조차 없는 문 대통령의 마이웨이는 의도적인 오독(誤讀)이다. 뮬러 교수는 ‘대통령’의 에너지관(觀)을 언급하며 “역사에 당신의 이름을 남기고 싶다면 비전을 가져야 하며, 과학과 객관적 분석을 믿어야 하며, 장기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에너지 안보야말로 대통령이 ‘운전대’를 잡고 냉철한 판단으로 국익과 시민편익을 최대화하는 것이 관건이다. 편향·졸속의 탈원전 정책에 집착해 에너지를 소모할 일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원점에서 국가 에너지의 큰 그림을 다시 그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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