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聖殿’ 지키는 언어 수도승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에 있는 메리엄웹스터 사전 출판부의 인덱스카드 파일 정리함. 한 사전 편집자가 인덱스를 살펴보고 있다. AP연합뉴스

■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 - 20년째 언어와 연애중 / 코리 스탬퍼 지음, 박다솜 옮김 / 윌북

최초 영어사전 메리엄웹스터社
편집자들 영광·좌절의 기록

전화도 없는 사무실 책상서
하루 8시간씩 단어와 씨름

변화무쌍 초연결사회 진입
단어 추가 속도도 빨라져

디지털시대 辭典의 위기에도
“사전에 따르면” 안 사라질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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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엄웹스터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전 제작사다. 1806년 노아 웹스터가 최초의 영어사전을 만들면서 시작됐으니 이 사전은 역사가 200년을 훌쩍 넘었다. 메리엄 형제가 사전 판권을 구입한 해(1844년)로부터 따져도 174년이 흘렀다. ‘단어, 매일 만들고 있습니다’의 저자인 코리 스탬퍼는 미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탁상용 사전인, 공부 좀 한다는 한국 학생들 책상에도 한때 한 권씩 놓여 있던 이 사전의 편집자로 스무 해 동안 일했다. 이 책은 “언어와 사랑에 빠져” 정확하고 올바른 단어를 찾으려고 분투하는 한 편집자의 영광과 좌절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언어의 세심한 게이트키퍼인 사전 편집자의 비밀스러운 일상으로 안내하는 길잡이이기도 하다.

사전 편집자들은 “언어를 체에 거르고, 분류하고, 기술하고, 알파벳 순서로 배열”한다. “멋없는 사람들”로, “인생의 많은 시간을 사전적 정의를 집필하고 편집하고 부사에 대해 깊이 생각하면서 숙명적으로 눈이 멀고 있는 단어광들”이다. 메리엄웹스터의 경우, 사전 편집자 자격은 공식적으로 두 가지다. 4년제 대학 학위가 있어야 하고, 영어 원어민 화자여야 한다. ‘슈프라흐게퓔(Sprachgefuhl)’, 즉 ‘언어에 대한 감각’이 있는, 사소한 뉘앙스 차이에 아주 극도로 민감한, 저자에 따르면 planting the lettuce(양상추를 심다)와 planting misinformation(틀린 정보를 심다)에서 ‘plant(심다)’의 용법이 다르다는 것을 (아마도 즉시) 알려주는 머릿속 기묘한 윙윙거림이 있는, 기이한 자질이 또 하나 필요하다. 전화도 없는 편집부 사무실의 거의 완벽한 침묵 속에서 하루 여덟 시간씩 혼자 일할 줄 아는 능력. “온종일 혼자 칸막이 사무실에 앉아서 단어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다른 누구와도 대화하고 싶지 않아요. 듣기만 해도 좋네요.” 정말 좋을까, 의심이 불쑥 든다. 사전 편집자는 “기묘한 수도승처럼 속세를 등지고 언어에만 헌신한다.” 천직은 따로 있는 것 아닌가.

또한 일이 좀처럼 바뀌지도 않는다. 사전 편집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기에, 편집자는 자신이 맡은 단어들을 몇 년째 들여다보는 일이 잦다. 정의하고 교열하고 교정하고, 또 교정하고, 사전이 나오자마자, 다음 개정판 작업에 들어간다. 사전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개정이 없는 사전은 시체와 같다. 사전 자체는 세상에 흘러다니는 언어를 붙잡아, 의미를 고정하는 작업이지만, 사전 편집은 언어의 탁류에 몸을 싣고 쉴 새 없이 단어들을 건져 올려 변화를 살피면서 씨름한 끝에 페이지 위에 기록하는 일과 같다.

그러나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언어는 너무나 복잡·무쌍하다. 다음 문장을 보라. “What can they do but try?”(시도는 해봐야지, 어쩌겠는가?) 간단하지만, 여기에 나오는 but은 저자를 좌절시킨다. 품사를 확정하기 너무나 어려운 것이다. 저자는 접속사로 본다. 다음에 they가 생략된. 커피 두 잔을 마시고, 30분 동안 1779쪽짜리 ‘별나고 작은 문법’을 뒤적거린 결과다. 하지만 동료 편집자는 to가 생략된 전치사로 본다.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은 ‘멘붕’에 빠진다. 그리하여 사전 편집자에게 품사(part of speech)는 POS, 즉 똥덩어리(piece of shit)가 된다. 사전 편집자의 작업은 이런 식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그들은 정답이 마련되지 않은 고된 작업을 계속한다. 읽는 이들한테는 배꼽 잡는 읽을거리지만, 당사자한테는 나날이 지옥 같지 않을까.

오늘날 단어는 너무나 빨리 변동한다. 초연결 사회가 되면서 한 단어가 모두의 단어가 되는 데 며칠이면 충분한 경우도 생긴다. 1950년대에는 20년 정도 걸렸다. 이는 사전 편집자를 괴롭힌다. 확장되거나 변형된 용례들을 꾸준히 추가하고 덜어내는 작업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때로는 단어의 정의를 살짝 바꾸는 것만으로 거대한 사회적 충격을 불러오기도 한다. ‘marriage’(결혼)라는 단어에 ‘동성인 사람과 맺어진 상태’라는 정의를 추가한 결과, 재판에 인용되면서 동성 결혼의 합법성을 보장하기도 한다. 사전에 등재됐다는 것은 사람들이 이미 이런 뜻으로 널리 쓴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물론 수천 통의 항의 편지도 편집부에 함께 배달됐다.

디지털 세상은, 사전 사업의 위기를 불러왔다. 검색을 통해 사전을 무료로 이용하게 되면서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단어를 찾아보는 경우는 잦아졌지만, 사전 자체를 구매하는 경우는 줄어들고 있다. 메리엄웹스터도 예외는 아니어서, 열정이 넘치는 사전 편집자인 동시에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그녀 역시 정리 해고를 염려하기도 한다. 안타까운 기분이 든다. 하지만 “사전에 따르면”이라는 말이 사라질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다. 앞으로도 사전은 한 단어의 평등하고 민주적이고 정확한 사용 방법을 알려줌으로써 토론의 결론을 이끌어 내는 명징한 수단 중 하나일 것이다. 사전이 있는 한, 사전 편집자의 일도 계속될 것이다. 388쪽, 1만65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 순천향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