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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현모의 세종이 펼친 ‘진짜 정치’ 게재 일자 : 2018년 02월 28일(水)
힘만 앞세우는 장군에게 “敵도 포용해야 마음 얻는다” 신신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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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6년(세종 18년) 겨울, 세종은 함경도 회령의 국방 책임자 이징옥 장군에게 급히 편지를 보냈다. ‘관유득심(寬裕得心)’, 즉 관대하고 느긋한 지도자가 사람들의 마음(心)을 얻는 것이니 여진족을 위력으로 제압하지만 말고 관대하고 부드럽게 다스리라는 게 편지의 요지였다. ‘세종실록’을 보면 당시 이징옥 장군은 성질이 굳세고 용감하며 군령이 매우 엄했다고 한다. 적의 침입 소식을 들으면 즉시 무장하고 성 밖으로 나가서 적을 물리치는 맹장(猛將)이었다. 이 때문에 여진족들은 늘 그를 두려워하며 ‘어금니 가진 큰 돼지(有牙大저)’라고 불렀다. 그런데 여진족 중 일부가 원한을 품고 ‘술 취한 틈을 타서 이징옥을 쏘아 죽이려고 한다’는 사실이 세종에게 보고되었다. 세종은 급히 이징옥에게 편지를 보내 ‘위무엄찰(威武嚴察)’, 즉 힘으로 제압하고 엄격하게 대하지만 말고, 포용하는 리더십을 발휘하라고 당부했다.

세종은 이징옥을 설득하기 위해 역사 속 사례를 들었다. 중국 전국 시대의 명장 오기(吳起)가 그 예인데, 세종에 따르면 오기는 지략이 온갖 사무에 통달하고, 용맹은 전 군대에 뛰어났다. 그는 위나라의 장수로서 제후들과 싸워 64번이나 이겼으며, 토지를 사방으로 넓히고 지경을 천리나 개척했다. 하지만 오기는 오로지 위무만 숭상하고 은혜와 인덕이 적었다. 가는 곳마다 그의 뒤에는 원망과 비방이 뒤따랐으며, 여러 나라에서 두루 벼슬했음에도 말년이 좋지 못했다.

▲  박현모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세종의 이런 당부에도 불구하고 이징옥의 굳센 성질이 변화된 것 같지는 않다. 2년 뒤인 1442년 여름에 “경이 일의 완급을 헤아리지 않고 아침에 명령하고는 저녁에 독촉하며 사졸들이 그 손발을 둘 수가 없는 상황”이라는 왕의 지적이 그것이다.

이징옥과 달리 ‘강직한 원칙론자’였다가 관대한 지도자로 거듭난 사람도 있다. 황희가 그 예다. 황희의 벼슬 경력을 보면 초창기의 그는 유연함과 거리가 멀었다. 어떤 관리를 기복(起復·관직 복귀)시키라는 왕명에 항거하다가 파직당하는가 하면,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집단 상소를 주동하기도 했다. 그런 그를 변화시킨 결정적 계기는 양녕대군 세자 폐위사건이었다. 황희는 태종 말년에 세자를 교체하려는 왕에게 ‘아직 나이가 어린 탓’이라며 강하게 반대했다. 이런 그를 태종은 ‘정치적 보험’, 즉 장차 양녕이 왕위에 오른 다음을 대비한 것이라 판단해 전라도 남원으로 유배를 보냈다. 태종은 곧이어 세자를 교체하고 급기야 66일 만에 전격적으로 왕위를 세종에게 물려주었다.

이 과정을 겪으면서 황희가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 기록을 보면, 그는 유배지 남원에서 ‘성상의 은덕’에 감사하면서 빈객은 물론이고 동년배 친구들조차도 사절하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자기주장을 끝까지 관철시키려던 태도를 반성하고, 국왕이 전체를 조망하면서 내린 결정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유연한 인재로 변화된 것이다. 세종의 조정에서 황희는 자신의 주장이 없지 않았으나, 토론을 통해서 최종결정이 내려지면 주저하지 않고 그 결정을 받아들였다. 가령 ‘공법’이라는 세제개혁에 대해 처음에는 반대했으나, 토론과 보완을 통해 수정안이 나오자 그는 새로운 세제를 추진하는 중심인물이 되었다.

지금 우리의 정치를 볼 때 가장 아쉬운 것은 황희 같은 관유(寬裕)한 재상, 자신을 내려놓는 힘을 가진 큰 정치가이다. 큰 정치가는 공식,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당면한 국가적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이고 촉진하며, 구성원들의 지지와 협력을 끌어내는 존재다. 평창동계올림픽을 치르며 국민의 마음이 모처럼 한곳에 모인 지금, 황희 같은 관유한 정치가가 나와 산적한 국가적 난제들을 풀어가길 희망한다.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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