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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통일
[정치] 파워인터뷰 게재 일자 : 2018년 08월 10일(金)
“北비핵화 협상 이제 두 달… 벌써 성패 따지지 말고 과정 중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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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용출 워싱턴대 잭슨스쿨 한국학 석좌교수는 지난 7월 30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국립외교원 인근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북핵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미국의 동북아 지역 영향력이 역설적으로 감소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하용출워싱턴大 잭슨스쿨 석좌교수

과거 6者회담에도 2~5년 걸려
협상카드 준비해 ‘롱텀’ 봐야

‘기술적 CVID’ 사실상 어려워
사람 머릿속 들어있는 核기술
그사람 죽이기 전엔 제거안돼
‘폴리티컬 CVID’ 의 경우에는
北이 상당 수준의 비핵화 하되
전략적 활용 못하는 환경 조성

한국이 모든 걸 다 하려 하면
양쪽서 소외나 오해 받을수도
3者회담이나 미니 6者회담 등
상설적 협의체 구성 필요있어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후 105일, 6·12 싱가포르 센토사 미·북 정상회담 후 59일이 지났지만 북한 비핵화 전망은 안갯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북한은 왜 비핵화 협상에 나왔으며, 미국의 대북 전략은 과거와 달라진 것인가. 과연 비핵화는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북한은 대북 제재를 뚫고 핵보유국의 지위를 얻는 대신, 한국만 안보가 무장해제당한 채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는 건 아닌지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북핵과 통일, 한국의 근대화 문제 등을 연구해온 하용출(69) 워싱턴대 잭슨스쿨 한국학 석좌교수를 지난 7월 30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국립외교원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국제정치학회장을 지낸 하 교수는 진보·보수 이념을 떠난 균형 잡힌 시각을 소유한 정치학계 원로로, 비핵화의 가장 큰 변수인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정치 상황을 현장에서 지켜본 경험을 토대로 비핵화 퍼즐을 풀기 위한 주목할만한 단서들을 제시했다. 하 교수는 지금의 북한 경제를 “완전히 막다른 골목에 몰려 한계치에 도달한 스크램블링 이코노미(scrambling economy)”라고 정의했다. ‘체제 정체성 없이 표류하는 하루살이·뒤죽박죽 경제’라는 의미다. 하 교수는 “미국이 과거에 인정하지 않던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인정하느냐가 비핵화 협상의 큰 변수가 될 것”이라며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교착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남·북·미 3자 협의체 또는 미니 6자회담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먼저 지난 7월 30일 국립외교원 ‘남북·북미 정상회담 이후의 한국외교’ 세미나에서 발표한 주제 요지와 북한 비핵화 핵심 쟁점에 관한 얘기부터 꺼냈다.

“북핵 협상을 보는 시각과 한국 정부에 닥칠 도전 두 가지를 세미나에서 얘기했다. 북한이 비핵화에 얼마나 진정성이 있느냐를 보려면 이번 북핵 협상의 특징부터 살피는 게 중요하다. 과거와 현재의 북핵 협상의 가장 큰 차이점을 봐야 한다. 이전에는 북핵 문제에서 미국이 ‘기술적 비핵화’만 이야기했는데 지금은 북한의 체제 개혁, 체제 선택의 문제와 한반도 평화 문제까지 연동해서 북핵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두 번째 차이점은 이전과 달리 북한의 핵 개발 기술이 상당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북한이 미국을 공격할 정도로 완벽한 기술 수준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2005년 수준은 아니다. 북한의 핵 기술이 완성된 수준이면 미국 입장에서 서지컬 스트라이크(외과수술식 타격)를 할 수도 있지만, 그 경우 엄청난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미·북 모두 애매한 상황에 있었기에 궁극적으로 둘이 만날 수밖에 없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 한국이 자연스럽게 개입했다는 점이다. 이 세 가지만 봐도 이전과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옛 소련의 니키타 흐루쇼프 서기장은 1956년 20차 비밀전당대회에서 평화 공존 노선을 택했는데, 핵무기 때문에 그랬다. 핵무기가 (핵 개발국에) 어드밴티지도 주지만, 상당한 딜레마도 가져온다. 원자폭탄은 계급을 구분하지 않는다. 자본가든 사회주의자든 다 죽는다. 그래서 평화 공존 문제가 나오며, 북한도 예외가 아니다. 북한의 핵무기를 보는 시각이 과거와는 달라져야 한다.”

―북한이 핵 군축 협상을 한다는 지적도 있는데, 비핵화 협상의 목표는 어디까지일까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는 테크니컬(기술적) CVID, 폴리티컬(정치적) CVID, 동결 세 가지로 구분된다. 테크니컬 CVID는 이상적이지만 형식적으로 어렵다. 사람 머릿속에 들어 있는 핵기술은, 그 사람을 죽이기 전에는 제거하기가 어렵다. 테크니컬 CVID는 이론적으로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어렵다는 것이다. 폴리티컬 CVID는, 상당 수준의 비핵화를 하되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기를 가지고 전략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동결은 말 그대로 현상 유지이지 비핵화는 아니다. 자꾸 테크니컬 CVID를 주장하다 보면 결과적으로 협상은 깨질 수밖에 없다.”

―비핵화 협상이 처음 기대한 만큼 진전이 없어 우려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성공이냐 실패를 얘기하기보다 롱텀으로 가야 한다. 과거 북핵 6자회담을 하는 데, 2∼5년이 걸렸다. 지금 협상이 두 달 정도밖에 안 됐다. 너무 속도에 연연하지 말고 과정을 중시하고, 협상 카드를 준비해 아이디어를 내면서 진행하는 게 필요하다.”

―난관을 뚫을 합리적 협상 카드가 절실합니다.

“북한이 종전선언을 요구하는데, 구체적으로 이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협의체가 필요하다. 지금 미·북 간 실무자 그룹이 가동되고 있는데, 미·북 간은 그런 식으로 진행하면 된다. 결국, 한국이 독자적으로 중재하기에 한계가 있다면, 3자회담이나 미니 6자회담 방식의 상설적 협의체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 미·북 간 문제가 복잡해질 경우, 협의체 차원에서 협의를 통해 권고라도 할 수 있도록 해야지 한국이 모든 걸 다 하려면 양쪽 모두로부터 소외되거나 오해를 받아 매우 어려워질 수 있다. 미·북이 신뢰도가 안 쌓인 상황에서 갑자기 북한이 협상 못 한다고 나오는 등 난관에 봉착할 때를 대비해야 한다.”

―요즘 북한 석탄 위장 반입 문제 때문에 대북 제재 위반 논란이 터져 나오는 등 비핵화 협상이 난관에 봉착하고 있습니다. 대북 제재가 뚫리면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가게 될 것이란 의심도 커지고 있습니다.

“결국 북한의 진정성이 문젠데, 이번 경우 진정성은 모르겠지만 옛날과는 다르다고 본다. 우선 북한 경제 문제가 한계치에 도달했다. 계획 경제도 아니고 통제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시장 경제도 아닌 정체성이 없는 경제 상태다. 최근 김정은이 계속 현지지도를 다니고 있는데, 엄청난 개혁을 새로 한다는 차원보다 돌아다녀 보니까 경제가 엉망진창이고, 체제의 정체성이 없이 표류하고 있다는 걸 자기 눈으로 확인하는 과정일 것이다. 핵 개발 과정에서 북한의 딜레마는, 계속적인 핵 협상을 통해 국제 환경을 정비하고, 국내 환경도 개혁하려고 했는데 그게 뜻대로 안 됐다는 것이다. 지금은 그 단계를 벗어났다. 그런 와중에 북한 경제가 한계점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수습할 필요가 생긴 것 같다.”

하 교수는 “북한 장마당이 활성화되면 될수록 이게 김정은 정권에 도전이 되고, 더이상 국가 통제가 약화되는 현상을 방치할 수 없는 지경이 돼가고 있다”며 “그런 차원에서 북한의 핵과 체제개혁을 연결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 위원장이 궁극적으로 비핵화 협상을 통해 미국과 공존 전략을 추구한다고 보시는지요.

“중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북한이 좋아할 리가 없다.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서 체제 안정을 꾀하려 한다. 문제는 과연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전략적 가치를 인정하느냐가 열쇠다. 과거 북한의 그런 가치를 인정하지 않은 미국이 지금은 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미국이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인정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어떤 역할을 하느냐는 너무나 중요하다. 가능한 한 미국이 북한에 대해 적정한 전략적 가치를 인정하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균형 등을 통해 한반도에 대한 균형점을 찾도록 하는 것이 한국이 해야 할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미국이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인정한다는 것은 미국의 전체적인 아시아·태평양 전략 차원에서 가치를 부여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는지요.

“미국이 북한에 대해 구체적으로 전략적 가치를 어떻게 설정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다만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베트남에 가서 북한이 제대로 비핵화하면 베트남같이 될 수 있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베트남과 미국과의 관계가 정상화되면서 경제적으로도 좋아졌다. 그래서 북한도 베트남 사례를 보면서 미국이 그런 식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 같다.”

―미국이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견제 차원에서 북한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시는지요.

“그런 가능성은 있는데, 아직 구체화되지는 않은 것 같다. 중국의 견제 세력으로서 북한의 가치를 미국이 어느 정도 인정할지가 중요하다고 본다. 물론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이 계속 제대로 안 됐다는 문제가 있긴 한데, 이번 기회를 통해서 완성될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장기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북한 방문과 남·북·미·중 4자 종전선언이 최대 이슈입니다. 미국은 비핵화 조건, 핵 신고·사찰 전에는 종전선언에 사인을 못 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북한이 종전선언에 집착하는 이유는.

“두 가지 차원이다. 우선 궁극적으로 평화협정으로 가야 하고, 또 하나는 미·북 관계 정상화로 가는 길이기 때문에 북한으로선 당연히 필요하다. 다만 북한이 제안하는 종전선언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세분화해 검토해야 한다. 3자 협의체로 이 문제를 협의할 수도 있다. 지금 미국의 정치사정이 상당히 복잡해서 쉽게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 조언할 수 있는 협의체가 있으면 , 미·북이 서로 무엇을 맞바꿀 것인지 논의가 가능하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3차 방북으로 미·북 간 워킹그룹이 구성됐습니다. 과거 6자회담 방식으로 돌아가는 것도 무리가 따를 건데 결국 3자 협의체 형태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시는지요.

“동의한다. 그런데 미국 국내 사정이 중요하다. 지금 미국 내에는 북핵에 대한 입장차가 서로 다른 5가지 부류가 있다. 첫째는 모럴 펀더멘털리스트(도덕적 근본주의)로 북한 인권 노동운동가 같은 부류다. 둘째 그룹은, 크리스토퍼 힐 전 동아태 차관보와 같은 현실주의적 회의론자로, 과거 북한과 회담을 해본 사람들로서 실제 해보니까 안 되더라는 부류다. 셋째는 ‘트럼피안 페시미스트’, 즉 트럼프 때문에 안된다는 회의론자들이다. 넷째는 신중한 낙관론자, 다섯째는 로맨틱 위시풀 싱커(낭만적 희망론자)다. 앞의 세 그룹은 상당한 회의론자들로, 트럼프 행정부에는 걸림돌이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을 끌어내리려는 비판그룹들은 국내 정치 때문에 북핵 전망을 비관적으로 본다. 북한 문제만 볼 게 아니라 미국 내에도 이 같은 문제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에 미국의 메시지를 한국이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중요하다. 북한도 문제지만, 문제는 미·북 양쪽에 다 있다고 본다.”


▲  하용출 미 워싱턴대 잭슨스쿨 석좌교수가 지난 7월 30일 국립외교원 인근의 카페에서 핵무기를 개발했다가 경제적 어려움에 빠져 결국 해체된 구소련의 사례를 바탕으로 역시 핵무기 개발로 경제 개발 지연이란 딜레마에 빠진 북한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미·북 간에 논의가 진행되면서 한국이 약간 소외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미국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만 제거하고 적당히 협상을 끝낼 가능성이 가장 우려스럽습니다.

“그럴 가능성도 있지만, 그것 때문에 우려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 문제는 뭐냐면, 그 과정에서 북한과 미국이 한국을 소외시키고 적당히 타협한다는 건 생각하기 어렵다. 한국에서 이의를 제기할 것이기 때문에 그건 어렵다고 본다. 또 남북한 관계가 북핵 문제와 별개로 개선될 수도 있다. 북한의 과거 행태를 보면, 과거에는 항상 남북 관계가 미·북 관계의 종속 변수였는데, 이제는 판문점 정상회담 등을 통해 어느 정도 공고화되느냐에 따라 결정될 문제다. 냉정하게 남북 관계 같은 관련된 변수나 미국에 어떻게 조언할 것인지, 3자 협의체를 통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고, 특정 가능성만 자꾸 얘기하다 보면 현실적으로는 비관론으로 흐르게 된다.”

―일본 등 주변국의 북한 비핵화에 대한 입장과 전략이 중요합니다.

“사실 우리와 일본의 고민이 가장 크다. 북핵 문제가 해결된다 하더라도, 미국의 동북아 지역에 대한 영향력이 역설적으로 감소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미 동맹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준비 상황도 달라져야 한다. 일본도 동북아 질서가 급격히 변화하면 스스로 소외되지 않으려는 노력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일본은 지금 소외론에 엄청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과 북한이 자기들 필요에 의해 ICBM만 제거하고 나머지는 나 몰라라 하게 되면 일본이 북핵 위협에 노출되겠지만, 미국이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북·중 정상회담이 올해 벌써 세 차례 열렸는데 중국의 입장이 큰 변수입니다.

“중국은 일차적으로 북한의 핵무기가 상당히 진전된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것도 이전과 다른 점이긴 하다. 그러나 중국이 북한의 핵무기에 위협을 느끼는 정도는 일본, 한국보다는 훨씬 낮다. 북한이 중국을 겨냥할 것이란 생각은 안 하기 때문이다. 다만, 중국의 기본 이익은 미·북 관계가 정상화되면서 중국이 소외되지 않는 문제, 전반적인 과정에서 그것이 기본 목표일 것이고, 동북아 지역 질서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북핵 문제를 해결하면서 중국의 위상을 어떤 식으로 새롭게 정립하느냐를 핵심 문제로 삼을 것이다.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미국이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중국의 초미의 관심사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에서 그 문제는 아직 결정이 안 됐을 것이다. 다만, 그러한 조짐은 보인다. 이전과 달리 미국이 북한의 체제를 거론하고 그것이 비핵화와 연결돼서 얘기되고 있다는 게 이전과 다른 점이다. 미국이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인정할 가능성이 이전보다 훨씬 높아졌다고 본다.”

―중국도 기존의 북한에 대한 전략적 가치를 재평가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북·중 정상이 최근 계속 만나고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만, 북한은 미국을 다루는 과정에서 중국을 백그라운드로 활용한 것이고, 북한 입장에서 보면 전략적인 측면이 있다고 본다.”

―북핵이 기술적 완성단계가 아니라, 상당한 정도의 기술 발전단계에 이르러 협상장에 나온 것은 북한의 전략적 판단이었다는 의미인가요.

“그렇다. 지금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뭘 할 것이냐는 문제를 아는 게 중요하다. 옛 소련을 보라. 소련은 핵무기 때문에 망한 나라다. 왜냐하면,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로 가면 미국과의 핵 등가성이 생기는데, 그게 소련의 국가 위신을 엄청나게 올려주었다. 그걸 가지고 국내 정치를 했다. 그런데 오히려 핵무기 때문에 국내 정치를 소홀히 한 아이러니가 생겼다. 한국 국내의 논의에서는 옛 소련 얘기는 나오지도 않는데, 단순히 군사적 논리만을 고려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북한의 국내 정치·경제와 연결해서 봐야지 자꾸 군사 논리만 갖고 얘기해서는 안 된다. 군사 논리를 얘기하면 사람들이 주목하지만 경제 논리를 들먹이면 대부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북한의 군사 논리뿐만 아니라 경제 논리와도 결부시키면 북한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요.

“북한 경제는 완전히 벼랑 끝에 와 있다. 통제 경제도 아니고, ‘스크램블링 이코노미’ 상태다. 하루살이 경제, 뒤죽박죽 경제로 이것저것 적당히 해서 넘기는 경제 상태다. 북한 정권 차원에서 상당한 골칫거리다. 김정은이 요즘 현지지도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청사진을 가지고 하는 게 아니라 막다른 골목에 몰려 할 수 없이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평양을 가보니까 차도 많이 왔다 갔다 하고 잘 정돈돼 있다는 얘기를 한다. 그건 오히려 북한의 통제경제 체제가 약화됐다는 징조다. 정권 차원에서 보면 위험한 것이다. 더 이상 이 상태를 지속하다가는 어찌할 수 없는 위기 상태가 온다는 신호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면서 그런 딜레마가 오게 된 것이다. 핵 개발하면서 경제개발을 제대로 못 했기 때문에 오는 딜레마다. 북한은 두 가지 딜레마에 빠졌다. 하나는 핵 개발하면서 경제 문제를 터치 못 한 것이고, 두 번째는 핵 개발을 하고 난 뒤의 딜레마인데, 핵을 가지고 뭘 하느냐는 것이다. 핵무기를 군사적으로 활용하다 보면 결국 소련처럼 한계가 생긴다. 핵무기는 군사적 어드밴티지만 있는 게 아니라 딜레마도 따른다.”

―미·북의 비핵화 협상보다 남북 관계 개선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 관계 개선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가요.

“남북은 이슈가 서로 다르다. 남북은, 오랜 기간 할 수 있던 걸 안 해왔는데 이제야 그걸 하는 것이다. 북핵 문제는 북한 입장에서 보면 안 하면 죽을 수도 있는 생존의 문제지만, 남한 입장에서는 솔직히 안 해도 그만인 문제다. 그러나 남북 관계가 돈독해지는 것은 남한 입장에서는 대단히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핵 협상 과정과 남북 관계를 독립변수로 할 수 있는 요소를 늘리는 것이다. 북한은 전통적으로 남북 관계를 우습게 봤다. 그래서 통미봉남 얘기도 많이 나왔는데, 이제 그런 단계로 가선 안 된다. 가능한 한 남북 관계의 독자적 영역을 개척해야 남한의 영향력도 증대된다. 북한에 대한 남한의 영향력이 그만큼 커지는 것이다.”

―비핵화와 연계해 한·미 관계의 전망은 어떤지요.

“앞으로 한·미 동맹 문제 같은 것이 불거질 것이다. 미국의 대응을 볼 때, 역설적으로 미·북 문제가 잘 해결될수록 한반도에 대한 미국 영향력이 줄어들 수도 있다. 지금까지 북한 문제를 중심으로 동맹 관계를 유지해 왔다. 지금 한·미 동맹을 보는 시각은, 군사적·물리적 준비는 한국이 많이 하면서 심리적으로는 미국에 의존을 많이 한다. 이 상황을 역으로 바꿔야 한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하면서 미국은 중장기적으로 부차적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보수는 미국이 없으면 (안보가)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진보는 과거에 반미를 하다가 지금은 미국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래서 양쪽 다 문제가 생겼다.”

―미·중 간 대결 구도가 격화되고 있습니다. 군사적으로도 마찰이 상당히 장기화하고 있습니다.

“옛날의 미국을 상대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트럼프 행정부를 보는 미국인들은 ‘미국 중심’밖에 없다. 설령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하고 새 정부가 탄생할 때, 과연 이전으로 돌아갈 것인가. 약간의 번복이 있을진 모르지만, 완전히 옛날로 돌아가지는 않고, 오히려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중심적 카드를 더 활용할 수도 있다. 그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과거의 미국으로 돌아가기는 어렵다고 본다.”

―미국의 전체적인 세계 전략이 완전히 바뀌어서 그렇게 된다는 뜻인가요.

“미국이란 나라를 그동안 우리가 너무 과대평가했다. 냉전이 끝나고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unipolar)가 되는 과정에서 미국 자신도 오만해졌다. 냉전 체제의 긴장이 풀리면서 미국 국내 체제의 문제점이 나타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도 자체 정비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런 과정에서 예전의 미국으로 완전히 돌아가는, 과거 회귀는 없을 것이다.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 한국을 방문했을 때 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당시 언론에서 캐치를 못 했는데, 아주 흥미로운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화 가치 같은 것에 관심이 없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진용이 안보 현안이나 비핵화 이슈에 대해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오는데요.

“저는 외교·안보 인사들의 개인적인 인물평은 솔직히 모른다. 다만 중요한 문제는, 지금 한국의 외교 정책에서 안보와 경제가 분리돼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한국과의 관계에서 경제 문제를 안보에 활용한다. 지금 우리의 의사결정 체계를 보면, 안보와 경제가 분리돼 있다. 이걸 상호 연계하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경제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 안보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 이런 관점에서 국제관계를 담당하는 각 부서가 국내 경제와 안보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종합·취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전통적으로 안보 문제만 담당하는 곳인데, 그런 식으론 이제는 안 된다. 안보 문제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서로 같이 볼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안보와 경제를 분리하고, 안보 문제가 대외 문제라고 생각하는 건 말이 안 된다. 한국은 외부로부터 경제 영향을 매일같이 받고 있다. 세계화에 대한 경제 지도를 그리는 게 필요하다. 거의 면 단위 수준으로 외부적 충격에 의해 무슨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우리에겐 그런 게 없다. 조선 시대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보다도 지금 수준이 못하다.”

인터뷰 = 정충신 부장(정치부) csjung@munhwa.com,
정리 = 박준희 기자 vinkey@munhwa.com
e-mail 정충신 기자 / 정치부 / 부장 정충신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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