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대표회의, ‘靑, 사법부 개입’ 성명서 움직임

- 靑비서관 ‘이재용 항소심 판사 파면 청원’ 대법원 전달

법관대표 5명 비판 입장 표명
회의 안건 상정 정족수 충족
집행부 성명서 채택 여부 주목

청와대가 ‘판사 파면’ 국민 청원을 법원행정처에 전달한 것과 관련, “전국법관대표회의 차원에서 비판 성명서를 내야 한다”는 안건이 법관대표회의에 상정될 전망이다.

9일 법관대표회의 측에 따르면 김태규 울산지법 부장판사가 전날 법원 내부게시판(코트넷)에 올린 “행정부의 부적절한 처분에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는 글에 5명의 법관대표가 동의 입장을 표명했다. 앞서 지난 2월 청와대 게시판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해 석방한 정형식 서울고법 부장판사의 파면을 요구하는 국민 청원이 올라와 23만 명이 서명하자, 같은 달 22일 정혜승 청와대 뉴미디어비서관이 이승련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에게 전화로 판사 파면 청원 내용을 전달해 논란이 인 바 있다.

이 같은 일이 알려지자 법조계에서는 “사법부 독립 침해 소지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으나, 법원 내부에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김 부장판사는 지난 8일 “청와대가 법관 파면 청원을 법원행정처에 통지한 것에 대해 전국법관대표회의가 반대의 의사를 표시하고 재발방지 약속을 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성명서를 채택할 것을 제안한다”는 글을 올리자 일선 법관들 사이에서도 동조 움직임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김 부장판사는 구체적으로 “국회의원의 급여를 최저시급으로 책정해 달라는 청원은 27만 명이나 서명했지만 청와대가 삼권분립을 이유로 국회에 알리지 않았는데, 23만 명이 서명한 판사 파면 청원은 굳이 그 내용을 통지했다”면서 “청와대가 국회와 법원에 대해 이중적인 처신을 하는 이유가 국회에는 정치적 파워가 있고 법원은 정치적 파워와 무관한 조직이라는데 연유한 것이라면 이는 국가시스템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꼬집었다. 또 “외부로부터 사법권 침해가 이루어진다면, 행정부가 될 공산이 크다”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요청하는 내용 등을 담아 성명서를 채택하도록 법관대표회의에서 안건으로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김 부장판사의 글에 법관대표 5명이 동의 입장을 표명하면서, 위 내용은 오는 6월 11일 열리는 법관대표회의 안건으로 상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법관대표회의는 지난달 1차 회의 당시 “발제자인 법관대표 외에 4명의 법관대표가 동의하면, 해당 안건을 회의에 상정한다”는 내용의 규약에 합의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법관대표회의 집행부가 이번 사안을 안건으로 받아들일지 여부에 따라 향후 법관대표회의의 성격이 대법원에 목소리를 내는 주체적인 기구로 작동할지 가늠자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리안 기자 knr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