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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거리의 인문학자 최준영의 결핍 에너지 게재 일자 : 2018년 02월 07일(水)
“한번 더 해보는 거야”… 결심하는 순간 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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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한이 아무리 길어도 봄은 오듯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의 씨앗은 남아있다. 강원 정선의 함백산 아래 절집 육화정사 옆에 심어진 마가목이 눈 속에서 선명한 붉은 열매를 매달고 있다. 박경일 기자 parking@
(2) 치약 튜브에는 언제나 치약이 남아있다

우리는 좌절과 실패의 순간
‘더이상 희망없다’ 지레 포기
절대적 절망만 있는 삶 없어

삶엔 늘 희망씨앗 붙어있어
다만 잘 보이지 않을 뿐…
고통 피하지 말고 마주하면
힘 솟고 새로운 기회가 열려


좌절과 실패의 순간 내 삶의 기운은 여기까지라고 생각하며 포기해 버리는 사람이 있다. 더 이상 힘을 쓰지 않거나 일어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야말로 진정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때다. ‘까짓, 한 번 더 해보는 거야’라고 결심하는 순간 어딘지 모르는 곳에서 힘이 솟고 새로운 기회가 열린다. 그것이 인생의 묘미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이 그 순간의 희열을 맛보지 못한 채 생을 포기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 번 더!’는 우리 생의 마지막 비의(秘意)다.

모든 작가의 로망은 오직 자신만의 문장을 짓는 것이다. 그러나 쉽지 않다. 아무리 새롭고 기발한 문장을 지어도 옛 문헌이나 책을 찾아보면 누군가 한발 앞서 지었거나 이미 사용한 문장이기가 쉽다. 특히 감각적인 글을 쓰는 작가라면 자신만의 문장에 목을 맨다. 빌 브라이슨도 그런 작가였다. 어느 날 깊은 밤까지 글을 쓰던 그는 문득 문장 하나를 지어놓고 쾌재를 부른다.

“모든 치약튜브에는 언제나 약간의 치약이 남아있다.”

그가 지은 문장이다. 자신의 문장을 물끄러미 바라본 빌 브라이슨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아무래도 자신은 천재인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면서.

‘더 타임스’가 선정한 ‘현존하는 가장 유머러스한 작가’ 빌 브라이슨은 방대한 양의 과학 정보를 재미있게 풀어낸 과학 교양서 ‘거의 모든 것의 역사’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작가다. 그의 책 중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미국학 : 미국인도 모르는 미국이야기’가 있다. 거기 나오는 에피소드에 앞서 소개한 문장이 나온다.

버펄로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에 도착한 브라이슨은 사진이 부착된 신분증을 제시하라는 규칙을 보고서 오래전 아이오와주에서 발급받은 운전면허증을 제시한다. 항공사 직원이 유효기간이 지난 면허증이라며 다른 것을 제시하라고 하자 브라이슨이 말을 받는다. “그럼 비행기를 몰지 않도록 하죠.” 그러나 직원은 요령부득이다. 최근에 찍은 사진이 필요하다는 거다. 한숨을 내쉬며 소지품을 샅샅이 뒤진 브라이슨은 마침 자신이 쓴 책 한 권을 꺼내 표지에 나온 사진이 자신이라고 소개한다. 항공사 직원이 다시 고개를 흔든다. 이번에는 양식(시각 이미지 리스트)에 맞지 않는 사진이라며 통과할 수 없다는 거다. 순간 목소리를 낮추며 항공사 직원에게로 바싹 다가선 브라이슨이 속삭인다. “설마 내가 버펄로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특별히 이 책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브라이슨을 빤히 쳐다본 직원은 다른 직원을 불러 의논하더니 또 다른 직원을 불러온다. 결국 이 일은 세 명의 창구직원과 그들의 상사와 다시 그 상사의 상사가 동원된 끝에 어렵사리 해결된다. 다시는 이런 식으로 얼렁뚱땅 통과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준엄한 경고와 함께 최고 책임자의 허락하에 겨우 통과하게 된 것이다. 브라이슨은 ‘버펄로에 가기 위해 나만큼 진지하게 노력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게이트를 향해 걷다가 뒤돌아서서 나지막하고 비밀스러운 어조로 직원에게 말한다. “치약 튜브에는 언제나 약간의 치약이 남아있답니다.”

노숙인을 비롯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인문학을 하면서 위의 문장을 자주 인용했다. 내 나름 문장의 의미를 달리 해석하면서다. 가난한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자신의 삶에는 더 이상 희망이라는 것이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지레 포기하고, 좌절하고, 괴로워하다가 이내 술추렴으로 허송하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곤 한다. 어설픈 잔소리가 먹힐 리 없고 또 어쭙잖은 희망론이 통할 리 없다. 그렇다고 나 몰라라 할 수도 없는 노릇. 그때 마침 빌 브라이슨의 유쾌한 문장을 떠올렸다.

“여러분의 삶에도 희망이 남아 있습니다. 칠레의 아옌데 대통령은 쿠데타군과 맞선 극단의 상황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결국 장렬하게 전사했지만 그의 정신과 용기는 많은 사람을 감동시켰지요. 절대적 절망이나 희망 없는 삶이란 없습니다. 자신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십시오. 마치 다 쓴 치약 튜브를 가위로 오려서 살펴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럼 거기 반드시 약간의 치약이 남아 있을 겁니다.”

다 썼다고 생각한 치약튜브라도 가위로 오려보면 거기 약간의 치약이 남아 있다. 어느 누구도 치약튜브의 치약을 완벽하게 짜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네 삶이라는 것도 그렇다. 얼핏 절망적이며 희망이 없을 것 같지만 가만 들여다보면 거기 희망의 씨앗이 담겨있다. 섣불리 절망하거나, 해보지도 않고 지레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자 스피노자의 말을 곱씹을 필요가 있다. “아무리 견디기 힘든 고통이라 해도 피하지 않고 그 고통의 내용을 알려고 하면 그 고통은 더 이상 고통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피하지 않는 것, 고통과 마주하는 것, 그게 바로 고통을 이기는 유일한 길인지도 모른다. 다 쓴 것처럼 보이는 치약도 가위로 오려놓고 그 안을 살펴보면 항상 약간의 치약이 남아있는 것처럼. 희망이라는 것도 그렇다. 우리네 삶에 늘 붙어 있다. 다만 잘 보이지 않고 찾기 힘들 뿐이다.

“치약 튜브에는 언제나 약간의 치약이 남아있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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