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폭력과 모든 弱者에 대한 성찰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 ‘82년생 김지영’이후 페미니즘 소설 열풍 왜

조남주 등 3040 女性 작가 7인
소설집 ‘현남 오빠에게’ 펴내
스스로를 각성하는 자기 고백

여성혐오 분위기로 촉발됐지만
동성애·노인 우리 모두의 문제

조남주(39) 작가의 페미니즘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민음사)이 베스트셀러를 넘어 ‘스테디셀러’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민음사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출간 이후 1년여간 판매량이 약 42만 부. 올해 가장 주목받았던 소설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기사단장 죽이기’(문학동네)가 2권 합쳐 약 50만 부였던 점을 고려하면 1권짜리로는 대기록이다. 왜 지금 다시, 페미니즘 소설일까.

13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다산북카페에서는 조남주·김이설(42)·최정화(38) 등 여성 소설가 7명이 참여한 페미니즘 소설집 ‘현남 오빠에게’(다산북스)의 출간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 책은 ‘82년생 김지영’의 성공에 착안해 아예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세운 기획 작품이었다. 최은영(33)·손보미(37)·구병모(41)·김성중(42)까지 최근 가장 주목받는 ‘3040’ 여성 작가들이 ‘페미니즘’이라는 주제 아래 마음껏 상상력을 펼쳤다.

조남주 작가의 표제작은 전작의 분위기를 잇고 있다. 오랜 기간의 교제 끝에 청혼한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고하는 한 여성의 이야기다. 연애와 사랑이라는 달콤함 속에 감춰진 남성 중심주의적 사고를 꼬집는다. 늘 남자친구에게 끌려다녔던 여성이 독립된 자아를 찾은 후에 내뱉는 말은 매우 단호하고 직설적이다. 최정화 작가의 ‘모든 것을 제자리에’는 가해자와 피해자로서의 남성과 여성이 아닌, 여성 자신의 각성을 다루고 있다. 여성이지만 그 안에 있을지도 모르는 남성성과 여성 혐오에 대한 솔직한 자기 고백이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조 작가는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리뷰를 보면서 남성들도 여성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았다. 단지 지금까지는 그런 기회가 부족했을 뿐”이라며 “책이 내용 자체로 언급되기보다 그 이야기를 통해 ‘나도 이런 문제의식을 느꼈다’고 공감한 게 의미 있는 것 같다. 이번 책도 매개체 역할을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놓고 페미니즘을 드러내진 않지만 사회적으로 소외된 인간으로서의 여성을 바라보는 소설들도 앞다퉈 출간되고 있다. 김혜진(34)의 ‘딸에 대하여’, 최진영(36)의 ‘해가 지는 곳으로’(이상 민음사), 손원평(38)의 ‘서른의 반격’(은행나무) 등은 현대 여성들이 딸로서, 엄마로서 일상 속에서 부딪치는 편견을 다룬 작품들이다.

이처럼 페미니즘 소설이 부쩍 조명받는 이유는 사회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평단의 분석이다.

지난해엔 여성 인권을 침해하는 사건·사고가 참 많았다. 강남역 살인사건에 이어 문단 성폭력이 도마 위에 오르면서 여성 혐오가 사회적 문제로 지적됐다. ‘82년생 김지영’은 바로 그 시점에 나와 페미니즘을 새삼 촉발했다.

하지만 지금의 페미니즘은 일상의 불평등과 부조리를 지극히 평범한 사람의 시각에서 다뤘다는 점에서 1990년대 논쟁적이며 직설적이었던 페미니즘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남성과 여성의 대결적 상황이 아니라 사회적 강자와 약자라는 인간관계에 대한 보편적 성찰에 가깝다.

‘경년’의 김이설 작가는 “페미니즘 이름으로 묶였다고 해서 남자들과 싸우자는 의미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서로의 의미를 쓰다듬는 시간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강조했다.

‘82년생 김지영’ ‘딸에 대하여’의 편집자인 박혜진 민음사 과장은 “‘82년생 김지영’의 출간을 준비하던 2015년 하반기부터 사회적으로 페미니즘적 분위기가 있었던 건 사실”이라며 “하지만 비단 여성들의 이야기를 떠나 동성애와 노인 등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서사가 독자의 관심을 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