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非核의지 있다면 노동당 규약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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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 前駐유엔 대사

평양을 다녀온 대북 특사단이 18∼20일 남북 평양정상회담 개최 및 회담전 남북연락사무소 개소 등 합의사항을 6일 발표했다. 대표단은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전달했다. 문 정부 제1차 남북 정상회담을 이끌어냈던 첫 번째 특사단의 방북 이래 6개월 만이다. 그러나 상황은 그동안 더욱 복잡해졌다. 완전한 비핵화, 남북 3차 정상회담, 개성 연락사무소 설치, 개성공단 재개, 종전선언, 평화협정 등 중요한 사안의 우선순위와 셈법에 있어 미·북 간 및 한·미 간에 서로 다른 생각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열흘 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 취소 이후 급격히 약해지는 비핵화의 박동을 느끼고 제3차 남북 정상회담 실현을 통해 긴급 심폐기능 소생술을 하면서 남북관계의 실질적 진전을 이루려는 정부의 의도가 읽힌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미국의 의구심은 날이 갈수록 더 커지는 가운데 대북 접근법에 관한 한·미 간 입장 차이가 우려스럽다는 워싱턴 조야의 분위기가 서울에 공공연히 전달되고 있다. 정부는 남북관계 발전을 통해 비핵화를 촉진하는 동력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남북관계 발전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개성공단 재개나 도로 및 철도 연결과 같은 경협(經協)이거나 종전선언의 우선 추진 등을 뜻한다면 이는 대북 제재를 훼손하고 한·미 공조의 균열을 야기해서 궁극적으로는 비핵화 촉진 동력 확보라는 당초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게 된다는 점에서 위험스러운 생각이다.

과거의 경험상 그동안 비핵화를 목적으로 한 대북 협상은 희망과 기대감 속에서 시작했으나, 진전의 어려움에 따라 예외 없이 좌절감과 배신감으로 이어져 온 패턴을 반복해 왔다. 그러나 상대가 우리 의도대로 따라주지 않는다고 조기 수확의 의욕에 초조해진 나머지 우리 스스로의 입장과 목적을 타협의 대상으로 삼으려 해서는 안 된다. 비핵화의 실질 조치가 없는데도 신고 용의만 밝혀도 종전선언이 가능할 수 있다는 발상은 종전선언이 몰고 올 파장을 짐작건대, 돌려받을 가능성도 없으면서 덮어놓고 외상으로 값비싼 물건을 내주는 격이다.

1973년 제네바 다자간 중동평화협상 결렬 후 화가 난 이스라엘 대표는 ‘아랍인들은 실기(失機)할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는다’고 탄식했다. 1994년 미·북 간 제네바 합의 이후 북한에 주어진 여러 차례의 기회가 무산될 때마다 한·미 전문가들도 마찬가지로 탄식했다. ‘북한이야말로 실기할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고.

북한으로서도 그동안 잘못 길들여진 핵협상 습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 정부가 제공한 절호의 기회를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 인정하기 불편하겠지만,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9·9절 행사 참석을 위해 당초 계획했던 북한 방문을 취소하고 특사를 대리로 보내는 속내를 잘 읽어야 할 것이다.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무역전쟁을 감행하고 이에 중국이 무역 외적 차원에서 비핵화에 관한 미국의 입장에 일정 부분 동조하려는 강대국 간의 주고받기 게임의 성격이 내재돼 있음을 새겨봐야 한다. 진정한 비핵화의 의지가 있다면 검증과 핵물질 반출과 같은 실질적 행동 이전이라도, 핵(核) 보유를 천명한 헌법과 법률, 그리고 노동당 규약부터 개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것들을 거부하며 비핵화를 말한다면 누가 믿어 주겠는가.

다른 한편, 우리는 혹시 남북관계 개선의 성급한 의욕 때문에 비핵화의 호기를 놓치는 잘못을 범하고 있는 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