行訴 조정 귀찮아하는 관청… 민원인은 지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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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조정권고 성사 10%대
관료사회 형식주의에 빠져
“판결로 승부 보겠다” 팽배
민원인 시간·비용 부담 커
行訴法에 조정 명문화 필요

개인이 정부의 행정처분에 불복해 제기하는 행정소송은 나날이 증가하고 있지만, 분쟁을 조속히 마무리할 수 있는 조정 건수는 제자리걸음인 것으로 나타났다. 법에 명문화돼 있지 않은 조정제도를 따르기보다 판결로 승부를 보겠다는 ‘관료사회의 레드테이프(형식주의)’ 탓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재해 보상보험·세금 부과·운전면허 취소 등 불합리하거나 지나치게 가혹한 행정 처분으로 삶이 피폐해지는 경우도 많은데도 불구하고 관료사회 형식주의에 재판 비용과 시간을 감당하기 벅찬 개인들만 애가 끓는 셈이다.

26일 서울행정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법원에 접수된 전체 행정사건 1만884건 중 1172건(10.7%) 만이 재판부의 조정권고에 양측의 합의로 소를 취하한 것으로 나타났다. 법원에서 조정을 권고해도 행정 관청들이 의무규정이 없다면서 뒷짐을 지고 ‘판결로 끝까지 승부를 보자’고 나오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확정판결과 같은 효과가 있는 민사소송에서의 조정과 달리 행정소송에서 조정은 재판부의 권고 형태로 이뤄진다. 현실에서 대부분의 행정청은 초기 행정 처분과 이후 소송 관련 업무처리 부서가 달라 의견 조율에 긴 시간이 걸리고 심지어 번거롭다는 이유로 실무진 선에서 흐지부지되는 경우도 다반사라는 게 현장의 전언이다.

아직 10%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 문제지만, 길고 복잡한 소송 절차는 판사의 조정 권고가 양측에 의해 받아들여질 경우 빠르게 일단락된다. 강원 정선군에 있는 탄광에서 일하던 권모(67) 씨 사례에서도 드러난다. 권 씨는 폐가 끊어질 듯한 기침이 시작됐고, 목에선 가래 끓는 소리가 났고 가끔은 숨을 쉬기조차 어려웠다. ‘광부’라는 이름으로 젊은 날을 보냈지만, 켜켜이 쌓인 몸 속의 탄가루로 진폐증을 앓게 된 때문이었다. 권 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진폐보험급여를 청구했다. 검사 결과 ‘대상이 아니다’는 판정을 받았다. 결국 권 씨는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정밀진단을 받고서야 진폐 제1형임이 드러났다. 이에 서울행정법원 행정7단독 이승원 판사는 지난 1월 “보험급여를 지급하는 것으로 처분을 변경해 분쟁을 종결하라”고 양측에 조정권고를 통해 문제를 풀었다.

이 때문에 행정소송법에 조정제도를 명문화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재판이 단축되면 소송 부담이 커지는 개인에게 이롭고, 행정청 입장에서도 소송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한 재경지법 판사는 “행정행위는 공익적인 성격을 띠기 때문에 사회 전체적인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수민·김리안 기자 human8@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