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자크 루이 다비드의 1787년 작 ‘소크라테스의 죽음’. 문예출판사 제공
- 소크라테스씨 멋지게 차려입고 어딜 가시나요? / 연희원 지음 / 문예출판사
소박한 옷 즐겼던 소크라테스
美男 아가톤 만날 땐 멋 부려
고급 매춘부 필리스의 유혹에
아리스토텔레스 나체로 말 흉내
고대 그리스 남성 패션 통해
권력 속에 숨겨진 민낯 탐구
“비교를 멈출 때 개성이 시작된다.”
21세기 명품 샤넬을 있게 한 세계적 패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의 말이다. 이미 80대 중반인 라거펠트는 어떤 젊은이보다 과감하고 독창적인 스타일로 최첨단 패션을 개척하고 있다. 이 노장에게 적어도 패션이란, 어디에도 얽매여서는 안 되는 자유와 개성의 상징이다.
현대 패션은 이처럼 철저히 개인의 취향과 정체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시대마다 표현하는 방식이 다양했고, 저마다 입는 방법도 달랐다.
하지만 시곗바늘을 2000년보다 훨씬 전으로 돌려보면 어떨까. 기원전 5세기 전후, 인류 지성사(知性史)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고대 그리스 시대의 패션도 지금과 같았을까.
고대 그리스 하면 떠오르는 패션은 대체로 엇비슷하다. 커튼 같은 천을 몸에 두르고 있거나 혹은 투구를 쓰고 방패를 든 병사의 모습. 아무래도 지금 같은 다양성을 논하긴 어려울 듯하다. 그러나 이 패션 속에는 지배와 피지배, 불평등과 차별, 억압과 저항 등 계급과 권력이 숨어 있다는 게 저자의 흥미로운 분석이다. 민주주의와 자유롭고 조화된 인본주의의 산실로 알려졌던 고대 그리스가 사실은 시민 남성 위주의 제한적 사회였으며 그 안에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우선 서양철학사의 태두이자 당대 최고의 유명인이었던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패션을 살펴보자.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남성이 히마티온을 입는 방식.
플라톤의 제자이자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스승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한술 더 뜬다. 그와 관련해서는 ‘필리스와의 우화’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1513년 한스 발둥이 찍어낸 목판화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헤타이라(고대 그리스의 고급 매춘부)인 필리스의 유혹에 넘어가 나체로 말 흉내를 내는 그림이 새겨져 있다. 물론 이 장면은 중세기 작가들이 지어낸 이야기로 알려졌지만, 고귀한 삶을 살 것만 같은 철학자가 매춘부에게 빠져 체통을 잃는 행동을 했다는 것은 중세인들에게 귀가 솔깃할 만한 가십거리였다.
고대 그리스 벽화나 도자기에 그려진 나체의 남성도 당시 지배 권력을 상징하고 있다. 고대 올림픽 경기에는 오직 아테네 시민권을 가진 남성만 참가할 수 있었다. 여성은 애초에 출입이 불가능했다. 시민 남성들은 아름다운 복근과 허벅지 근육을 뽐내며 나체를 하나의 특권적 패션으로 인식했다.
저자는 우리가 사소하다고 외면했던 패션이 인류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것, 그리고 이렇게 중요한 패션을 지배 권력은 금지하거나 허용함으로써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용해왔다는 이면을 밝힌다. 소크라테스나 아리스토텔레스를 철학자로서가 아닌, 패셔니스타로 분석한 색다른 시각이 신선하다. 324쪽, 1만7000원.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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