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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7년 11월 08일(水)
로마풍 성당 - 한옥 사제관 ‘東西 조화’… 파격적 근대건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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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 있는 대한성공회 서울 대성당 전경.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설계돼 1926년 헌당됐다. 자료사진
▲  근대 한옥 건물의 이정표로 인정받는 대한성공회 서울 대성당의 구사제관. 당시에는 기존 한옥 건축도 벽돌 구조로 개조되는 상황이었기에 성당의 업무 시설 겸 사제관을 한옥으로 지은 것은 획기적인 일이었다. 안창모 제공


■ 안창모의 도시 건축으로 보는 서울 - ⑨ 성공회 서울대성당

로마네스크 양식 예배당 건물
한식 기와·사각종탑 등 사용
인근 덕수궁 풍경과 어우러져

두 차례 꺾인 구조의 사제관
벽난로 갖춘 유일한 근대한옥
신발 신고 출입하는 것도 독특

수녀원 건물 벽돌로 지었지만
서학당길에 면한 정문은 한옥
도심 복판서 조선 옛길의 운치

성당 앞 남대문세무서 철거
조선·대한제국 역사 담아낼
서울의 새 명소 거듭날 채비


대한문 앞에 위치한 서울광장은 근대 한국의 출발점이자 대한제국에서 오늘에 이르는 근현대의 역사가 고스란히 펼쳐져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근대 한국의 출발점인 덕수궁이 있고, 일제강점기 식민 지배의 중심을 관통하는 태평로(현 세종대로)가 지나가고, 태평로 변에는 성공회 대성당과 서울시의회와 서울시 신청사 구관과 신관이 있으며 광장의 다른 편에는 환구단과 더플라자호텔 등이 있어, 이들 건물과 도시 공간에 담긴 역사를 엮으면 1897년 대한제국 출범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현대사를 구성하기에 충분하고도 넘친다. 우리의 근현대사는 항상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지만, 이곳에는 이국적이면서도 매우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오는 건축이 있다. 성공회 서울 대성당이다.

성공회 선교는 1890년에 조선에 입국한 찰스 존 코프(Bishop Charles John corfe, 한국명 고요한) 주교가 시작했다. 그리고 여느 외래 종교와 마찬가지로 선교 초기에 한옥이 교회로 사용됐다. 이때 교회는 장림성당(The Church of Advent)으로 불렸다. 선교 초기에 한옥이 교회로 사용된 것은 서양식 교회를 지을 기술과 전문가가 없는 상황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따라서 우리와 서구 문화의 만남이 잦고 깊어지면서 이 땅에서 한옥 교회는 점차 사라졌다. 1892년 우리나라 최초의 벽돌식 성당인 약현성당이 등장하고, 연이어 1897년 정동제일교회 그리고 1898년 명동성당이 등장한 게 대표적인 예다.

대부분의 교회는 붉은 벽돌로 지어졌다. 그런데 성공회의 행보는 달랐다. 1892년에 첫 한옥 교회를 지은 후 1900년에 강화도에 지은 성공회 강화 성당은 이 땅의 한옥 교회 건축에 이정표를 세운 건물이다. 강화 성당이 우리 건축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갖는 것은 교회의 제례 의식에 맞춰 탄생한 서양의 교회 공간 구조를 전통 목구조로 완벽하게 구현했기 때문이다.

이후 성공회는 1926년 서울에 대성당을 건축하면서 근대 한옥 건축에 또 하나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이 땅에서는 처음으로, 온전한 로마풍 건축양식(로마네스크)의 교회를 지으면서 동시에 업무 시설이자 숙박 시설인 사제관을 한옥으로 지었기 때문이다. 1920년대 대도시에서는 이미 한옥 교회와 선교 시설들이 벽돌로 건축되기 시작했고, 기존 한옥 건축도 벽돌 구조로 개조되는 상황이었기에 대성당을 지으면서 성당의 업무 시설 겸 사제관을 한옥으로 지은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사실 성공회 대성당 권역에는 여러 채의 한옥이 있다. 성당과 함께 지은 사제관 외에도 사제관 옆에는 궁궐 건축의 풍모를 지닌 한옥이 있으며, 사제관 뒤에 위치한 수녀원 안에도 100년은 족히 됐음 직한 한옥이 있다. 서학당길에 면한 수녀원 정문도 한옥 양식으로 지어졌다.

▲  성당 내부 전경, 구사제관 벽난로, 서학당길에 면한 수녀원 정문. (왼쪽부터)

성가수녀원(김원 작)의 정문인 솟을대문이 붉은 벽돌 건물의 한복판에 위치한 것도 놀랍지만, 솟을대문이 붉은 벽돌의 수녀원과 함께 만들어내고 있는 서학당길의 운치는 번잡한 도심 속 조선 시대 옛길의 멋과 여유로움을 제공해 준다.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근대 한옥이 지속적으로 지어진 것도 예사로운 일이 아니지만 로마네스크풍 석조로 지은 것 역시 당시 이 땅의 교회 건축에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당시 성공회 서울 대성당은 1922년 당시 교구장이었던 마크 트롤로프(Mark Napier Trollop, 한국명 조마가) 주교의 구상에 따라 건축가 아서 딕슨(Arthur Dixon)의 설계로 지어졌다. 조마가 주교가 단순하면서도 순수한 형식의 로마네스크 건축양식을 택한 것은 교회의 발전과 교회 건축양식의 연계성을 볼 때 한국 기독교의 종교적인 깊이는 서양의 로마네스크에 해당한다고 보았으며 고딕보다는 로마네스크가 한국적 풍토와 전통에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동시에 서울 대성당 곳곳에는 전통건축의 요소가 사용되었다. 서양 건축양식의 건축적 성과를 이뤄내면서도 처마 끝부분의 처리, 화강석의 사용, 대성당의 창호 디자인, 지붕의 한식 기와, 그리고 덕수궁의 팔작지붕과 어울려 대화하는 듯한 사각 종탑 등은 덕수궁의 풍경과 어우러져 거대한 규모의 서양 건축의 과시적인 형태에서 오는 거부감을 해소하고 이국적이지만 친숙한 풍경을 만들고 있다. 이는 성공회가 교회 건축의 전형을 고수하기보다 선교지의 장소성과 역사 그리고 정서를 받아들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로마네스크 건축의 분위기가 펼쳐진다. 일반적인 고딕 교회 건축의 경우 스테인드글라스와 고딕 건축양식이 화려함과 신성함을 연출하지만, 서울 대성당은 빛의 연출보다는 육중한 석조 건축이 갖는 진중함이 성당을 찾는 이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고, 금색으로 빛나는 제단 끝으로 시선을 이끈다.

제단 뒤편에는 1938년 조지 잭(George Jack)의 디자인으로 제작된 모자이크 벽화(등록문화재 제676호)가 있다. 반 돔형 상부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고, 아래로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마리아가 중심에 위치하며 왼편에 성 스테파노, 사도 요한 그리고 오른편의 성 이사야와 성 니콜라스 주교가 묘사돼 있다. 예수가 들고 있는 책에는 ‘나는 세상의 빛이다(EGO SUM LUX MUNDI)’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성공회 서울 대성당에서 반드시 들러야 할 곳 중의 하나가 지하 성당이다. 지하 성당은 대지의 경사면을 이용해 지어졌기에 지하의 느낌은 나지 않지만, 홀로 기도하기 적절한 규모의 작은 성당으로 지상의 성당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연출된다. 화려함보다는 현대적인 감각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비치는 실내 분위기도 새롭지만, 성당의 바닥 동판 아래 조마가 주교의 유해를 모신 것이 지하 성당의 분위기의 중심이다.

성당을 나와 안쪽으로 걸어가면 야트막한 언덕 위에 위치한 사제관과 수녀원 그리고 양이재로 불리는 주교관을 만나게 된다. 로마네스크 건축양식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한옥 건축이지만, 둘 사이에 이질감이 전혀 없다. 그 중심에 한옥 사제관(현 사무실)이 있다. 야트막한 경사지에 위치한 작은 사제관이 취하고 있는, 성당을 품에 안을 듯한 자세는 두 건물의 스케일 차이를 소멸시킨다.

두 번의 꺾임을 갖고 있는 사제관은 분명 한옥이지만 우리가 평소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한옥이다. 안으로 들어가 보면 여느 한옥과는 정말 다르다. 일단 신발을 신고 들어가는 한옥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좌식 생활을 중심으로 발달한 한옥에서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성공회 사제관은 신발을 신고 들어가도록 설계됐다. 서양식 숙소 기능과 사무 기능이 복합된 건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한옥의 마루 기능을 대신해서 거실이 마련됐고, 거실에는 벽난로가 설치됐다. 전국적으로 많은 근대 한옥이 있지만 벽난로가 있는 근대 한옥은 성공회 사제관이 유일할 것이다. 한옥 목구조를 따르고 있지만 붉은 벽돌로 채워진 벽체는 한옥의 풍취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서양인의 삶과 업무 기능을 동시에 수용하기에 전혀 손색이 없도록 만들어졌다.

사제관 옆에도 범상치 않은 한옥이 있다. 대한제국의 역사를 안고 있는 양이재(養怡齋)다. 대한제국 때 황실과 귀족 자녀를 위한 교육기관인 수학원 건물로 지어졌으나 일제강점 이후 용도가 폐기됐고, 1920년 이후부터 성공회가 소유하고 있다. 지금은 주교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사제관과 달리 목재의 크기와 나무를 다듬은 솜씨 그리고 목구조의 결구 솜씨가 궁궐 목수의 격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발걸음을 성당 밖으로 옮겨 오른편에 위치한 영국 대사관을 뒤로하고 덕수궁 돌담길을 향해 나서면 성공회 회관이 보인다. 현대 건축으로 두드러진 모습은 아니지만, 한국 현대 건축을 대표하는 김중업의 작품이다. 성공회 회관에서 프랑스 대사관으로 대표되는 김중업의 작품세계를 엿보기 힘든 것은 김중업이 외유 중이던 시절에 설계되면서 국가사적 주변 경관 심사 과정에서 디자인이 변경됐기 때문인 듯하다.

성공회 회관은 건축가보다는 회관 자체로 우리 현대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긴 건축이다. 1976년 개관된 세실극장은 제1회 대한민국 연극제(1977)의 산실이었으며, 1979년 가족 레스토랑으로 문을 연 세실 레스토랑은 1985년 한국 현대 정치사의 상징적 인물인 김대중과 김영삼의 회동 장소였다. 그리고 성공회 성당이 민주화 운동의 성지로 자리 잡으면서 세실 레스토랑도 오랫동안 시민단체들의 성명서 낭독 장소가 됐었다.

2009년 세실 레스토랑이 30년 만에 문을 닫았지만, 성공회 성당과 성공회 회관을 가로막고 있는 남대문 세무서가 철거되면서 조선의 역사를 담은 서학당길과 대한제국의 역사를 담은 세종대로가 만나는 현장에 조성될 세종대로 특화 공간은 성공회 성당과 함께 서울의 새로운 명소로 거듭날 것으로 예상된다. (문화일보 10월 18일자 28면 8 회 참조)

안창모 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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