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진화와 AI 혁명>AI 곧 ‘인간 지능’ 능가… 어떻게 쓸지는 ‘인간’에 달렸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그래픽 = 송재우 기자 jaewoo@

(上) AI를 보는 다양한 관점

“자유롭게 둔다면 결과 좋을것”
커즈와일 등 이상주의자 주장

‘AGI개발은 차원이 다른 문제’
회의론자들“실현 가능성 낮다”

“적절한 규제로 위험성 제거땐
인류에 긍정적 협업 대상될것”
‘이로운 AI운동’연구자들 많아

“인공지능(AI)의 미래를 두고 나눈 대화가 계속될 필요가 있다고 강하게 확신하게 됐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대화이기 때문이다.”맥스 테그마크 미국 MIT 물리학과 교수의 말이다.

현재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의 초입에 서 있다. 하지만 18세기 유럽에서 발생한 산업혁명 당시 자신이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처럼 4차 산업혁명의 한복판에 있는지 후일에야 비로소 확인할 수도 있다.

거대한 인류 문명 전환의 흐름에서 한국이 주역이 될 수 있느냐는 우리의 미래가 아닌 ‘오늘’이 결정하고, 그 관건은 AI 역량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화일보가 처음으로 오는 9월 5일 개최하는 국제포럼 ‘문화미래리포트(Munhwa Future Report) 2018’의 주제를 ‘인간 진화와 AI 혁명’으로 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포럼은 테그마크 교수를 비롯해 스튜어트 러셀 UC버클리 교수, 제리 캐플런 스탠퍼드대 교수 등 세계적인 AI 분야 석학들을 초청해 한국 사회에 ‘가장 중요한 대화의 성찬’을 제공한다.

포럼에서 토론될 3가지 소주제인 ‘AI와 인류’ ‘AI와 산업’‘AI와 한국사회’를 놓고 세계적 논의의 맥락을 초청 강연자와 토론자의 주장을 중심으로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체스는 6세기쯤 굽타왕조 시대 인도에서 시작됐다. 체스 게임의 창안자는 황제가 머무는 수도 파탈리푸트라에 직접 찾아와 체스를 선물했다. 황제는 포상하려 했으나 발명가는 황송해하며 “그저 약간의 쌀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체스판 첫 칸부터 한 알, 두 알, 네 알 하는 식으로 예순네 번째 칸까지 두 배씩 쌀을 늘려 달라고 했다. 체스판은 총 64칸으로 이뤄진 정사각형 모양이다. 서른세 번째 칸까지 황제가 준 쌀은 40억 알가량으로, 넓은 논 하나에서 나올 수 있는 양이었다. 파산 직전에야 발명가의 계략을 눈치챈 황제는 발명가의 목을 베어버렸다고 한다.

정보 경제학자 에릭 브리뇰프슨과 앤드루 맥아피는 공저한 책 ‘제2의 기계 시대’에서 기술 발전 관점에서 우리는 지금 체스판 후반부에 접어들었다고 주장한다. 디지털 기술은 체스판 쌀알처럼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초반에는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 폭발적으로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세돌 9단과 세기적인 바둑 대결을 펼친 알파고의 버전 업 과정은 이를 충분히 보여주고도 남는다. 구글에선 이세돌 9단과 대국했던 바둑 프로그램 버전을 ‘알파고 리(AlphaGo Lee)’, 이후 중국의 커제(柯潔) 9단과 싸웠던 버전을 ‘알파고 마스터(AlphaGo Master)’라고 부른다. 알파고 리와 알파고 마스터는 기보를 넣어주면 이를 보면서 학습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같이 인간이 기존에 축적해 놓은 데이터를 통해 인공지능(AI)을 학습시키는 것을 ‘지도학습’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구글 딥마인드 연구진은 지난해 12월 알파고의 최신 버전인 ‘알파고 제로(AlphaGo Zero)’가 독학으로 몇 시간 만에 장기, 체스, 바둑 모두에서 경쟁 소프트웨어를 능가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하위 버전의 알파고와는 달리 알파고 제로에는 기보를 주는 대신 바둑의 규칙만을 알려줬다. 알파고 제로는 그 규칙에 따라 스스로 바둑을 둬보면서 어떻게 해야 승리하는지 깨달아갔다. 이처럼 스스로 실행하면서 배우는 학습 방식을 강화학습이라 부른다.

강화학습의 효과는 놀라웠다. 불과 36시간 만에 이세돌 9단을 이긴 알파고 리를 이기기 시작하더니 72시간에 도달하자 알파고 리를 100대 0으로 완벽히 이겼다. 40일 뒤에는 알파고 마스터와의 대국에서도 승리했다고 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알고리즘의 발달도 있지만, 컴퓨터 능력의 향상이 가장 큰 요인이다. 인간의 뇌는 한정돼 있으나 컴퓨터 사고 작용 공간은 거의 무한대이기 때문이다. 여러 컴퓨터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병렬처리와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 덕분이다.

컴퓨터가 인간 지능을 능가하는, 이른바 ‘기술적 특이점’이 이른 시일 안에 도래할 수 있다는 주장은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기하급수적인 기술 발전에 힘입어 2045년쯤에는 일반 인공지능(AGI)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는 특이점이 올 것이라고 콕 집어 주장하고 있다. AGI란 인간이 할 수 있는 어떠한 지적인 업무도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는 기계 지능을 말한다. 커즈와일은 맥스 테그마크 미국 MIT 교수가 분류한 디지털 이상주의자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다. 디지털 이상주의자들은 디지털 생활은 우주 진화에서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다음 단계이고, 우리가 디지털 마인드를 멈춰 세우거나 노예로 만들려고 하지 않고 자유롭게 풀어놓는다면 그 결과가 좋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주장한다.

다른 편에는 상당수의 기술 회의론자가 있다. AGI를 만드는 것이 너무 어려워 앞으로 수백 년이 지나도 이뤄지지 않는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알파고와 같은 특정 분야에서 특정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AI, 즉 ‘약(弱 ) AI’는 상대적으로 쉽게 개발할 수도 있으나, ‘강(强) AI’ 개발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주장한다. 중국 바이두의 수석 과학자인 앤드루 응은 “킬러 로봇을 두려워하는 것은 화성의 인구 과잉을 걱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라고 말한다. 그 정도로 기술 발전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디지털 이상주의자와는 달리, AI의 기하급수적 진화 가능성에 회의적인 연구자들이다.

이들과 달리 AI 기술의 급격한 발전 가능성은 인정하면서도 적절한 규제를 통해 AI의 위험성을 제거함으로써 인간과 기계의 공존과 이를 통한 인류의 진화를 도모하고자 하는 연구자들이 있다. 이른바 ‘이로운 AI 운동’을 벌이는 테그마크 교수, 스튜어트 러셀 UC버클리 교수 등이 여기에 속한다. 시시때때로 AI 경계론을 펼쳐왔던 물리학자 고(故) 스티븐 호킹, 기업가 일론 머스크 등도 이 범주에 포함할 수 있다. 작가 닐 포스트먼은 과거의 기술적 변화의 교훈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기술 변화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기술 변화로 피해를 보는 사람도 있다 △기술 발전은 사람의 생각을 획기적으로 바꿔 놓는다 △변화는 점진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신(新)기술에 대한 경계심을 허물면 안 된다 △얼마나 놀라운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이들은 새로운 기술이란 자연계 질서의 일부가 아니라 인간이 만든 생산품이며, 신기술을 선하게 쓸지 악하게 쓸지는 전적으로 인간의 선택에 달렸다고 주장한다. 토비 월시 뉴사우스웨일스대 교수는 “기술은 인간의 종이 돼야 하지, 그 반대가 돼선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인간이 어떤 신기술을 활용할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 반드시 그 기술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며, 마찬가지로 새롭게 개발된 기술을 어떤 용도로 이용할 수 있다고 해서 반드시 그 용도로 이용하라는 의미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유회경 기자 yoolo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