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추리소설은 원래 ‘불온성’이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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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죄소설의 계보학 / 계정민 지음 / 소나무

1830년대 英 ‘뉴게이트 소설’
체제전복 위험에 급격한 몰락

에드거 앨런 포 · 코넌 도일…
본격적으로 탐정 주인공으로

홈즈는 전형적인 백인 상류층
체제 순응적인 추리소설 등장

요즘 영화와 방송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르는 스릴러다. 범죄(심지어는 교도소)를 소재로 한 장르물이 범람하고 있다. 폭력과 살인 같은 자극적인 이야기가 여전히 관객이나 시청자의 주의를 끌고 있다는 방증이다.

문학도 사정이 비슷하다. 소설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하지만 그래도 추리소설을 찾는 독자는 제법 있다. 일본 최고의 스릴러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의 소설이 국내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지키고 있고, 프랑스의 기욤 뮈소, 미국의 댄 브라운 등이 스릴러 기법의 소설로 주목받고 있다. 국내 작가 중에는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 정유정의 ‘종의 기원’ 등이 꾸준한 인기를 바탕으로 영화나 웹툰까지 확장됐다.

이처럼 추리소설 또는 스릴러는 시·공간을 막론하고 변함없이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런데 왜 유독 순문학, 그것도 평단에서는 홀대를 받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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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을 포함하는 범죄소설은 오래도록 저평가돼 왔다. 범죄 사건의 선정성에 기대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상업적 장르로 폄하되고 무시됐다.

25년 넘게 범죄소설을 연구해온 계정민 계명대 교수는 이 부분에서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범죄소설은 그토록 ‘문학적 시민권’을 받을 자격이 없는가. 저자는 영미문학 속 범죄소설의 계보를 추적해 등장과 몰락, 변화와 의미를 살핀다.

계보의 맨 위에는 뉴게이트(newgate) 소설이 있다. 뉴게이트는 20세기 초까지 존재했던 영국 런던의 감옥에서 비롯한 것이다. 형법 제도가 엄격했던 빅토리아 시대(1837∼1901)에 범죄자를 주인공으로 앞세워, 사회적 모순과 불합리한 제도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830년대 전후 왕성하게 나오다가 1840년대 이후 국가 권력과 지배 계층의 개입이 시작되면서 급속도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법을 집행하는 지배계층에서는 이 소설이 ‘체제 전복’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뉴게이트 소설의 불온성을 피해 대안으로 각광 받은 작품이 대문호 찰스 디킨스(1812∼1870)의 ‘올리버 트위스트’(1838)다. 이 소설은 빈곤과 아동 학대 등 사회제도의 문제점을 비판했으나 적어도 범죄자를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았다. 이른바 안전한 ‘반(反) 뉴게이트’적 추리소설이었다.

탐정을 주인공으로 하는 본격적인 추리소설(detective fiction)은 미국 작가 에드거 앨런 포의 ‘모르그가의 살인사건’(1841)부터다. 이어 영국의 윌키 콜린스(1824∼1889), 에든버러 의대 출신의 코넌 도일(1859∼1930)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코넌 도일이 활동했던 시대는 영국 제국주의가 팽창하던 시기다. 코넌 도일은 추리소설을 통해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옹호하는 입장을 취했다. 사회 비판적이었던 뉴게이트 소설이 사라지고, 체제 순응적인 추리소설이 등장한 셈이다.

‘셜록 홈즈’의 주인공 홈즈는 전형적인 상류층의 모습을 반영한다. 홈즈의 모델은 코넌 도일에게 법의학을 가르쳤던 조지프 벨 박사다. 벨 박사는 경이로운 관찰력과 분석력의 소유자일 뿐 아니라 하얀 피부의 미남이었다. 추리소설의 주인공 탐정이 상류층 백인 남성으로 정형화된 것은 이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 홈즈는 추리소설의 계급적·인종적·젠더적 원형이 됐다.

이런 원형을 깬 여성 탐정 추리소설도 있기는 하다.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사 크리스티(1890∼1976)의 ‘미스 마플’이다. 하지만 미스 마플에서 보이듯 여성 탐정에게서 여성성은 철저히 배제됐다. 저자는 “여성 탐정 추리소설은 남성성의 이상화라는 추리소설의 기존 개념과 충돌했으나 여성의 무성화로 안전한 젠더를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계보의 마지막에는 하드보일드 추리소설(hard-boiled detective fiction)이 있다. 범죄소설 중에서도 가장 혹독한 비난과 공격에 시달린 장르다.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은 1920년대 초반 펄프 잡지인 ‘블랙 마스크’를 통해 처음 등장했다. 대실 해밋(1894∼1961)과 레이먼드 챈들러(1888∼1959)가 대표적 작가다. 이들은 헤밍웨이와 견줘도 손색없는 작품성을 보여줬으나 법과 권력, 자본가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으로 종종 주류에서 소외됐다.

저자는 이제야말로 범죄소설의 가치를 ‘복원’할 때라고 주장한다. 범죄소설은 한 번도 가볍게 소비되지 않았다고 역설한다. “범죄소설은 계급, 민족, 인종, 젠더를 향한 서로 다른 시각과 입장이 경합하고 충돌하고 타협하는 문학의 요충지로 존재해왔다. 그 속에서 새롭게 변모해 지금까지 소설 문학의 주요 장르로 남아 있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럴 것이다.” 376쪽, 1만8000원.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