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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박민 부국장 겸 정치부장 게재 일자 : 2018년 08월 08일(水)
‘脫국가주의’ 어젠다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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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 부국장 겸 정치부장

성장과 반공의 프레임 속에서
보수는 국가주의로 권력 향유
진보는 사적인 영역까지 통제

보수·한국당 재건 구호를 넘어
우리 사회 자유와 통합을 위한
건강한 담론으로 승화시켜야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의 ‘탈(脫)국가주의’는 영악한 선택이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의 저자 조지 레이코프는 정치에서 프레임은 승패의 관건이라고 주장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고 말하는 순간 코끼리를 떠올리게 되는 것처럼 상대의 프레임에 갇히는 순간 상대의 가치와 논리를 따르게 돼 결코 상대를 넘어설 수 없다. 문재인 정부의 프레임은 적폐 청산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다. 이 프레임은 보수의 핵심 이념과 가치인 성장우선주의와 반공·반북을 정조준한다. 이 프레임 안에서는 한국당이 아무리 기발한 역공의 포인트와 논리를 개발해도 궤변과 해명 수준을 넘어설 수 없다. 더구나 성장우선주의는 이미 발전전략으로서 한계를 드러냈고, 반공·반북 역시 미·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본격화된 한반도 데탕트 무드로 인해 ‘평화공존’으로의 전환을 요구받고 있다. 대안은 자신의 프레임을 설정하는 것이다. 스스로 진보적 비당파 연구기관을 설립하기도 했던 레이코프는 ‘이기는 프레임’이란 저서를 통해 진보주의가 이기기 위해서는 보수의 틀에 갇히지 않으면서 진보주의의 가치가 담긴 언어로 과학적인 담론을 펼쳐야 한다고 설파했다.

김 위원장의 ‘탈국가주의’는 용의주도한 어젠다 제시다. 탈국가주의는 한국당의 자기반성인 동시에 진보 진영을 겨냥한 칼이다. 박근혜 정부는, 더불어민주당의 반박처럼 국가주의에 권위주의가 더해진 국정 운영으로 탄핵을 자초했다. 한국당에 앞선 보수세력들은, 분단 공간의 국가 건설과 권위주의 정부의 압축성장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요구된 ‘강력한 국가주의’의 담지자로서 권력을 장악하고 향유했다. 그렇게 70여 년간 고수해온 국가주의를 시대착오적인 이념이자 가치라고 비판하는 것은 자기반성의 출발이다. 한국당 재건이 지지부진한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잘못된 과거에 대한 반성과 청산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복잡한 계파 구도와 총선이란 최후의 심판을 2년 남겨뒀다는 현실적 여건이 발목을 잡기도 했지만 스스로 혁신의 동력을 만들어내기에 한국당은 너무 오랜 세월 기득권에 매몰돼 있었다. 외부에서 수혈된 김 위원장은 한국당의 이 같은 한계의 틈새를 파고들었다. 나아가 김 위원장은 취임 직후 문재인 정부의 국가주의 성향을 비판함으로써 탈국가주의 화두가 당내에만 머무르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진보 성향의 민주주의 연구 대가인 최장집 교수가 분석했듯이 진보세력은 보수세력보다 “더 강력한 국가주의적 이념과 열정으로 충만해 있다”(‘정치의 공간’ p.105∼106). 최 교수에 따르면 진보세력은 경제성장과 개혁 정책을 밀고 나가는데 국가 주도, 국가 중심성이라는 점에서 더 강력한 국가주의적 성향을 갖는다. 그들에게 국가는 개혁의 동력이다. 시민 주권자들로부터 통치를 위임받았으므로 정부는 사적 경제 영역을 지휘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 위원장이 지난달 26일 인터뷰에서 “박정희식 국가 주도 모델은 가부장적인 아버지형 정부”라고 비판하면서 “문재인 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탈국가주의’는 한국당의 활로다. 김 위원장은 국가주의의 대안으로 시장과 공동체를 신뢰하는 자율주의를 제시한다. 자율주의는 우리 사회에 유입되면서 왜곡된 보수 원형과 맞닿아 있다. 보수는 인간 이성에 한계가 있는 만큼 인간의 의지대로 사회를 설계하고 바꿔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래서 보수는 시장과 공동체에 더 많은 자유를 줘야 하며 국가는 간섭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작은 정부, 규제 혁파, 감세 등이 보수의 특징으로 꼽히는 이유다. 물론 보수를 시장의 눈으로만 보는 경제환원론의 위험을 경계하며 김 위원장은 ‘세 바퀴 정부론’과 ‘보충성의 원칙’을 제시한다. 빈부 격차, 안보와 같이 시장과 공동체가 해결하지 못하는 영역을 국가가 보충함으로써 국가, 공동체, 시장이란 세 바퀴가 균형을 이뤄 굴러가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타산을 떠나 ‘탈국가주의’ 논쟁은 정치를 업그레이드할 건강한 담론이다. 보수와 진보가 성장과 반공의 프레임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소홀히 해온 시장과 공동체의 자율, 시민의 자유, 포용적 성장, 상호 인정을 통한 소통과 통합 등을 진지하게 논의하고 그 과정을 통해 시민의 선택을 받는, 정치를 정상화하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mail 박민 기자 / 정치부 / 부국장직대겸 정치부장 박민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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