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정세따라 ‘교과서 손질’… 불필요한 논쟁만 반복”

“공감대위한 공론화 안하고
의견 엇갈리는데도 강행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 삭제
北도‘합법정부’해석될 소지

2020학년부터 중·고교 적용

교육부가 22일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바꾸고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표현이 빠진 중·고교 역사교과서 교육과정 개정안을 행정예고하자 학계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불필요한 논쟁이 반복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특히 “미래 세대에 잘못된 역사관을 심어줘 세뇌하려는 의도 아니겠는가”라는 의구심마저 나오고 있다. 이번 행정예고는 지난 5월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시안을 큰 틀에서 유지했다. 당장 내년부터는 초등학교 5·6학년 학생 대상 ‘사회과’에도 “역사과 교육과정의 일관성 및 연계성 유지”를 위해 통일된 용어 사용이 적용된다.

상당수 헌법학자는 현 정부 기조와 국제 정세 변화에 따라 국내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역사교육 용어들을 바꿔가며 불필요한 논란을 일으킨다고 비판했다. 홍완식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남북 정상회담 등의 기류가 반영된 것으로 보이나 국민 간에도 서로 의견이 갈려 많은 논란을 받았던 만큼 행정예고로 끝내기보다 국민 간에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공론화위원회 등을 만들었어야 했다”며 “아이들에게 가르칠 내용을 정권, 시대적 상황에 따라 용어를 바꿔 불필요한 논쟁을 반복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국제법상으로는 북한이 국가로 인정받지만, 우리가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표현을 포기한다면 북한을 인정하는 꼴인데 만약 남북 상황이 나빠지면 그때 다시 뭐라고 할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시기적으로 남북 정상회담, 판문점회담 등 남북 교류협력을 확대하는 추세에서 마치 ‘북한식 인민민주주의’를 수용 가능한 것처럼 해석되는 상황이 매우 우려스럽다”며 “헌법 제4조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이라는 표현이 있기 때문에 북한과의 관계에서도 자유민주주의 포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라는 표현이 빠진 점에 대해서는 “북한은 통일을 위한 동반자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6·25전쟁, 천안함 사건 등에서 알 수 있듯 남침 위협을 간과할 수 없는 이중적 관계”라며 “이 때문에 헌법 제3조 영토조항에 북한의 불법적인 침략에 관해 규정했는데, 이를 무시하고 북한도 ‘합법정부’인 것처럼 해석하는 것은 헌법과 정면으로 충돌한다”고 말했다.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시안으로 논란이 있었는데 행정예고로 굳이 강행하며 ‘자유’라는 단어를 빼려는 의도를 이해하기 힘들다”며 “대한민국이 자유시장경제를 토대로 세워졌고 ‘자유’라는 단어 자체도 긍정적 뜻이 있는데, 굳이 단어를 빼 불필요한 논쟁을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영훈 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개인의 자유가 곧 역사를 진보로 이끄는 근본적 동력이고 대한민국이 자유인의 국제연합에 동참하고 지원을 받아 세워진 나라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며 “자칫 공산주의만 아니면 좋다는 식으로 달콤하게 해석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기윤·이해완·정진영 기자 cesc30@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