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민연금을 정부의 ‘企業 손보기’ 수단 삼아선 안 된다

문재인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한 개별 기업(企業) 경영 개입을 가시화하고 있다. 국민연금 최고 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는, 위원장인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30일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밀수, 관세 포탈, 재산 국외 도피 등에 대한 보도로 국민의 우려가 가라앉지 않고 있다”며 제안한 대로, 한진그룹의 대한항공 주식 12.45%를 보유한 2대 주주로서의 주주권 행사를 결정했다. 의결권 찬반 표시, 배당 확대 요구 등 제한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해온 국민연금이 기업의 일탈 행위에 대한 공개적 우려 표명, 공개서한 발송, 경영진 면담 등에까지 나선 것은 처음이다.

물론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갑질’과 위법, 불공정 행위 등은 혐의가 사실로 확인되면 처벌·시정돼야 한다. 하지만 여론 비판을 이유로 정부가 국민연금을 해당 기업의 ‘손보기’ 수단으로 삼아선 안 된다. 복지부는 “경영 참여는 아니다”라고 주장하지만, 수사기관이나 공정거래위원회가 할 일에 국민연금을 동원한 것부터 정상(正常)일 수 없다. 더욱이 국민연금에서도 통상적으로 의결권전문위원회나 투자위원회에서 다룰 수 있는 사안에 대해, 거시적 관점에서 연금 운영 방향 등을 결정하는 기금운용위원회에서 기업을 윽박지르는 식의 결정을 한 배경도 달리 있기 어렵다.

이번 결정은 문 대통령의 공약 ‘스튜어드십 코드’ 7월 도입에 앞선 시범 시행으로도 보여, 더 심각하다. 주주권 행사 범위가 아직 확정되진 않았으나, 현재 5% 이상 지분의 기업만 276개인 국민연금이 개별 기업 의사결정에 시시콜콜 개입하겠다는 신호로 비치고, ‘연금 사회주의’ 우려까지 나온다. 민간 기업은 기관투자가가 간섭할수록 경영 자율성이 더 침해돼 경쟁력의 기반이 무너지게 마련이다. 기업 이익 증대는커녕 생존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다. 국민연금 등의 주주권을 앞세워 기업을 길들이겠다는 발상부터 접어야 한다. 그러지 않아도 문 정부의 기업 옥죄기는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