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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김효정의 에로틱 시네마 게재 일자 : 2018년 01월 23일(火)
시한부 남자와 거리의 여자, 한 달 간의 ‘치명적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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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거리가 넘실댄다. 광대 화장을 한 창녀들로, 도박장으로 향하는 남자들로, 그리고 조잡한 빌딩들의 토사물 같은 형형색색의 네온사인들로. 술을 마시면 그래도 살 맛이 난다. 몇 달 남지 않은 삶이지만 그냥저냥 괜찮다.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1995년·사진)의 주인공 벤(니컬러스 케이지)의 눈에 비친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풍경이다. 할리우드에서 극작가로 살았으나, 오랜 알코올의존증으로 모든 것을 잃은 그는 남은 것을 팔아 이곳에서 술이나 마시다가 죽음을 맞이하고자 한다. 그러나 늘 그렇듯, 소중한 인연은 죽음과 삶의 경계를 마다하지 않고 출현한다. 술에 절어 거리를 배회하는 벤 앞에 거리의 여자 세라(엘리자베스 슈)가 등장한다. 벤은 싸구려 가죽 치마에 낡은 액세서리를 휘감은 금발 머리 세라에게 혹할 돈을 제시하며 하루를 보내달라고 요구한다.

술이 그득한 벤의 호텔방에 들어선 세라. 여느 때처럼 옷을 벗고, 벗기고 벤의 다리 사이로 얼굴을 파묻는 순간 벤은 그냥 술이나 마시며 대화를 하면 안 되겠냐고 묻는다. 그제야 세라는 벤의 눈을 처음으로 바라본다. 이미 술로 잠식된 듯한 그의 총기 없는 눈에서 세라는 연민과 사랑을 느낀다. 그들은 어디를 가나 눈총을 받는다. 세상 사람들에게 창녀와 시한부 인생 알코올의존자의 사랑은 너무나도 미천한 것이지만 이들에게는 목숨이 다할 때까지 부여잡고 있고 싶은 숙명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세상 모든 커플처럼, 이들에게도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법칙이 있다. 벤은 세라에게 술을 그만 마시라고 자신에게 종용하지 말 것을, 세라는 벤에게 자신의 직업을 용인해 주기를 요구한다. 서로의 치명적인 ‘장애’를 덮고 이들은 말 그대로 사력을 다해 사랑한다. 벤은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쪼개서, 세라는 밤마다 몸을 팔아서 이들은 연명하고 또 연명한다. 그러나 이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사랑 영화에서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 것이 있다. 두 사람의 섹스 신이다. 벤이 불능(不能)하기 때문이다. 세라는 벤의 몸을 원하지만 취해 있는 그는 번번이 실패한다.

▲  영화평론가 김효정
섹스가 부재한 커플이지만 이들에게도 애틋한 에로스가 존재한다. 사막으로 떠난 여행에서 벤을 간절히 원하는 세라는 온몸에 위스키를 붓는다. 세라의 목덜미에서 어깨로, 어깨에서 가슴으로 흘러내리는 위스키를 벤은 숨도 쉬지 않고 핥아댄다. 세라는 그렇게 자신의 몸에 벤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한다. 그러나 거기 까지다. 둘의 섹스는 늘 술의 권력에 밀린다. 벤이 쓰러지거나 잠이 드는 것으로 한 번도 세라는 그의 몸을 온전히 가져본 적이 없지만, 개의치 않는다. 죽어가고 있는 그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 세라는 행복하다.

결국 세라는 하루가 다르게 망가져 가는 벤을 참지 못하고, 벤은 세라를 떠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라는 벤의 전화를 받는다. 그리고 재회한 남녀. 벤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생사를 오가며 연인을 기다리고, 세라는 단숨에 달려간다. 죽기 전에 한 번만이라도 세라의 몸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벤의 염원을 들어주기 위해 세라는 간신히 그를 일으켜 세운다. 그리고 그들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서로의 흔적을 온몸 구석구석에 새긴다.

벤과 세라의 사랑은 라스베이거스를 닮았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신기루를 좇는다. 유한(有限)한 돈과 시간으로 영생을 채울 만한 행운과 쾌락을 살 수 있다고 착각한다. 섹스조차 할 수 없는 두 사람이 한 달 남짓의 시간 동안 목숨을 다해 사랑하는 것은 라스베이거스가 투영하는 욕망과 허상의 그림자에 대한 조소이자 정신적 에로스의 실천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한 창녀의 독백이기도 하다. 세라가 술에 육신을 팔아 버린 벤을 지키는 것은 그를 창녀가 아닌 ‘성녀’로 바라보게끔 한다. 스팅의 몽환적인 노래와 연출자 마이크 피기스 감독이 직접 참여한 오리지널 스코어는 허상뿐인 라스베이거스에서 멸실한 순교(巡敎)적 사랑을 너무나도 절절히 그렸다. 술로 죽는 주인공을 보면서도 술을 안 마실 수 없게 하는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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