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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오피니언] 시론-오승훈 부국장 겸 경제산업부장 게재 일자 : 2018년 02월 23일(金)
‘소득 3만 달러’ 진입의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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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훈 경제산업부장

지난 4분기 가계 실질소득 증가
富 창출보다 移轉 늘어나 결과
지표 나아져도 가계 빚은 여전

‘5030클럽’ 7번째 국가 확실시
유리한 숫자에만 집착 땐 낭패
‘취객의 가로등’ 警句 되새길 때


가계의 경제사정이 녹록하지 않은 지 오래됐는데 22일 다소 호전되는 듯한 소식들이 이어졌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서 지난해 4분기 2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명목소득이 444만5156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1% 증가했다. 물가 상승까지 따진 실질소득은 431만3591원으로 1.6% 늘었다. 2년 만에 플러스로 전환한 것이다. 기초연금, 실업급여에다 추석 때 오간 용돈 등, 즉 부(富)의 창출 아닌 이전(移轉)이 증가한 덕분이다. 4000가구 대상 통계이긴 하지만 현금 복지를 늘리는 소득주도 성장에 힘이 실리게 됐다고 평가해도 큰 무리는 아니다. 가계부채에도 변곡점이 생겼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난해 4분기 ‘가계신용’에서 가계부채 규모는 1450조9000억 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였으나 증가세가 전년 대비 8.1%로 둔화해 정부 목표치로 떨어졌다.

하지만 ‘경제지표는 나아지고 있다는데 생활형편은 나아지지 않는다’는 얘기를 여전히 할 수밖에 없다. 가계부채를 전국 1952만 가구로 나누면 가구당 부채는 7432만8900원이다. 산술적으로만 따지면 지난해 우리는 2인 이상 가구당 연간 5334만여 원을 번 반면, 가구당 7432만 원의 빚을 졌다. 상당한 적자 살림을 사는 건 분명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올 연말이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 달러 시대’가 된다는 소리에 솔깃해진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회견에서 기정사실로 했다. 기획재정부는 3만2000달러로 예상했다. 2006년 2만 달러 대에 진입한 이후 11년째 넘지 못한 벽을 깨고 이른바 ‘5030클럽 국가’ 반열에 든다는 얘기다. 인구가 5000만 명이 넘으면서 GNI가 3만 달러를 넘는 선진국, 현재는 독일·미국·일본·영국·프랑스·이탈리아뿐이다. 한국은 일곱 번째가 된단다.

1인당 GNI는 국민의 생활 수준을 나타내는 대표적 지표다. 국내외에서 벌어들인 임금, 이자, 배당 등의 소득을 합친 수치다. 연간 명목 GNI를 추계인구(7월 기준)로 나눠서 구한다. 우리의 2017년 말 기준 1인당 GNI는 오는 3월 말 한국은행이 발표하는데, 기획재정부는 ‘2018년 경제정책 방향’에서 2만9700달러로 추정했다. 원·달러 환율 1083원을 기준으로 삼았으니 1인당 3216만 원, 2인 가구는 6432만 원이다. 얼핏 봐도 가계동향조사의 가구당 연간소득보다 1000여만 원 많다. 그래서 나라는 부자인데, 국민은 가난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물론 1인당 GNI는 가계뿐만 아니라, 20∼30%대를 차지하는 기업·정부의 소득도 포함돼 있다. 순수 가계소득보다 많을 수밖에 없는 수치다.

그런 사정을 감안해도 1인당 GNI로 삶의 수준을 재는 데 뭔가 부족하다는 불신은 가시지 않는다. 오죽하면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이 GNI 계산에 기본이 되는 국내총생산(GDP) 대신에 새로운 통계를 만들려 했겠는가. 우리 사회의 소득 양극화를 놓고 소득분배율이 개선됐다느니, 악화했다느니 하는 것에도 늘 논란이 있다. 한국은행의 ‘국민소득계정’(3월 말 발표)과, 국세청의 ‘근로소득통계’ 간에 약 30조 원(2016년 기준) 넘게 차이가 난다고 한다. 숫자의 정확성과 신뢰도에 따라 오독과 착시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진짜 문제는 통계 수치 자체가 아니라, 위정자가 그 숫자에 집착할 때다. 숫자를 목표로 내세우는 건 경제 총력을 모으는 설명의 방법일 뿐, 경제의 참모습과는 거리가 있는 까닭이다. 역대 정부마다 경제공약을 숫자로 제시하는 게 풍조였다. 노무현 정부는 ‘7% 성장, 250만 개 일자리 창출’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7% 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위 부국이라는 ‘747’이었다. 박근혜 정부도 잠재성장률 4%, 고용률 70%,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의 ‘474’였다. 모조리 헛된 약속이 된 것은 모두가 안다.

문재인 정부에도 숫자 공약이 많다. 최저임금 1만 원 달성,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0), 일자리 70만 개 창출 등이다. 이 성과를 입증하려 구조적인 문제를 놔둔 채 단기 정책에 전력하면 통계치를 꿰맞추는 숫자놀음이 되고 만다. 정치인에게 통계는 ‘술 취한 사람의 가로등’이라는 경구(警句)가 있다. 빛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지(support)를 위해 이용한다는 것이다. 문 정부도 유리한 ‘숫자’만 보지 말고 ‘실질’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경제도 산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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