性추문, 그 이후… 여성들에게는 끝나지 않는 후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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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 제인 /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루페

1997년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의 섹스 스캔들로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모니카 르윈스키는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스캔들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르윈스키는 이달 초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한 TV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해 ‘인터넷의 위험성과 긍정적 측면’에 대해 강연하던 중 뉴스 진행자가 돌발적으로 던진 질문에 그만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클린턴 전 대통령과의 추문 이후 받았던 피해에 대해 개인적 사과를 원하느냐는 것이었다.

소설은 바로 성추문 사건 이후 수많은 ‘르윈스키’가 겪었을 ‘후폭풍’에 관한 이야기다. 유명 정치인과 젊은 여성 인턴, 성공한 제작자와 신인 여배우 등 권력을 가진 남성과 상대적으로 취약한 여성의 스캔들은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사건의 후폭풍이 유독 여성에게만 더 가혹하게 작용한다는 점이다.

스무 살의 아비바 그로스먼은 에런 레빈 하원의원의 인턴으로 일하던 중 어리석은 실수를 저지른다. 유부남인 레빈 하원의원과 불륜에 빠진 것이다. 아비바의 엄마인 레이철은 그 사실을 알고 딸에게 “헤어지라”고 설득한다. 누구보다 딸을 사랑하고 그의 결정을 존중하지만 레이철은 이게 얼마나 위험하고 부질없는 일인지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불륜이 세상에 공개되며 아비바의 인생은 다시 일어설 수 없을 만큼 무너져버린다. 15년이 지나도 레빈은 여전히 하원의원직을 유지하고 있지만 아비바는 취업은커녕 사회적 편견을 떨치는 것조차 힘들다.

소설은 크게 여성 5명의 이야기로 이뤄져 있다. 위기에 빠진 딸을 바라보는 레이철을 첫 번째로, 선거에 출마한 제인, 제인의 어린 딸 루비, 레빈 하원의원의 부인인 엠베스, 그리고 아비바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독립됐지만 결국은 모두 연결된 인물들이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가해자이자 피해자이기도 하다.

무척이나 어렵고 괴로운 이야기지만 소설의 분위기는 의외로 밝고 경쾌하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섬에 있는 서점’의 저자인 개브리얼 제빈은 민감한 주제를 특유의 재치 있는 문장과 구성으로 흥미롭고 생기 있게 버무린다. 특히 이 작품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이슈를 정면으로 건드리고 있다는 점이다. 소설을 따라가다 보면 르윈스키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스캔들의 당사자들이 떠오른다.

관음증적인 관심, 선정적인 보도, 인터넷의 ‘신상털기’ 등 성추문 앞에 세상이 작동하는 방식은 동서양이 다르지 않다.

‘미투’ 운동, 여성 혐오, 성폭행에 대한 법의 해석 등이 계기가 돼 여성 인권 문제가 뜨거운 요즈음, 이 소설은 문제의 본질에 닿을 수 있는 길을 넌지시 일깨워줌으로써 그동안의 관습적인 시각을 돌아보게 한다. 400쪽, 1만4800원.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