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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Fifty+ 게재 일자 : 2017년 12월 08일(金)
은퇴후 가꾼 ‘나의 정원’…‘만인의 로망’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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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공무원 퇴직 후 경기 안성으로 내려가 한옥에 딸린 정원을 가꾸며 생활하고 있는 김형극 씨가 정원의 나무에 매달린 모과를 보고 있다. 김 씨는 제집 정원을 가꾸는 아마추어 가드너들의 모임인 ‘경기정원문화대상 수상자 모임’(정수모) 회장이다. 김선규 기자 ufokim@

- 정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김형극 회장

경제·시간여유 필요해 ‘은퇴자의 꿈’
탈출하듯 전원행… 처음엔 텃밭 농사
힘들어 포기했다 꽃·나무 심자 ‘행복’
10년 노하우로 주변사옥 조경 ‘부업’

수상자들 정원서 매년 음악회 개최
공유 정원으로 내놓자 만족감 커져
사회적 관계 유지·상실감 줄이는데
취미생활 즐기는것만큼 좋은건 없어


‘정원 가꾸기’는 은퇴를 앞둔 이들의 로망 중 하나다. 노후의 정원 가꾸기란 단순하게 정원을 가꾸는 행위 자체를 뜻하는 것만은 아니다. 은퇴 후 정원을 가꾼다는 건 ‘경제적 풍요’뿐만 아니라 ‘시간의 여유’까지 두루 갖추고 있음을 의미한다. 손수 정원을 다듬고 관리하는 일이 실은, 고된 노동에 가깝지만 말이다. 어찌 됐든 정원을 가꾸며 소일하는 삶에서는 그윽한 향기가 난다. 서울에서 6급 공무원으로 일하다 50대 후반 퇴직해 경기 안성에서 정원을 가꾸며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는 김형극(64) 씨의 생활에서도 그런 향내가 난다. 그의 생활을 통해서 은퇴를 앞둔 이들이 열망하는 ‘정원을 가꾸며 사는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그리고 정원을 가꾸고 살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들여다봤다.


# 근사한 정원에서 열린 음악회

지난 10월 14일 경기 용인의 개인 주택 정원 ‘플로라 하우스’에서는 낭만적인 가을 음악회가 열렸다. 단풍 물든 근사한 잔디 정원에서 펼쳐진 ‘가을 정원 음악회’였다. 우아한 선율의 플루트와 클래식 기타, 밴드의 노래와 시 낭송 등도 훌륭했지만, 이날 음악회는 10여 년에 걸쳐 꾸민 그림 같은 정원에서 열려서 더 특별했다. 가을 정원 음악회는 제집 정원을 가꾸는 아마추어 정원사, 즉 ‘가드너’들이 준비해 연 것이었다. 경기도와 경기농식품유통진흥원은 매년 훌륭한 정원을 가려내 ‘경기정원문화대상’을 시상하는데, 이날 음악회는 이 상의 역대 수상자 모임 ‘정수모’ 회원들이 두 번째로 개최한 정원 음악회다. 정수모 회장으로 모임을 이끄는 이가 김형극 씨다.

김 씨는 35년간 서울시와 서초구청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다 쉰여덟의 나이에 은퇴한 뒤 경기 안성의 정원 딸린 한옥에서 정원을 가꾸며 생활하고 있다. 꽃과 나무를 다듬어서 정원을 가꾸는 게 정적이기도 하고 지루할 것도 같지만, 김 씨는 같은 취미를 가진 이들과 다양하게 교유하며 바쁘게 지내고 있다. 개인 정원을 남들과 함께 누리는 ‘공유 정원’으로 기꺼이 내놓는 일에 앞장서기도 하고, 정원 음악회를 열어 개인 정원을 공적 공간으로 만드는 일에도 나서고 있다. 사적 영역인 취미를 공적 영역으로 연결하면서 가치와 보람을 찾고 있는 것이다.

취미 찾기는 은퇴 후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고 상실감을 더는 가장 효과적인 방편이다. 하지만 취미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인 경우가 많아 좀처럼 보람이나 자부심을 갖기 어렵다. 김 씨는 “처음에는 스스로 좋아서 혼자 정원을 가꿨지만, 모임을 꾸려 공유 정원 사업을 추진하고, 정원 음악회 같은 문화행사나 강연 등도 열면서 자부심은 물론이고 사회적 성취감도 느끼게 됐다”고 했다. 김 씨는 “취미를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취미가 사회적 공유로 이어질 때 만족감이 더 커진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다”고 덧붙였다.


▲  지난 10월 김형극 씨가 회장으로 있는 정원 가꾸기 모임 ‘정수모’ 주최로 경기 용인의 개인 정원에서 열린 ‘정원 음악회’의 무대 공연 모습. 정수모 제공

# 도시 탈출로 시작한 전원행

김 씨의 전원으로의 이주는 공무원 재직 중이던 40대 중반에 이뤄졌다. 20여 년 전인 1996년 가을, 그는 경기 부천의 서른두 평 아파트를 팔아 지금 살고 있는 안성으로 거처를 옮겼다. 주위에서는 다들 ‘주말 별장을 산 거냐’고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이사한 안성 서운면 신촌리는 직장이던 서울 서초구청과 멀어도 너무 멀었다. 집에서 직장까지 편도 거리가 자그마치 98㎞. 왕복 200㎞ 가까운 거리의 출퇴근을 감수하며 감행한 이사였다. 이사로 불편해진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전원생활을 하는 것이 직장에 알려지면서 지각이라도 하면 혹시나 눈총을 받을까 싶어 남들보다 일찍 출근하고, 남들보다 늦게 퇴근했다. 이런 불편과 맞바꾼 그의 안성 집은, 그러나 근사한 풍경의 그림 같은 전원주택이 아니라 오래된 마을 한복판에 자리 잡은, 좀 넓은 텃밭을 끼고 있던 허름한 농가 한옥이었다. 지금이야 근사한 정원을 품은 운치 있는 한옥이지만, 그때만 해도 폐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왜 이렇게 불편한 이주를 감행했을까. 그는 고향 평택에서의 유년시절 얘기를 먼저 꺼냈다. 작고한 어머니가 유독 꽃과 나무를 좋아했다고 한다. 끼니조차 잇기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어머니는 장독대 옆에 봉선화며 채송화를 심어 화단을 만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자라서일까, 김 씨를 포함해 6남매 모두가 꽃과 나무를 좋아한단다.

유년시절 얘기로 시작했지만, 사실 그의 이사는 ‘시골 입성’이 아닌 ‘도시 탈출’에 가까웠다. 따지고 보면 같은 얘기지만, ‘시골로 가고 싶은’ 미음보다는 ‘도시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몇 발짝 앞섰다는 얘기다. 그가 이사를 결심한 직접적 계기는 투자 실패였다. 기능직으로 일하다 행정직으로 전환하면서 월급이 적잖이 깎였는데, 그걸 벌충할 생각으로 저축해둔 돈을 탈탈 털어 4200만 원으로 상가주택을 분양받았다. 거기서 다달이 나오는 임대수익으로 모자란 월급을 채울 생각이었다. 그러나 상가를 신축하려던 업체가 부도를 냈고 투자한 돈을 모두 날렸다. 억울해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가슴을 치던 나날이었다. 여기다가 자녀의 학교폭력 사건까지 겹치면서 그는 미련 없이 짐을 쌌다.



# 혼자 해 온 일이 ‘나누는 일’이 되다

김 씨가 안성으로 내려가서 곧바로 정원을 가꾼 건 아니었다. 지금의 근사한 정원은 본래 집에 딸린 텃밭이었다. 먼저 텃밭에 상추와 파, 고구마를 심었다. 시험 삼아 시작한 농사는 녹록지 않았다. 무엇보다 농사 규모가 애매했다. 내 먹을 것을 심어 기르는 데는 땅이 너무 넓었고, 내다 팔 것을 기르자니 땅이 너무 좁았다. 그렇게 몇 년을 버텼지만 농사일은 답이 나오지 않았다. 김 씨는 미련 없이 밭을 갈아엎은 뒤에 좋아하던 풀과 꽃을 심었다. 텃밭에 작물 대신 화초를 심자 ‘팔자 좋다’는 비아냥 섞인 이웃 주민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하지만 직장생활 틈틈이 좋아하는 꽃과 나무를 심어가며 정원을 가꾸면서 그는 비로소 행복감을 느꼈다. 그러다 지난 2011년 명예퇴직을 한 뒤부터는 하루 종일 정원에 매달렸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의 정원 가꾸기는 ‘혼자서 하는 일’이었다. 우연히 지인으로부터 경기도에 정원문화대상 시상 제도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응모했다가 덜컥 동상을 받은 뒤 그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정성을 다해 정원을 가꾸고 있는 이들을 만났다. 같은 취미가 있다는 것만으로 정보를 주고받았고, 씨앗과 묘목을 나눴으며 서로의 정원을 방문하며 교분을 이어갔다. 수상자의 모임이 꾸려지고 모임의 회장 일을 맡은 뒤에 김 씨는 “정원을 가꾸는 즐거움이 몇 배 더 커졌다”고 했다. 그러다 회원들 사이에서 다른 이들에게 보탬이 되고, 가치도 있는 일을 해보자는 제안이 나왔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정원 음악회는 이렇게 시작됐다. 모임에서는 정성 들여 가꾼 정원을 이웃과 나누는 ‘공유형 정원’에 대한 논의도 진행하고 있다. 정원 가꾸기의 울타리를 집 밖으로까지 확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  김형극 씨의 집과 정원. 김선규 기자

# 적더라도 고정수입 유지해야

그렇다면 은퇴 뒤 ‘팔자 좋게’ 정원을 가꾸고 있는 그는 어떻게 생계를 꾸려나갈까. 공무원 연금이 나오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서 김 씨는 집 근처의 직장을 다닌다. 자그마한 중소기업의 사옥에서 조경 일을 맡고 있는데, 딱히 일이 정해진 건 아니고 전천후로 그때그때 주어진 일을 한다. “쉽게 말하자면 ‘잡부’”라는 게 그의 간단한 설명이다. 그래도 근무시간이 짧고 노동강도도 그리 높지 않으면서 휴일도 보장되니 부담이 없다.

일이 힘들지 않은 만큼 월급은 150만 원으로 적은 편이지만, 고정 연금수입이 있는 데다 퇴직 이후 씀씀이를 줄여 큰 불편은 없다. 그는 “수입이 줄면 당연히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지만, 은퇴 이후에는 적더라도 고정적인 수입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무리하게 욕심을 내는 것도 독이지만, 은퇴 후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상황이 되면 자칫 노후 생활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게 된다는 얘기다. 일하면서 얻은 경제적 여유로 그는 정원 가꾸기뿐만 아니라 수석을 주우러 다니거나, 서각을 배우고, 도자기를 빚으면서 다양한 취미생활을 즐기고 있다. 기타를 오래 배우기도 하고, 취미로 풍경 사진을 찍고 있기도 하다.



# 하고 싶은 일에 열정적으로 매달리자

50세 이후를 대비하는 준비로 그가 줄곧 강조하는 건 ‘하고 싶은 일’을 찾으라는 것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은퇴 이후 삶이 부러워 보인다 해도 흉내 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남이 좋아하는 일’로 만든 삶이 ‘내가 좋아하는 생활’은 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는 “일단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되면 의도적으로라도 적극적이고 열정적으로 하고 싶은 일에 매달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게 삶의 활력을 유지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가 충남 태안에다 바다가 보이는 정원을 가꿀 수 있는 자그마한 땅을 산 것도, 20년이 넘도록 정원 가꾸기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은퇴를 앞둔 50대들에게 ‘누구나 은퇴 이후의 삶은 가보지 않은 길’이라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고 했다. 도시 탈출 꿈이 정원 가꾸기란 취미로 이어지고, 그게 다양한 취미활동과 취미공동체의 커뮤니티로 이어졌던 자신의 경우를 되돌아보면, 가보지 않은 길에는 두려움도 있지만, 그보다 즐거움이 더 크다고 했다. 그는 은퇴 이후의 생활을 단계별로 나눠 그때그때 최적의 삶을 위해 끊임없이 모색해야 한다고 몇 번이고 강조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수시로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고, 자기 삶의 모습을 수정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좋아하는 일을 찾아 은퇴 생활에 편안하게 안착했다고 해도 더 나이 들어 좋아하는 일을 즐길 수 없을 때를 대비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용인 =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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