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해적 오말리·印 권투선수 콤… 세상에 맞선 100명의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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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나이트 스토리즈 포 레벨 걸스 / 엘레나 파빌리, 프란체스카 카발로 지음, 전지숙 옮김 / 주니어김영사

‘세상에 맞서는 100명의 여자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굿 나이트 스토리즈 포 레벨 걸스’(Good Night Stories for Rebel Girls). 100명의 여성이 등장하는, 등장인물이 오직 여성인 어린이를 위한 인물이야기는 그동안 없었다. 과거의 위인전집을 떠올려보면 100명이 아니라 몇 명의 여성도 열심히 찾아야 눈에 띄었다. 그런데 이 책은 완벽하게 달랐다. 책은 출간 과정부터 화제였고 국내 번역을 기다린 독자들이 적지 않다.

책을 기획한 것은 어린이 미디어 혁신연구소인 ‘팀북투 랩스’로 저자 엘레나 파빌리와 프란체스카 카발로가 설립자다. 팀북투 랩스는 스타트업 방식으로 창업해 현재 70개국에 200만 사용자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이 책도 크라우드 펀딩으로 자금을 모아 60개국 2만25명의 후원자와 공동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이 세계의 절반이 여성이지만 세계를 이끌어온 절반의 모습은 ‘자애로운 어머니’ ‘귀여운 딸’ ‘예쁜 공주’ ‘어리숙한 아줌마’ ‘못된 마녀’ 등 몇몇 편견에 가득한 이미지로만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가운데 이 책은 해적 그레이스 오말리의 이야기로 첫 장을 연다. 한글판은 가나다순으로 인물을 배열했기 때문에 원저작물과 다른 변화가 있는데 그 점이 오히려 책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1500년대에 실존했던 인물 그레이스 오말리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와 우정을 나누기도 했던, 싸움 실력이 탁월한 해적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여성인물들의 이야기는 인도의 권투 선수 마리 콤, 칠레의 작가 이사벨 아옌데, 중국의 천문학자 왕전이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국적, 직업을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등장한다. 선덕여왕도 등장해서 우리 독자를 반긴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떠올리던 세계가 얼마나 편향된 사람의 얼굴들로 채워져 있었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동안 몰랐고, 눈감았던 여성들의 분투를 지금 비로소 확인하는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생긴다. 이 작업에는 수십 명의 여성 작가가 동참해서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인물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에 따라 이미지의 느낌도 다양하다. 선덕여왕을 그린 키키 륭은 하이네켄 맥주 포스터 등을 작업했던 젊은 일러스트레이터다. 그의 눈에 비친 낯선 신라의 여왕은 우리가 느끼기에는 조금 온건하게 그려져 있다. 232쪽, 2만2000원.

김지은 어린이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