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병근 다남전기㈜대표가 지난 8일 제주 블랙스톤 골프클럽에서 클럽챔피언 전 첫날 경기를 마친 뒤 연습그린 주변에서 어프로치 샷 연습을 하고 있다.
이병근 다남전기㈜ 대표
2006년 20여시간 이식수술 후
“남은 인생 배려하며 살자” 다짐
환우들에게 자신감 불어넣으려
‘이식인올림픽’ 출전 2언더 1위
몇해 전 ‘강직성 척추염’ 발견
척추 마비에 몸 굳어지는 병
몸 풀어줘야해 골프에 더 집중
이젠 클럽챔피언 오르는 게 꿈
이병근(58) 다남전기㈜ 대표는 언더파를 유지하며 클럽챔피언에 도전할 정도로 기량이 출중하다. 이런 이 대표가 10년 전 간 이식 수술을 받았고, 지금도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희소 질환을 앓고 있다는 얘길 듣고 놀랐다.
지난 8일 제주 블랙스톤 골프클럽에서 클럽챔피언전에 출전한 이 대표를 만났다. 이 대표는 건강 악화로 2006년 서울 아산병원에서 20시간에 걸친 간 이식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세상이 새롭게 보였다는 이 대표는 이 병원 5000여 간 이식 환자들의 모임인 ‘새생명회’에 가입해 현재 회장직을 맡아 간 이식인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봉사하고 있다. 이 대표는 간 수치상으로 완쾌 판정을 받았지만, 재발을 막기 위해 항상 면역억제제를 복용하며 몸 관리를 하고 있다.
이 대표는 몇 해 전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희소 질환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했다. 스스로 세포를 공격해 척추를 마비시키는 무서운 병으로 유연성을 떨어트린다. 예전엔 치료제조차 없었다. 몸이 굳어지는 것을 막는 방법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뿐. 이 대표가 골프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이 대표는 건설회사에 근무하던 1993년 골프와 인연을 맺었다. 우연히 먼저 골프를 시작한 친구들과 골프장 구경을 나갔다가 그 자리에서 한번 쳐 본 게 계기가 됐다. 사업하던 친구가 치던 골프채로 배웠다. ‘머리얹던 날’ 1년 먼저 배운 친구에게 14점의 핸디를 받았지만 106타를 쳐 107타인 친구보다 좋은 스코어를 남겼다. 이 대표는 2001년 지금의 회사를 창업했고 지하철, 터널, 아파트 단지는 물론 블랙스톤 제주 골프장 건설 공사에도 참여했다. 이 대표는 창업 후 불과 5년도 안 돼 건강에 적신호가 왔지만, 가족 같은 직원 덕분에 내실을 잘 다져 연 100억 원대 매출을 유지하고 있다.
이 대표는 2011년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열린 세계이식인 체육대회(World Transplant Game)에 출전해 골프 개인전 금메달을 획득했다. 격년제로 열리는 이 대회는 ‘세계이식인 올림픽’으로 불리며 56개국 1500명이 참가했다. 이 대표는 첫날 개인전 18홀 경기에서 2언더파 70타로 우승했다. 자신처럼 어려움을 겪은 환우들이 정상인과 같은 삶을 살도록 하는 데 보탬이 되고 싶어 출전했던 것. 이 대표는 “수술대에 눕지 않았더라면 하지 않았을 일들”이라며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난 뒤 남은 인생을 배려하며 살자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지난해 경기 포천의 베어크리크골프장에서 열린 서울 동대문구청장배 생활체육인 골프 대회에서 3언더파 69타로 우승했다. 이 대표의 베스트 스코어는 강원 원주의 센추리21 골프장에서 4년 전 기록했던 4언더파 68타.
이 대표의 평균 드라이버 비거리는 200m 정도에 불과하다. 이 대표는 공식 대회에서 대개 두 번째 샷을 우드로 공략하지만, 정확도가 높다. 설사 그린을 놓쳐도 탁월한 쇼트 게임으로 파 세이브가 많다. 스코어를 지켜온 비결. 이 대표의 비거리를 보고 덤볐다가 혼쭐난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고. 장타를 날리던 한 지인은 그에게 10번을 도전했으나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250m 비거리를 자랑하던 친구는 번번이 지자 자존심이 상했던지 1년 동안 몰래 칼을 갈고 나타났지만, 또다시 패해 항복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신체 특성상 근력이 부족하다 보니 후반이면 체력에 한계를 느낄 때가 많다. 충남 당진이 고향인 이 대표는 학창 시절 육상 필드 종목 선수로 활약했지만, 병든 몸으로는 몇 곱절 노력해야만 했다. 블랙스톤 챔피언에는 이번이 세 번째 도전이었다. 첫 번째 출전은 수술 후 회복이 제대로 안 됐을 때였고, 두 번째 출전에서는 둘째 날 챔피언조까지 올랐지만 코스가 길고 체력이 달려 평소보다 성적이 떨어졌다. 특히 이번 도전에서는 첫날 동반자에게 비거리가 50m나 모자랐다. 이 대표는 “고통스러운 나날을 겪었더니 예전처럼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면 못할 게 없다는 생각에서 계속 도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지금도 척추관이 몸에 붙어 있기에 유연성이 떨어진다. 스윙을 크게 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다. 이 대표는 “몸이 경직되는 것을 막아주는 효과가 있어 골프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지금껏 돈 주며 레슨을 받아본 적이 없다. 하지만 효율적인 연습을 통해 기량을 끌어올렸다. 연습할 땐 치는 공의 개수보다 스윙 자체에 집중하면서 원하는 샷을 만드는 데 치중했고, 특히 세계적인 교습가 리드베터의 레슨서를 탐독했다. 그리고 샷 후에는 늘 전 홀을 ‘복기(復棋)’하고 미스 샷의 원인을 분석했다.
아직 홀인원은 없지만 ‘사이클 버디’는 10차례 넘게 작성했다. 가장 최근은 지난해 경기 용인의 태광골프장 서코스 1번(파4)-2번(파5)-3번 홀(파3)에서 작성했다. 몇 해 전 경기 여주의 신라골프장에서 친구인 배구 선수 출신 장윤창 경기대 교수와의 라운드에서도 사이클 버디를 잡아내기도 했다.
이 대표는 “골프를 마칠 때면 늘 아쉬움이 남는다”면서 “‘오늘 안 돼도 내일은 될 것’이라는 마음가짐이 골프를 계속 하게 만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같은 코스에서 버디나 이글, 그리고 보기와 더블보기가 나오는 등 변화무쌍한 일이 많은 게 골프의 묘미”라면서 “이런 변화가 없으면 골프는 재미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편을 잡았던 아내가 얼마 전 퇴직해 이젠 ‘필드의 동반자’가 됐다. 이 대표는 “지금처럼 계속 도전할 수 있는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게 우선”이며 “앞으로 유연성을 더 키워 비거리를 20m 정도 늘리겠다고 아내와 약속했다”고 전했다.
제주 = 글·사진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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