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편안할까?…한국 전통건축의 지혜와 원리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 건축의 정체성 / 이상헌 지음 / 미메시스

“왜 한국의 전통 건축은 우리에게 정서적 안락감과 심미성을 주는 것일까? 이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우리의 건축문화 유전자는 여전히 잠재돼 있다. 전통의 이론화는 무의식적으로 전승되는 한국 건축의 전통을 자의식적으로 이론화하는 것이다. 즉 잠재하는 것의 구체화이다. 이를 통해 한국 건축의 장점과 지혜를 현대적으로 계승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저자 이상헌(건국대 건축전문대학원) 교수는 이 책의 집필 의도를 서문에서 그렇게 밝혔다. 저자는 앞서도 ‘대한민국에 건축은 없다’(2013)란 책으로 건축학도는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큰 울림을 안겨주었다.

우리가 건축이라고 번역하는 아키텍처는 서양에서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다양한 학문을 배경으로 하는 지적 작업이었다.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는 건축가는 수학, 인문학, 천문학, 의학 등 다양한 분야에 능통해야 한다고 기술했다. 그와 같은 발상에서 서양에서는 아키텍처가 체계적 이론을 갖춘 학문으로 발전했다.

그러면 한국에서는 어땠을까. 물론 집 짓는 일에 관한 깊은 지혜와 원리가 축적돼 있었지만 그것이 서양과 같이 하나의 독립된 체계로 발전되지 않았다. 언어화되거나 문법으로도 체계화되지 않았다. 오히려 유교 원리의 일부에 속해 있었다. 그래서 저자는 한국의 전통 건축은 ‘해석돼야 할 텍스트’라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그의 우리 전통 건축에 대한 깊은 존경도 담겨 있다. 책 속에 표현된 다음과 같은 내용도 그중 하나다.

“종묘의 월대나 경복궁의 바닥에 거친 박석을 깔아 놓은 것은 돌을 다듬을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거친 바닥의 돌은 일부러 몸을 굽히게 만든다. 거친 돌바닥을 걸으면서 몸가짐을 조심할 수밖에 없고, 제례를 서두르지 않으며 신중히 몸을 움직일 수밖에 없다. 대문의 문지방이 높아서 넘어다니다시피 해야 하는 것은 발을 들어 조심하도록 하려는 생각이다. ”

한국 건축과 서양 건축의 차이를 통해, 잠재되어 있지만 언어화되지 않은 한국 건축의 고유한 원리를 현대에 소통 가능한 언어로 설명함으로써 저자는 집요하게 전통을 이론화한다. ‘건축의 개념’ ‘인식과 경험’ ‘인간의 위상’ ‘공간의 개념’ ‘안과 밖’ ‘경계’ ‘개체와 집합’ ‘건축과 자연’ ‘상징과 소통’ 등의 작은 주제를 정하고 각각 이론적 설명과 구체적 사례를 통해 한국건축과 서양건축의 차이를 서술한다. 512쪽, 2만2000원.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