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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조항범 교수의 어원 이야기 게재 일자 : 2018년 01월 12일(金)
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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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는 말이 있다. 나쁜 사람과 가까이 지내면 나쁜 버릇에 물들기 쉬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는 언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특정 단어가 부정적 의미의 단어와 빈번히 어울려 쓰이면 그 단어에 영향을 받아 부정적인 의미로 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를 ‘전염(傳染)’에 의한 의미 변화라고 한다. ‘주책’도 그와 같은 예에 속한다.

‘주책’은 한자어 ‘주착(主着)’에서 온 말이다. ‘주착’은 ‘일정하게 자리 잡힌 주장이나 판단력’이라는 긍정적 의미를 띤다. ‘주착’이 ‘주책’으로 변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1924년 신문 기사에서 ‘주책’이 처음으로 검색된다.

그런데 ‘주책’은 한동안 표준어의 지위를 갖지 못하였다. ‘(금성판)국어대사전’(1991)에 와서야 ‘주책’이 사전에서 표준어로 인정받고 있다. 여기서는 ‘주책’을 ① ‘일정하게 자리 잡힌 생각’ ②‘일정한 줏대가 없이 되는 대로 하는 짓’으로 풀이하고 있다. ②는 ①과 정반대의 부정적 의미라는 점에서 특이하다.

②는 ‘전염’에 의해 새롭게 생겨난 의미이다. ‘주책’이 주로 부정어 ‘없다’와 어울려 쓰이면서 그 의미 가치에 전염되어 부정적 의미로 변한 것이다. 부정어 ‘없다, 않다’ 등의 의미 가치에 전염되어 의미가 부정적인 쪽으로 변한 단어는 의외로 많다. ‘분수, 엉터리, 별로’ 등도 그와 같은 단어들이다. ②의 ‘주책’을 한자어 ‘做錯(주착: 잘못인 줄 알면서 저지른 과실)에서 온 것으로 보기도 하나 미덥지 않다.

‘주책’은 부정적 의미를 띠면서 점차 그와 같은 의미로 굳어진다. ‘주책’의 본래 의미는 ‘주책이 없다’에서나 확인될 정도로 아주 미약하다. ‘주책망나니(주책없는 사람을 욕하여 이르는 말), 주책바가지, 주책스럽다, 주책맞다, 주책이다’ 등은 ‘주책’의 의미 부정화 정도가 얼마나 심한지를 잘 알려준다.

충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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