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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이미숙 논설위원 게재 일자 : 2018년 05월 09일(水)
김정은의 ‘트로이 목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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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논설위원

김정은 비핵화는 전략적 전환
문정인,이종석 등 잇달아 주장
北 완전 비핵화, 구체성 없어

문 정부, 北 신뢰 속 유화 조치
안보는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야
희망과 기대는 정책일 수 없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비핵화로 전략을 바꿨다는 주장이 문재인 정부 안팎에서 속출하고 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최근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에서 김정은이 관여 정책에 대한 전략적 결정을 했다고 단언했다. “북한이 비핵화로 얻을 것의 의미를 알기 때문에 다시는 낡은 관행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게 근거다. 4·27 판문점 선언에서 ‘완전 비핵화’에 합의한 것도 김정은의 전략적 결정이라고 문 특보는 주장했다. 평화협정 시 주한미군의 지속 주둔 정당화가 어려울 것이라는 언급으로 논란이 됐고, 청와대 경고까지 받았지만 사실 이 부분이 더 의미심장하다.

노무현 정부 때의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도 북한이 전략적 결단을 한 뒤 한반도 정세를 주도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정은이 핵 문제에 대한 전략적 결단을 내린 만큼 문재인 정부도 김정은을 지원하면서 한반도 냉전을 끝내야 한다는 제언이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김정은이 베트남식 개혁·개방에 나설 가능성을 얘기하기도 한다.

북한이 전략적 전환을 했다면, 김정은의 비핵화에 대한 입장에 명확히 드러나야 하는데 아직은 구체성이 없다. 김정은은 판문점 회담 때 ‘완전한 비핵화를 통한 핵 없는 한반도 실현’이라는 목표만 제시했다. 이에 앞서 3·26 베이징 북·중 회담 때엔 단계적 동시적 조치라는 비핵화 방법론만 밝혔고, 8일 다롄(大連)회담 때도 이를 반복했다. 김정은이 생각하는 비핵화가 어떤 것인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반면 김정은은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외교와 국방의 궁극의 목표는 전쟁 방지”라고 밝힌 것에 화답이라도 하듯, 판문점 선언에서 “어떤 형태의 무력도 서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불가침 의지를 재확인했다. 그러나 핵을 갖고 있는 북한이 이를 언제 뒤집을지 알 수 없다. 남북은 일찍이 1991년 남북 기본합의서 제9조에서도 “상대방에 대하여 무력을 사용하지 않으며 상대방을 무력으로 침략하지 않는다”고 합의했지만, 번번이 종잇장이 됐다. 1996년 강릉 무장공비침투사건, 2002년 제2연평해전,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등 북한의 도발은 셀 수 없이 많다.

판문점 회담 후 문 정부는 “한반도에 평화의 시대가 열렸다”며 홍보전에 주력하고 있다. 김정은의 말을 굳게 믿고 대북 유화조치를 하고 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3일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 때 나카오 다케히코(中尾武彦) ADB 총재를 만나 북한 경제 재건 지원 가능성을 타진했다. 북핵 폐기 때까지 최대 압박과 제재가 지속돼야 한다는 게 국제사회의 공통된 의지인데, 문 정부 인사들의 마음은 벌써 북한 경제 지원 쪽에 가 있는 것이다. 국방부는 유사시 북한 지휘부 및 대량파괴무기(WMD) 제거를 위한 특수임무여단의 특수작전용 헬기 도입 사업을 없던 일로 했다. 군 당국은 지난해 12월 특임여단 창설 때도 북한 자극을 우려해 언론 공개를 유보했다.

김정은이 전략적 전환을 했을 수도 있지만 최근 북한의 징후들로는 그렇게 판단하기가 어렵다. 1990년대 중반 최악의 식량난에 처한 북한이 국제기구들에 지원 요청을 하며 제한적 개혁·개방 조치를 하던 무렵에도 북한의 전략적 전환에 대한 논의가 많았다. 필자도 김정일 시대를 분석한 ‘변화는 시작됐다’는 책에서 개혁·개방 정책이 북한 체제를 변화시키는 ‘트로이 목마’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오판이었다.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은 외부의 지원 등은 받으면서도 체제 개혁·개방은 하지 않는 식으로 고난의 행군 시대를 이겨냈다. 김일성 사망 후 17년간 집권하면서 핵 강국의 유산을 남겼다.

안보는 최악의 사태에 대비하면서 최대한 보수적으로 해야 한다. 희망과 기대는 정책이 될 수 없다. 현실적이고 냉정한 자세로 북한의 태도 변화를 주목하며 핵 폐기를 끌어내는 신중함이 요구된다. 문 정부가 과도한 대북 낙관론을 견지하며, 호들갑을 떠는 것은 스스로 안보 빗장을 여는 것과 마찬가지다. 김정은은 국제 제재는 피하면서 핵무기를 숨겨두는 방안에 골몰하고 있을 것이다. 혹 폐기해도 유사시 다시 만들 능력은 결코 없애지 않을 것이다. 문 정부가 선의에 바탕을 둔 대북 유화 조치에 나선다면,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끌 ‘트로이 목마’를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김정은의 트로이 목마 위장술에 속아 핵 인질을 자청하는 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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