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이성자 화백 탄생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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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논설위원

‘이것은 동양에만 있는 다리다／ 이것은 동양에만 있는 눈물이다／ 이것은 동양에만 있는 그리움／ 아롱진 사랑이다／ 동양의 지혜로 가로놓인／ 은하수／ 먼 별들의 다리／ 일 년에 한 번／ 만났다 헤어지는 사랑을 위한／ 하늘의 다리／ 이것은 사랑하는 마음 사이에만 놓이는／ 동양의 다리다／ 그리움이여／ 너와 나의 다리여’. 조병화 시인이 일무(一無) 이성자 화백(1918∼2009)의 추상 유화(油畵) ‘오작교’에 대해 읊은 동명의 헌시(獻詩)다. 시의 대상인 그림은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며 ‘여자 피카소’로 일컬어지던 이 화백이 1965년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첫 국내 개인전 때 선보였다. 그 전시회를 계기로, 헤어졌던 세 아들과 어머니와 고국을 15년 만에 만날 날을 기다리는 마음이 담겼다.

그림 그리는 일과 거리가 멀던 그는 결혼 12년 만인 1951년 이혼 후 혼자 파리로 간 뒤에 생계를 위해 옷 만들기를 배우다가 남다른 스케치 솜씨가 선생의 눈에 띄어 1953년부터 그림을 시작했고, 사무치는 그리움을 화폭에 나타냈다. 2008년 어느 인터뷰에서 그는 당시를 돌아보며 “붓질 한 번이 아이들 밥 한술 떠먹이는 것이고, 또 한 번이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이라고 여기며 그렸다”고 밝힌 적도 있다. 그 뒤로 평생 그는 은하수를 사이에 둔 거문고자리 α별 ‘직녀’와 염소자리 β별 ‘견우’에 비유할 만한, 서로 떨어져 있지만 만나야 할 대상을 시각 언어로 추상화해온 셈이다. 표현 영역을 인간과 도시·극지(極地)·하늘·우주 등으로 확장해가며, 프랑스 남쪽 지역인 투레트의 지중해가 멀리 보이는 언덕에 1992년 완공한 아틀리에 이름도 ‘은하수’로 삼았다. “나는 여자이고, 여자는 어머니이고, 어머니는 대지(大地)다”라는 말도 남긴 그의 작품은 음양, 동서양, 남녀 등을 상징하는 반원(半圓)을 비롯해, 점·삼각형·상형문자 등이 몽환적으로 춤추는 듯한 모습이 두드러지기도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지난 3월 22일 시작된 그의 탄생 100주년 기념전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이 오는 29일 끝난다. 프랑스에서 한국을 오가며 창작한 작품들을 두고 “동·서의 극을 오가는 내 생활의 그림일기”라고 말했던 그의 시기별 걸작 123점과 아카이브 70여 점을 통해, 화려한 색채 추상의 ‘이성자 예술혼’과 대면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