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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북리뷰 게재 일자 : 2018년 05월 04일(金)
무너진 세상을 위로한 ‘음악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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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생 15곡의 교향곡과 15곡의 현악 사중주를 작곡한 쇼스타코비치의 만년 모습. 그의 음악은 ‘20세기 러시아 인민의 영혼’이란 찬사를 받았다. 돌베개 제공
▲  19세에 교향곡 1번을 작곡한 쇼스타코비치.
▲  전쟁 중 1941년 레닌그라드에서 소방관으로 근무하던 시절.
▲  매일 오전 6시에 일어나 정장을 입고 작곡을 했다.

- 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 / M.T. 앤더슨 지음, 장호연 옮김 / 돌베개

나치에 짓밟혀 암울했던 시대
‘교향곡 7번’으로 희망을 전한
쇼스타코비치의 치열한 삶

히틀러의 봉쇄에 맞서 저항한
레닌그라드 시민 역사 담아

‘교향곡 7번’에 담긴 메시지
여전히 ‘숨겨진 암호’로 남아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의 음악이 한국에서 처음 연주된 건 유신 말기인 1978년 7월 세종문화회관 개관공연에서였다. 뉴욕 필하모닉을 이끌고 개관공연에 온 ‘거장’ 레너드 번스타인은 한국 정부가 소련의 작곡가란 이유로 반대한 쇼스타코비치의 작품 연주를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강행했다. 그것도 소비에트 혁명을 다룬 ‘혁명’이란 부제가 붙은 ‘교향곡 5번’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15개에 달하는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중 가장 유명하고 인기가 높은 교향곡 5번은 1937년 스탈린으로부터 음악적 비판을 받고 숙청의 위기에 몰렸던 그가 사회주의 리얼리즘 사조의 입맛에 맞게 작곡해 기사회생을 하게 해준 곡이라는 점이다.

1979년 소련의 음악학자 솔로몬 볼코프가 생전의 쇼스타코비치와 나눈 대담을 정리한 ‘증언’이라는 회고록을 미국 등 서구에서 출간했다. 회고록에는 쇼스타코비치가 개인의 예술혼을 억압하는 스탈린 체제에 대한 분노를 여과 없이 토로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그런 내용이 국내에 보도된 뒤 1980년대 5공 시절에도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이 비교적 자유롭게 연주됐다. 그의 음악이 인기를 누리고 흔하게 연주되는 요즘 돌아보면 쓴웃음이 나는 옛 얘기지만, 이 책에 소개되는 쇼스타코비치의 지난했던 삶과 엇갈리는 평가도 이와 닮아있다.

쇼스타코비치는 스탈린과 히틀러, 미·소 냉전의 폭압 속에서 예술가로 살며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해 ‘반어적 문법’을 익힌 사람이다. 그의 총체성을 드러내기 어려운 이유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저자는 냉전시대에 나온 볼코프의 ‘증언’을 인용하는 데 신중하게 접근한다.

소설가이자 클래식음악 칼럼니스트인 이 책의 저자는 ‘레닌그라드’라는 부제가 붙은 ‘교향곡 7번’의 탄생에 초점을 맞추었다. 쇼스타코비치에 대해 손에 꼽는 평전이자 히틀러의 봉쇄에 맞서 끝내 무릎 꿇지 않은 도시 레닌그라드 시민에 관한 역사서, 절망적인 상황에서 음악의 힘을 드러내 준 예술서이다.

책의 프롤로그는 1942년 6월 2일의 상황을 묘사한다. 유럽의 대부분이 나치에 점령된 그때, 러시아에서 소련 정보원이 미국 정보원을 만나 상자를 하나 건넸다. 상자에는 다 펼치면 길이가 30m에 달하는 마이크로필름이 들어있었다. 이 필름은 1만6000㎞를 돌아 뉴욕에 도착했다. 필름에는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7번 악보 252페이지가 들어있었다. 그 첫 페이지에 러시아어로 “레닌그라드에 바친다”라는 문구가 들어있어 이 곡은 ‘레닌그라드’ 교향곡으로 불리게 됐다. 소비에트 정부는 왜 이 작품을 서구로 전달하려 그렇게 애를 썼을까.

200년간 로마노프 왕조의 수도였으며, 러시아의 서방을 향한 창문이었고, 소비에트 혁명의 진원지였던 레닌그라드는 쇼스타코비치의 운명과 하나로 엮여있다. 나치는 1941년 9월에 레닌그라드 외곽을 점령해 900일간 도시를 봉쇄했다. 그 사이 사람들은 벽지에 붙은 풀을 뜯어 먹고 행여 먹을 수 있는 시체를 찾아 돌아다녔으며, 100만 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현장에 있던 쇼스타코비치는 시민들을 고무, 찬양하며 추모하는 ‘교향곡 7번’의 작곡에 들어간다. 그가 라디오 방송에서 작곡의 진행 상황을 알릴 정도로 시민들도 그의 음악에 희망을 걸었다.

1942년 3월 5일 볼쇼이 극장에서 이 곡이 초연되자 소비에트 당국은 반(反) 나치 투쟁의 찬가로 치켜세웠다. 연주실황은 확성기를 통해 도시와 전선에서 울려 퍼졌다. 마이크로필름으로 악보를 전달받은 서구 연합국에서도 연주되며 연합군의 동맹을 강화하는 데 기여할 정도로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 왜 소비에트 당국이 필름 공수에 진력을 다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당시 쇼스타코비치는 나치와 소비에트 독재로부터 이중의 압박을 받고 있었다. 1936년 만든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이 스탈린으로부터 ‘음악은 없고 혼란뿐’이라는 혹평을 받자 19세에 첫 교향곡을 작곡하며 ‘러시아의 천재음악가’로 안팎에서 추앙받던 쇼스타코비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논쟁의 희생양이 될 위기를 맞았다. 언어로 규정되기 어려운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음악에 대해 소비에트 정권은 사회주의적 규격을 요구했다. 이듬해 앞서 말한 ‘교향곡 5번’을 통해 극적으로 생명을 유지했지만, 그는 주변의 수많은 예술인, 지식인, 군인들이 가차없이 숙청당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그는 변덕스럽고 잔혹한 소비에트 정권 하에서 “가면 뒤에 숨어 사는 법을 배워야” 했다. 따라서 교향곡 7번에 담긴 음악적 메시지가 나치에 대한 저항인지, 수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독재자 스탈린에 대한 저항인지는 여전히 이견이 많다. 지금도 그의 음악에서 숨겨진 암호를 찾아내려고 학자와 청중들이 애쓰는 이유다. 하지만 쇼스타코비치가 고향 레닌그라드와 먼저 떠난 이들과 살아남은 이들에게 이 곡을 헌정했다는 것에서만큼은 이견이 없다. 그가 죽기 전에 남겼다는 “내 교향곡의 대부분이 묘비다… 오로지 음악만이 그들을 위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말은 그의 음악과 삶을 잘 요약해 준다. 546쪽, 2만2000원.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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