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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김효정의 에로틱 시네마 게재 일자 : 2018년 04월 17일(火)
짝사랑 여성을 소유하려는 한 남자의 비틀린 욕망과 파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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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의 끝은 어디인가. 사랑이든 혹은 단순한 욕망의 대상이든 인간이 누군가를 간절히 원한다면 어디까지 소유하고 싶어질까.

미국을 대표하는 거장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딸인 제니퍼 린치 감독의 1993년 연출작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Boxing Helena·사진)는 한 남자가 자신이 짝사랑하는 여자를 완벽히 소유(?)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에로틱 미스터리물이다.

성공의 정점에 있는 외과의사 닉(줄리언 샌즈)은 옆집에 사는 아름다운 여성 헬레나(세릴린 펜)를 흠모한다. 밤만 되면 닉은 망원경을 집어 들고 헬레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한다. 화려한 커리어와 막대한 부를 영위하고 있는 닉이지만 어린 시절, 예쁜 외모로 외도를 일삼았던 어머니에 대한 트라우마로 성인이 돼서까지 고통받는다. 예쁜 여성에 대한 집착적인 애증이 헬레나를 향한 스토킹으로 발전한 것이다. 주변에 남자들이 들끓는 통에 접근하기도 힘든 헬레나에게 닉은 용기를 내 데이트 신청을 하지만 번번이 거절당한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닉의 초대를 억지로 받아들인 헬레나는 그의 집에 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를 절단하게 된다. 완벽에 가까운 외모로 자신을 차지하고자 고군분투하는 남자들을 조롱하는 것이 평생의 낙이었던 헬레나는 다리를 잃은 후 어쩔 수 없이 닉에게 의존한다. 움직일 수조차 없는 헬레나는 자신을 여전히 욕망하는 남자의 호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헬레나의 비극적인 사고가 닉에게는 새로운 인생의 발단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헬레나의 머리를 감겨주는 것이, 점심을 먹이고 낮잠을 자고 나면 밤새도록 그의 몸을 탐하는 것이 닉의 전업이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닉은 헬레나를 완벽하게 소유했다고 믿지만, 헬레나는 자신의 몸을 담보로 잡고 군림하는 이 남자를 점점 증오한다.

이 영화는 1990년대 봇물처럼 쏟아지듯 제작된 에로틱 스릴러 중에서도 영화의 극단적인 스토리와 표현수위, 기발한 설정 등으로 관객과 평론가로부터 야유와 환성을 동시에 받았던 양가적 위상을 지닌 작품이다. 특히 마돈나와 킴 베이신저가 거절했던 헬레나 역을 당시 주목받았던 신인 여배우, 세릴린 펜이 완벽하게 연기하면서 화제가 됐다.
▲  김효정 영화평론가


펜이 헬레나 역의 적역 배우로 전설이 된 이유는 단연 그의 관능적인 외모와 뇌쇄적인 표정 연기다. 이 영화가 에로틱 영화의 선두에 있는 것은 남성 캐릭터들과의 정사 장면 때문이 아닌 전적으로 헬레나가 혼자 있을 때 펼치는 솔로 연기와 노출이다. 닉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 초대받은 헬레나가 술에 취해 수영장에 뛰어들어 입고 있던 검은색 실크 드레스가 흠뻑 젖은 채로 춤을 추는 시퀀스는 브룩 실즈나 캐서린 키너와 같은 동시대의 섹스심벌들을 압도할 정도로 도발적인 장면이다. 또한 숨어서보는 닉의 시점에서 관찰되는 헬레나의 자아도취적 행위, 예를 들어 보이지 않는 관객을 전제로 하는 듯한 자위행위 등의 재현으로 영화는 제한 상영가 등급을 받기도 했다.

닉이 헬레나를 완벽히 소유하기 위해 그의 양팔을 절단하는 영화의 후반부는 조소가 나올 정도로 과한 설정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한 남자의 비틀린 욕망과 집착의 파국을 그로테스크하면서도 광기 가득한 서사를 통해 보는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안타까운 것은 영화가 처음으로 선보인 선댄스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아 스타 반열에 오른 펜이 이 영화 이후로 눈에 띄는 활약을 하지 못하고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힘이 넘치는 갈색 머리와 산호 빛 눈동자를 가진 헬레나의 요염한 표정과 윤기가 흐르는 나신(裸身)은 수족이 없는 비너스보다 더 아름다운 이미지로 남는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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