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권의 멘털 노트>갑자기 타수 올라가고 자신감 떨어지고… 너무 불사른 당신, 쉬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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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아웃 신드롬’

한동안 한 가지에 몰두하다보면
신체 · 정신적 모든 에너지 소진
실수 잦아지고 의욕까지 떨어져
다른 것에 몰입하거나 휴식 필요

2년연속 JLPGA 상금왕 이보미
정신적 피로감에 지난해엔 부진

주말 골퍼들의 로망은 싱글 핸디캐퍼가 되는 것이다. 골프 초년병 시절만 해도 라운드 날짜가 다가오면 설레는 마음에 잠을 설치곤 했다. ‘싱글’을 목표로 정말로 열심히 노력했다. 어느덧 10년째, 드디어 목표하던 싱글핸디캡이 찾아왔다. 78타. 한 달 뒤 또다시 77타. 정말로 싱글 핸디캐퍼 수준에 도달했다는 확신이 섰다. 이제는 한 자릿수 핸디캡을 기록하는 것도 어렵지 않은 일이 됐다.

이쯤 되면 자신의 샷이나 스윙에 대해 자신감을 얻고, 누구와 대결하더라도 패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생긴다. 그런데 갑자기 타수가 기대만큼 나오지 않는다. 70대는 고사하고 80대 중반이다. 가끔 90대일 때도 있다. 코치를 찾아가 레슨을 받아 봐도 효과가 없다. 꾸준히 웨이트트레이닝을 했으니 체력에 문제가 생기진 않은 것 같다. 초보 시절보다는 못해도 여전히 연습을 꾸준히 하고 있어 기술적인 문제도 아닌 것 같다. 40대 중반이라 세월을 탓하기에는 아직 젊다. 이해할 수가 없다.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그리고 골프의 즐거움이 줄어든다. 골프에 대한 흥미를 점점 잃어버리는 것 같다. 샷 감각도 사라진 것 같고 안 하던 실수도 잦다. 골프에 대한 자신감은 물론 매사에 의욕이 떨어진다.

이처럼 어느 날 갑자기 수행력이 떨어지고 기대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자신감은 물론 의욕마저 떨어진다. 심지어 그 일이 싫어지기도 한다. 이 경우 심리학에서 말하는 ‘번 아웃 신드롬(burnout syndrome)’이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번 아웃은 1974년 독일 출신의 미국 심리학자 헤르베르트 프로이덴베르거가 만든 용어로 한 가지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신체적·정신적으로 모든 에너지가 소진된 상태에 빠지는 경우를 말한다. 골프뿐 아니라 영재교육으로 어릴 때 두뇌를 너무 많이 사용하거나 치열하게 몰두해 왔던 사람에게 자주 나타난다.

한국에서 ‘스마일 캔디’로 사랑을 받았던 프로골퍼 이보미(사진)는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에서 2015년과 2016년 연속으로 상금왕을 차지했다. 자타가 인정하는 JLPGA투어의 ‘골프 여신’. 그런데 지난해에는 주춤했다. 우승은 1회, 톱10에 7차례 들었지만 상금 순위는 23위로 내려앉았다. 다른 선수라면 보통 이상의 성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보미의 명성에 걸맞지 않은 결과다. 이보미는 특히 지난 시즌 컷 탈락이 4차례나 이르는 등 일본 진출 이래 최악이었다.

이보미는 시즌 도중 “샷 감각이 돌아오지 않는다”며 자주 답답함을 토로했다. 주변에서는 “부담감 때문”이라거나 “(마음가짐이) 느슨해진 것 같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원인은 다른 데 있었다. 그동안 치열한 경쟁을 치르며 쉼 없이 달려온 탓에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 부진에 빠진 것이다. 당사자는 알아차리기 힘들지 모른다.

JLPGA투어에서 통산 41승을 올렸던 베테랑 일본의 모리구치 유코는 지난해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보미의 3년 연속 상금왕을 낙관했다. 모리구치는 “(이)보미 씨는 3년 연속 상금왕이 될 수 있는 실력이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나이로 볼 때 체력도 충분하고, 부문별 성적을 봐도 모든 면에서 다른 선수들보다 정밀함이 뛰어납니다. 약점이라고 할까요, 주의해야 할 점은 정신적인 피로감입니다”라고 말했다.

번 아웃은 삶의 현장 어디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번 아웃 신드롬을 겪는 사람들은 신체적·정신적으로 모든 에너지가 소진된 상태로 피로를 호소한다. 심할 경우 자기혐오, 직무거부를 보이기도 한다. ‘긍정심리학’ 저자인 일본의 심리학자 사이토 이사무는 “번 아웃은 근면하고 성실한 성격으로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는 사람이 빠지기 쉬운 현상 중 하나다. 눈앞에 높은 목표가 있어 그것을 정복하기 위해 끝없이 전진해가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이 계속 달리기만 하면 몸도 마음도 전부 소진되고 만다”고 지적했다.

물론 번 아웃 신드롬을 예방하는 길은 있다. 첫째 자신이 하는 일을 되돌아보면서 이미 한계를 넘어서지는 않았는지 확인하는 것, 둘째 자신이 몰입해 왔던 일과는 전혀 다른 가벼운 일에 몰입하는 것, 마지막으로 일에 집중하더라도 반드시 중간중간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어떤 일에 종사하든 일보 전진을 위해 이보 후퇴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심리학 박사·연우심리개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