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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김회평 논설위원 게재 일자 : 2018년 05월 02일(水)
한진家 사태와 ‘가족경영’의 正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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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평 논설위원

오너 리스크로 50년 기업 흔들
조현민 자매에 분노하는 건
자질 없이 군림하는 選民의식

가족경영을 탓하는 건 단견
평판 우수한 글로벌 기업 즐비
富 아닌 책임 물려주는 게 관건


한진 오너 일가의 시계는 4년 주기로 똑같이 흐른다. 언니 조현아는 땅콩 회항으로, 동생 조현민은 물벼락 갑질로 포토라인에 섰다. 자매가 시차를 두고 똑같은 장면을 연출한 것은 기업사에서 유례가 없을 듯하다. 조만간 어머니 조사도 예정돼 있다. 아버지는 똑같은 사과문을 냈다. 여식의 ‘어리석은 행동’이 ‘미숙한 행동’으로, ‘애비로서’가 ‘가장으로서’로 바뀌었을 뿐, ‘저의 잘못’이라거나 ‘모든 직책에서 사퇴하게 할 것’이라는 수습책은 판박이다. 하지만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이 이미 없었다. 동생이 사고를 칠 즈음 언니는 보란 듯이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진정성이 있을 리 없다.

자매가 안하무인 횡포를 서슴지 않은 기저엔 삐뚤어진 선민의식이 보인다. 조현민은 사퇴 전까지 대한항공 전무 등 7개 계열사 임원이었다. 30대 중반의 동년배는 쳐다볼 수도 없는 감투들이다. 많은 사람이 공분하는 대목이 이 지점이다. 자질이나 경륜, 인품잣대로 볼 때 직위가 가당찮다고 보기 때문이다. 토머스 페인은 ‘세습이란 어리석고 사악하며 부적절한 자들에게 문을 열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선택받았다고 느끼는 사람은 거드름에 일찍 중독되고, 세상을 제대로 읽을 기회가 없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자매의 언행에 그런 흔적이 농후하고, 이어서 터져 나오는 다른 가족의 행적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직원들은 그저 부리는 사람일 뿐이고, 그들이 느낄 모멸감 따위는 관심 밖이다. 상황 모면을 위해 사과는 하지만, 뭘 잘못했는지조차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내년 창립 50주년을 맞는 대한항공은 오너 3세의 연이은 갑질로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대한항공은 태극 문양이 상징하듯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 중 하나다. 국민의 지원을 등에 업고 오랫동안 독점적 수익을 누린 회사이기도 하다. 배신감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항공·호텔 등 주력사업은 평판이 좌우하는데 이미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갑질 파문은 밀수·탈세 등 중범죄 의혹으로까지 번진 상황이다. 직원들마저 오너가에 등을 돌린 건 가장 아픈 대목이다. 이런 마당에 조양호 회장은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한다며 자기 측근을 앉히는 한심한 수를 뒀다. 각종 비리에 상황판단 능력까지 딱한 모습이다. 오너 리스크의 전형이다.

한진가 추문을 지켜보며 가족경영의 폐해를 지적하는 사람이 많다. 경제민주화론자들도 가족경영, 혹은 오너경영을 재벌문제의 근원으로 보고 백안시해왔다. 하지만 세계 기업사를 보면 가족경영 자체를 배척할 일이 아니다. 한진가 추락은 가족경영의 귀결이 아니라 그 본령에서 탈선한 탓이다.

헤르만 지몬이 분류한 ‘히든 챔피언’은 세계적 시장지배력을 가진 강소(强小)기업이다. 독일에만 1300개를 헤아리는 이들 기업은 제조업 기반을 든든히 지키는 존재다. 강소기업의 3분의 1이 100년 이상의 연륜을 자랑하고, 이들 대다수는 가족기업이다. 가족기업들은 아웃소싱·인수합병(M&A)·사업 다각화 등 유행하는 경영전략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간다. 장인(匠人)의 품격과 최고 품질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유럽에는 200년 이상 된 가족회사가 4000개를 헤아리고, 일본만 해도 3000개를 넘어선다. 200년 연륜이라면 최소 7∼8대를 넘어 생존해 있다는 뜻이다. 포천지 선정 글로벌 500대 기업의 20%가량이 가족회사다. 유럽에 상장된 가족기업 비율은 40% 정도로 더 높다. BMW·월마트·포드도 가족이 운영하는 오너 기업이다. 통념과 달리 가족기업은 실적이 평균보다 높고, 더 오래 지속하고, 더 많이 고용한다. 단기 이익에 집착하지 않고, 위기 대처능력이 앞서는 데다, 임직원 충성심이 높다는 것이 장점이다.

피터 드러커는 “위대한 경영자의 마지막 과제는 승계”라고 했다. 1899년 창업한 독일 프리미엄 가전사 밀레는 치열한 내부 경합을 거쳐 후보를 뽑고, 4년 이상 외부 회사에서 경영 실무를 쌓게 한 뒤 최종 면접을 치른다. 장수 가족기업의 특징은 핏줄만으로 후계자를 세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승계의 핵심은 부(富)가 아닌, 기업가정신과 책임감을 물려주는 일이다. 창업 3, 4세대로 내려오면서 치열한 오너십을 잃은 일부 기업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가족기업이 예외 없이 강조하는 덕목이 있다. 직원을 소중히 여기는 전통이다. 한진가는 가족경영의 금도를 저버린 결과 벼랑 끝에 몰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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