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ifty+ >50代 고졸서 60代 박사로… 전국 돌며 ‘뇌 활용법’ 강연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일식 ‘뇌활용 120세 연구소’ 소장이 충남 천안시 국학원에서 최근 펴낸 저서 ‘뇌의 혁명’을 들고 잠시 사색에 빠져 있다. 김 소장은 은퇴 후 석·박사 학위를 따 지금은 ‘뇌 박사’로 불리며 힘찬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

공부에 미친 ‘인생 2막’ 김일식 씨

가난 딛고 高卒로 대기업 입사
능력 인정받아 승승장구했지만
잦은 술에 몸 상하고 이혼 아픔

50代 후반에 사이버대학 진학
7년 주경야독 끝 ‘박사모’까지
뇌 관련 논문 9편 쓰고 ‘새 삶’

“환경 탓 않고 끈기 있게 도전
결심했으면 100일은 해봐야
모든 건 의지에 달려 있을 뿐”

‘불광불급(不狂不及)’.

이보다 그를 더 잘 표현한 말이 있을까. ‘어떤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미치광이처럼 그 일에 미쳐야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말 그대로 그는 공부에 미쳤다. 인생 2막에 와서 모든 걸 걸었고 마침내 꿈을 이뤘다. 고등학교 졸업 학력으로 33년간 대기업(동아건설 전기기술자)에 근무하며 부장까지 지낸 김일식(64) ‘뇌활용 120세 연구소’ 소장의 얘기다.

그는 50대 후반에 충남 천안시 글로벌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해 3년 조기졸업과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곧바로 대학원에 진학해 총 7년간 주경야독 끝에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에서 노인 우울 프로그램 개발연구로 박사 학위를 손에 넣었다. 이 논문으로 한국 노년학회로부터 우수논문상을 받았다. 지금은 전국을 돌며 ‘뇌 활용법’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김 씨는 국가공인 ‘브레인 트레이너’라는 자부심을 안고 오늘도 인생 후반전을 활기차게 살고 있다.

# 인생 전반전 : 고졸 출신 대기업 부장

부산 출신인 김 소장은 8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사업실패와 조현병을 앓던 어머니 밑에서 가난과 따가운 시선을 극복하며 어린 삶을 보냈다. 어머니가 지나가는 사람의 머리를 붙잡고 시비를 거는 날이면 어린 소년은 싸움을 말리고 대신 사과해야 했다. 어린 소년은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타인의 따가운 눈총을 피하고자 낮에는 집에 있고 주로 밤에 활동했다.

“어린 시절 가정 형편이 너무 어려워 하루 세끼 해결하는 날이 거의 없었어요. 아마 이때부터 열등감이 컸고 자신감을 잃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죽으라는 법이 없는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저한테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죠.”

동생들 학비 마련을 위해 무작정 상경한 김 소장은 어느 날 경쟁률 100대 1이 넘는 대기업 시험에 응시해 당당히 합격했다. 당시 고졸이 대졸 경쟁자들을 누르고 입사하는 일은 흔치 않았다. 김 소장은 전기기술자로서 사내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근무 기간 절반을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외화벌이하며 회사 발전의 공로를 인정받아 간부급인 부장이 됐다. 한마디로 고졸 신화였다.

그러나 승승장구한 그의 회사생활 이면에는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어려서 생긴 열등감이 트라우마가 됐고, 이를 이겨내고자 하루가 멀다고 술과 담배로 자신을 혹사했다.

“제가 술·담배에 쓴 돈을 계산해봤더니 3억4000만 원 정도 되더라고요. 담배는 하루 두 갑, 술은 1주일에 2번 이상 마시고 필름이 끊겼으니까요. 술과 담배를 얼마나 했으면 회사생활 하면서 중환자실 신세를 진 적도 있었죠. 더 큰 문제는 제 가정이었어요.”

설상가상 회사생활을 하면서 아내와 이혼을 했다. 오랜 외국생활과 계속된 술자리가 부부 사이를 멀어지게 했다. 지금도 김 소장은 그때 딸(1977년생)과 아들(1979년생)의 손을 잡고 야구장 한 번 가보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 인생 후반전 : 초고속 박사 학위

김 소장은 우연한 기회에 명상과 호흡법을 배우면서 새 삶을 살게 됐다.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배웠다. 자연스럽게 술과 담배도 끊을 수 있었다. 이후 충남 천안시 국학원에서 단군의 홍익인간(弘益人間) 정신을 배우며 널리 인간세계를 이롭게 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김 소장의 좌우명은 ‘선택하면 이뤄진다’이다. 그는 글로벌사이버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해 과대표와 부대표를 맡았고, 대학 설립 이후 처음으로 3년 만에 조기 졸업하는 기염을 토했다. 교내에서 그를 모르면 간첩으로 통할 정도로 유명 인사가 됐다.

그는 대학 졸업에 만족하지 않았다. 7개월간 공부해 국가고시인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에 도전했고 단번에 합격했다. 상대적으로 쉬운 2급 자격증 대신 가장 어려운 길을 선택했다.

“대기업 입사 때도 그랬고 저는 시험 운이 좋은 거 같아요. 세 문제 차이로 겨우 붙었거든요.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곧바로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거기서 뇌를 공부하기 시작했죠. 내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두가 가진 진정한 보물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진정한 사회복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우리 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우리 삶이 달라질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긴 거죠.”

7년간 코피 흘리며 학업에 매진한 끝에 꿈에 그리던 박사모를 썼다. 졸업식 때는 대표로 강단에 올라 연설도 했다. 한때 자신을 원망했던 그의 딸과 아들은 끝까지 도전해 새 삶을 사는 아버지의 든든한 응원군이 됐다. 특히 딸이 “아버지가 자랑스럽다”고 얘기한 순간에는 그간 힘겨웠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모든 고통의 순간을 보상받는 느낌이었다고 회상했다.

“열등감에 남 앞에 나서지 못했던 제가 많은 사람 앞에 설 수 있었던 것은 도전을 통해 성과를 이루고, 그 성과가 남들에게 빛이 되는 순간을 보면서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에요. 결국, 자신감은 ‘나를 믿는 마음’인데 나와 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 자신감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 소장은 자신의 연구에 깊이를 더하기 위해 관련 논문만 9편을 썼다. 10편째는 현재 심사가 진행 중이다.

# 인생 후배들에게 주는 ‘3가지 조언’

학업 부담을 이기지 못해 삶을 포기하는 청년이 속출하는 요즘, 배우고 익히며 즐거움을 찾은 ‘만학도’ 김 소장의 삶에서 우리 청년들을 위한 한마디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물었다. ‘인생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느냐’고. 마침 그는 얼마 전 대학생을 상대로 ‘삶의 3가지 원리’를 강조하는 강의를 마치고 온 터였다.

“저는 인생 후배들에게 첫째, ‘환경 탓하지 말자’, 둘째, ‘진정으로 선택하자’, 셋째, ‘100일간은 해보자’를 추천해주고 싶어요. 이 세 가지만 실천해도 저처럼 위기를 기회로 삼고, 꿈을 이루는 청년이 더 많아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렇게 나이 먹은 저도 하는데, 우리 청년들이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김 소장은 자신을 ‘흙수저 중 흙수저’라고 했다. 그래서 한때 시련만 준 세상을 원망하고 가정 탓, 나라 탓만 했다. 자신의 책임은 없고, 모든 것이 남의 탓이었다. 핑계를 대며 스스로 자신의 상황을 정당화했다.

“남 탓하면 결국 남이 나를 조종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더라고요. 남이 주인이고 정작 제가 머슴이 되는 거죠. 남 탓하지 말고 내 삶의 주인은 바로 나라는 생각을 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만약 건강해지고 싶다면 목표를 정해 실제로 운동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남만 부러워하고, 내가 뭐가 됐으면 좋겠네! 생각만 하면 자신에게 지는 것이죠. 환경 탓은 될수록 안 하는 게 상책입니다. 진정으로 무언가를 선택해 실천하는 것이 정도(正道)입니다.”

‘100일간은 해보자’라는 김 소장의 캐치프레이즈는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내용이다. 김 소장에 따르면, 외국에서 진행한 연구 결과 인간의 습관을 바꾸기 위해선 일정한 시간을 할애해 꾸준히 해야 한다. 김 소장은 “제 경험상 100일 이상은 꾸준히 해야 습관이 됐다”며 “요즘 청년들이 끈기 없이 쉽게 포기하는데, 일단 100일은 버틴다는 생각으로 무언가에 도전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건강하고 행복한 ‘120세 시대’ 위해

김 소장은 대한국학기공협회 책임연구원이라고 적힌 또 하나의 명함을 건넸다. 국학 기공은 우리 민족 고유의 심신단련법이다. 2016년 대한체육회 정식 대회종목으로도 채택됐다. 김 소장은 국학 기공과 자신의 전공분야인 뇌 활용법을 접목해 노년층에게 새 삶을 살아가는 방법과 기법을 전수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유례가 없는 급속한 고령화로 노인 인구가 급증하면서 다양한 문제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3명 중 1명이 우울증으로 분류될 정도로 많은 분이 삶의 행복을 빼앗기고 있는 데 이런 노인들에게 뇌 활용법을 전파해 모두가 꿈과 희망을 품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 살 수 있는 장생 체질이 되도록 돕고 싶습니다.”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능숙하게 다루는 그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서도 뇌 활용법을 공유해 더 많은 사람이 혜택을 볼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발표 자료를 컴퓨터로 보여주는 파워포인트(PPT)도 능숙하게 다루는 김 소장은 “30년간 전기기술자로 살아 남들보다는 잘 다루는 측면이 있지만, 결국 모든 건 나이가 문제가 아니고 의지의 문제”라며 미소를 지었다.

천안 = 이해완 기자 paras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