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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이현종 논설위원 게재 일자 : 2018년 09월 21일(金)
북한 聖地 백두산 vs 민족 靈山 백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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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外交에 숨겨진 ‘다빈치 코드’
DJ 때 北, 금수산 참배 집착
상징적 장소로 선전 극대화

文, 제재 대상 ‘만수대’ 관람
대집단체조 이어 백두산 등정
김정은 체제 정통성 保證 효과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대표작인 ‘최후의 만찬’ ‘모나리자’ 안에 숨어 있는 암호를 둘러싼 흥미진진한 얘기다. 암호를 하나씩 하나씩 풀어가면서 그리스도교를 둘러싼 비밀에 접근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국가 간 외교전에서도 상대방에 우위를 점하기 위해 의전이나 방문지 등을 둘러싼 이런 ‘숨은 코드’가 많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정상회담 때마다 짧게는 수십 분에서 길게는 5시간이나 지각을 해 주도권을 장악하는 것도 그렇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대방의 기를 죽이기 위해 악수를 세게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정상적인 국가 간에도 그런데 70여 년간 적대관계에 있는 남과 북은 더 치열하다. 지난 2000년 김대중 대통령 시절 남북 정상회담을 준비할 때 북한은 회담 준비를 위해 평양을 방문한 임동원 특사에게 김 대통령의 ‘금수산태양궁전’ 참배를 집요하게 요구했다.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된 이곳을 김 대통령이 참배한다면 북한 체제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대통령 방북 당일까지도 일정이 조정되지 않았다. 임 특사는 북측에 “참배 때문에 일을 깨면 지하에 있는 김일성 주석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김 주석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는 것이 좋다고 할 것”이라고 했지만, 북측은 막무가내였다고 한다. 결국 평양 순안공항에 내린 김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 차를 타고 가는 중에 “금수산에 안 가셔도 되겠습니다”는 말을 듣고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한다.

북한이 남측 인사들이 방북할 때 꼭 이런 장소를 방문할 것을 요청하는 것은 그 장소에 ‘숨은 코드’가 있기 때문이다. 김일성, 김정일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만 해도 북한 유일 영도 체제의 상징적인 장소다. 북한이 국빈들에게 꼭 이곳을 참배하게 하는 것도 김정은 체제를 인정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 때 북한은 금수산 방문은 요청하지 않았지만, 만수대창작사와 5·1경기장에서 열린 대집단체조 ‘빛나는 조국’ 관람, 백두산 관광을 실시했다. ‘외교에는 공짜 점심이 없다’는 말이 있듯이 북측의 이런 극진한 환대에는 분명한 대가가 있다. 1959년 김일성 초상화 작업을 위해 설립된 만수대창작사는 북한 예술의 총아라고 하지만, 지난해 8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결의 2371호에 의거해 해외자산은 동결되는 제재 단체로 지목됐다. 만수대창작사는 북한의 경제난이 가중되자 작품을 해외에 팔거나 아프리카 등 일부 독재국가에 대형 동상을 건립해주고 수백억 원의 수입을 올렸다. 유엔 제재위가 문 대통령이 이곳에서 관람만 한 것은 제재 위반이 아니라는 유권해석을 내렸지만, 북한 입장에선 제재를 받은 기관에 문 대통령이 방문한 사실만으로도 제재를 흔드는 효과가 있다.

10만 명이 동원된 ‘빛나는 조국’은 김정일 시대의 ‘아리랑’에 비해 반미 내용 등은 빠졌다고 하지만 북한 정권의 정통성을 과시하는 내용이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이 2000년 10월 방북했을 때 김정일 위원장은 갑자기 5·1경기장으로 안내해 ‘백전백승 조선노동당’이라는 제목의 집단체조를 선보였는데 미사일이 날아가 폭발하는 장면이 논란이 됐다. 집단체조의 비인간적 실상이 알려지면서 2009년 특사로 방북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관람을 거절했다. 2007년 방북한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이 집단체조를 문 대통령이 관람하면서 북한 정권의 정통성은 물론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국가 동원체제의 ‘예술’을 인정한 셈이다. 민족의 영산(靈山)인 백두산 관광도 ‘혁명 성지’를 김 위원장과 함께 등정했다는 정치적 의미가 크다. 김정일 위원장의 후처인 고영희 사이에서 태어난 김 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말이 ‘백두혈통’이지 모친이 재일교포라는 사실 때문에 내내 정통성 시비에 휘말렸다. 이번에 문 대통령과 함께 백두산 천지에서 손을 맞잡은 사진 하나로 정통성 시비는 날려 버렸다.

역대 대통령이 국내 난제가 산적할 때면 자꾸 해외순방을 계획했다. 출국 직후엔 환영 분위기에 기분이 좋았다가 돌아오는 전용기에선 그리 표정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문 대통령도 평양의 환대와 열렬한 환호를 뒤로하고 냉정하게 ‘비핵화 득실’을 정산해야 할 텐데 손에 잡히는 게 별로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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