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頂上 통화 뒤 ‘남북관계’ 앞세운 靑, 북 제재 강조한 美

대북 특사단이 5일 평양을 방문하기에 앞서 4일 문재인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50분 동안 전화 통화를 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 철회,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설치를 둘러싼 이견, 유엔군사령부의 북한 철도 조사를 위한 한국 열차의 군사분계선 통과 불허 등이 발생한 상황이어서, 두 정상(頂上)의 대화는 늦었지만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통화 뒤 양측의 발표는 뉘앙스가 크게 달라 대북 공조에 대한 우려를 더 키우고 있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통화에서 “남북관계 개선이 한반도 비핵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이 좋은 성과를 거두기를 바란다”고 화답했다고 발표했다. 백악관은 남북관계에 대한 언급 없이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 국무부는 남북관계와 비핵화 병행 및 제재 준수를 거듭 강조했다. 청와대는 남북관계 개선을, 백악관은 대북 제재를 앞세운 것이다.

이번 통화가 아니더라도 최근 여권 핵심부에서는 ‘선(先) 남북관계 개선, 후(後) 북핵 폐기’ 쪽으로 급속히 기울고 있다. 북핵 폐기 최우선 원칙이 남북관계와 핵 병행론으로 옮겨가더니, 이젠 아예 남북관계 선행 쪽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8·15 경축사에서 “남북관계 발전이 한반도 비핵화를 촉진하는 동력”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인식의 연장선에서 개성 연락사무소는 주권 사항이라는 주장과 개성공단 재개 움직임은 물론, 일각에선 파주 등 접경지역에 별도의 남북 경협특구를 만들자는 구상까지 구체적으로 나오고 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일 국회 대표연설에서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해 민주당이 앞장서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은 북한의 ‘우리민족끼리’ 전략에 동조하는 셈인 데다 사실상 유엔 제재를 무력화하는 데 앞장서게 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한·미 동맹에도 심각한 균열이 생긴다. 결과적으로 북핵을 묵인하는 것이 된다. 핵 폐기 없이 관계 개선도, 경협도 불가능하다는 점을 북한에 밝혀야 한다. 진정한 남북관계 개선과 경협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 특사단은 이런 내용을 김정은에게 설명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