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평법 개정안 비상>“1개 물질 300곳이 쓰면 등록 협의체도 300개… 문 닫으란 얘기”

정부 “절차 간소화 하겠다”
업계 “근본적 대책 아니다”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화평법) 개정안이 국회 논의를 앞둔 가운데 해당 안이 시행될 경우 중소기업의 경영 불안이 가중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최근 정부가 화학물질 등록절차를 간소화하고 경영 어려움에 따른 기업 긴급경영자금을 지원하는 보완책을 마련한다고 밝혔으나 업계 안팎에서는 ‘근본적 대책’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염료안료공업협동조합 관계자는 23일 문화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화학물질 1개 등록비용이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까지 이르는데 화평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등록해야 하는 물질이 평균 300개에 육박한다”면서 “염료·안료 업계는 연쇄 도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막대한 비용 외에도 전담인력 확보 등 현실적 문제도 중소기업들의 고민을 깊게 한다. 화학업계 A사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고작 2개 물질에 대해 공동 등록을 했다”면서 “직원 수가 10명 수준인 우리 회사 입장에서 전담 직원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화학업계 B사 관계자는 “하나의 물질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업체 수가 300개라면 공동 인증을 위해 구성해야 하는 협의체만 300개에 달해 비현실적”이라고 말했다. 특히 업계에서는 국내 화학업체 가운데 96%인 1만5000여 곳이 중소기업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의 우려가 쏟아지자 최근 정부는 관계기관 공동으로 유해성이 발견되지 않은 물질에 대해서는 제출자료를 간소화하고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등록비용, 컨설팅 등을 지원하는 대응방안을 내놨다. 그러나 근본적 대책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전문가는 “기업이 (유해) 화학물질 데이터 등록의 책임주체가 되고 미이행 시 과징금이 부과되는 부분에 변화가 없어 근본 대책이 아니다”라면서 “정부 발의 개정안에 대한 일부 수정계획을 반영하겠다는 것으로 오히려 정부개정안 철회 의사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더욱이 지난 9월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했을 당시 야당에서 비난이 제기됐던 것을 감안하면 보완책조차도 국회 반발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당시 국민의당 측은 원내정책회의 발언을 통해 “국민 안전을 지키는 정부이기를 포기한 것”이라는 비판했다.

임정환 기자 yom724@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