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조선 세종때도 있었던 ‘국민투표’… 民意 모으는 것이 國政 운영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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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에는 조선 최초의 국민투표 이야기가 있다. 매사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라는 ‘민유방본(民惟邦本)’을 실천한 세종의 일화다.

성군 세종은 백성의 의견이 크게 갈리는 세제개혁을 위해 전국의 양반과 농민 등 대부분의 납세자를 대상으로 국민투표를 단행했다. 당시의 국민투표란 것이 전국 방방곡곡에 직접 사람을 보내 의견을 묻고 듣는 수밖에 없었지만, 1430년 봄부터 5개월에 걸쳐 무려 17만 명의 의견을 하나하나 들었다. 결과는 찬성(9만8000여 명)이 반대(7만4000여 명)보다 많았다. 하지만 세종은 다수와 소수의 의견을 최대한 절충하고 반영하기 위해 긴 숙의 기간을 갖는다.

그렇게 또 14년의 세월이 흐른 후 드디어 조선 전체 조세제도의 근간(연분 9등법, 전분 6등법)이 완성된다. 백성과 생각이 통할 때까지 기다리며 신중에 신중을 기한 세종의 국정 운영 방식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중국 삼국시대 촉나라의 제갈량은 ‘여러 사람의 생각이 모이면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집사광익(集思廣益)’을 강조했다. 제갈량은 떠났지만 1800년이 지난 지금도 이 말은 살아서 각 분야의 리더들이 인용하고 있다. 세종과 제갈량이 전하는 공통의 메시지는 ‘국민참여’를 통한 민의의 수렴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민의를 어떻게 모으고 반영할 것인가는 국정 운영의 핵심이다.

우리 정부는 국민의 행정참여를 활성화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새 정부 출범 후 바로 문을 연 ‘광화문 1번가’에는 18만 건이 넘는 제안이 쏟아졌고, 이 중 1700여 건이 정부 정책에 반영됐다. 국제적으로도 관심을 받아 세계 75개국이 회원국인 열린정부파트너십(Open Government Partnership) 국제 포럼에도 소개됐다. 지난해 7월부터 10월까지는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관련 공론화위원회가 운영됐다. 당초 많은 논란과 우려가 있었으나 일반 국민으로 구성된 시민대표 참여단은 성숙한 논의를 통해 ‘단기적 건설 재개와 장기적 탈원전 추진’이라는 결과를 도출했다.

행정안전부와 국민권익위원회는 국민신문고, 국민생각함 등의 포털을 통해 국민의 아이디어를 수렴, 각 기관의 정책 개선에 활용토록 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방자치단체와 공동으로 주민참여형 도시재생사업을 추진 중이고, 환경부도 유휴공간을 활용한 태양광발전사업을 지역 주민들이 협동조합을 통해 참여하는 형태로 계획하고 있다.

많은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 제도는 생명이 짧다, 성숙하고 영속 가능한 정책, 좋은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국민 의견을 충분히 반영할 장치가 필요하다. 이에 행안부는 2017년 4월 행정절차법 시행령을 개정, 국민 참여에 행정·재정적 지원을 할 근거를 마련했다.

하지만 내실 있는 국민 참여 인프라 구축까지는 숙제가 많다. 국민의 청원권 행사를 위한 근거 법률인 청원법은 있으나 구체적 시행을 위한 ‘시행령’(대통령령)이 없다. 따라서 청원 제도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선 법령 제정이 필요하다. 국민 소통과 참여를 위한 공론의 장을 상설화하는 방안도 적극 고려해 봐야 한다.

중앙부처, 자치단체 모두 국민 참여를 내실 있게 정착시키기 위한 제도적, 운영적 방안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리므로 꽃이 좋고 열매가 풍성하나니”라는 용비어천가의 한 대목이 시사하는 바를 생각해 본다. 행안부는 정부혁신을 담당하는 부처로서 국민 참여 제도가 튼튼히 뿌리내려 좋은 정책과 서비스를 국민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할 계획이다.

김일재 (행정안전부 정부혁신조직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