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 우리가 좋아했던 최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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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희한한 드라마가 있다. 드라맥스·MBN 공동편성 드라마 ‘마성의 기쁨’(극본 최지연·연출 김가람·제작 골든썸)이다.

드라맥스와 MBN 모두 오리지널 드라마의 성공 사례가 없다. 편성 시간대도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다. 게다가 오후 11시 방송된다. 여러모로 핸디캡이 많다.

그 결과 이 드라마의 시청률은 2% 안팎이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10부까지 방송된 이 드라마의 포털 사이트 네이버TV 누적 조회수는 750만 뷰가 넘었다. 같은 날 방송을 시작한 지상파 KBS 2TV ‘오늘의 탐정’의 누적 조회수가 140만 뷰 언저리인 것을 고려하면 괄목할 만한 성적이다.

같은 시간대 맞붙는 OCN 수목극 ‘손 the guest’와도 비교해보자. ‘마성의 기쁨’보다 한 주 늦게 시작된 이 드라마의 시청률은 3% 안팎. 네이버TV 누적 조회수는 ‘마성의 기쁨’의 절반 수준인 350만 뷰다. ‘마성의 기쁨’이 ‘SNS에 더 난리 난 드라마’이자 ‘마성의 드라마’ 불리는 것이 과언이 아니라는 의미다.

특히 3일 방송된 9부의 엔딩이었던 빗속 키스신(scene)은 ‘마성의 기쁨’ 최고의 장면으로 손꼽힌다. 이 장면을 담은 4분 분량의 하이라이트 영상은 공개 하루 만에 조회수 20만 건이 넘어 당일(4일) 네이버TV 전체 하이라이트 영상 중 1위를 기록했다. 그러니 이 드라마를 ‘본방사수’하는 시청자들은 “지상파에서 방송됐으면 시청률 20%짜리 드라마”라고 입을 모은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냉정히 말해 대본은 아니다. 이 드라마는 하루가 지나면 전날의 기억을 잊는 가상의 ‘신데렐라 증후군’을 앓는 재벌 2세와 최고의 위치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톱 여배우의 이야기를 그렸다.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다. 1회에서 중국 하이난을 배경으로 우연한 만남을 가진 후 갑작스럽게 사랑에 빠지는 설정은 촌스럽고, 또 참 뻔하다. 상류층 파티에 가게 된 여주인공에게 돈많은 재벌 2세가 술잔을 건네며 “이거 마시면 10억 줄게”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손발이 오그라든다. 10년 전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에 나와도 이미 ‘진부하다’고 말할 법한 설정이다.

하지만 연출이 이런 단점을 커버한다. 우선 사전제작드라마의 장점이 도드라진다. 다양한 컷이 이를 증명한다. 두 사람의 대화를 다룰 때도, 두 사람을 함께 보여주는 ‘투샷’만 쓰지 않는다. 두 사람을 각각의 프레임에 클로즈업으로 잡으며 감정의 진폭을 자유자재로 전달하고, 주변 사물을 걸고 원경으로 촬영하는 장면도 일품이다. 술취한 여주인공을 보여줄 때는 화면을 뿌옇게 처리하거나 적절한 효과음을 넣는 대목도 재기발랄하다.

이보다 더 크게 칭찬해주고 싶은 이들은 두 주인공이다. 원체 연기력 좋기로 소문난 최진혁은 명불허전이고, 이번 작품을 통해 단독 여주인공으로 마수걸이하게 된 송하윤은 재발견됐다. 특히 이 작품의 중심을 단단히 잡고 있는 최진혁은 사실상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남자 주인공으로서는 첫 도전이었지만, 좀처럼 빈틈이 보이지 않는다.

최진혁은 그동안 OCN 드라마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던 ‘터널’을 비롯해 MBC ‘오만과 편견’, 영화 ‘신의 한수’ 등 장르적 성격이 강한 작품에서 선굵은 연기를 보여줬다.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 작품을 통해 여심을 공략하는데 주력하던 또래 배우들과는 사뭇 다른 노선이었다. 그런 그가 일찌감치 출연을 결정하고 오랜 시간 기다려 촬영한 ‘마성의 기쁨’을 통해, 그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했다.

“나 그쪽 애인하면 안 됩니까?”, “이래서 욕 먹는구나. 예뻐서”, “울지 말랬는데, 혼나야겠네”, “이제 그만 우리 애인합시다” 등 ‘마성의 기쁨’에는 글로 읽었을 때는 두드러기가 날 것 같은 대사가 적잖다. 하지만 중저음의 최진혁의 성대를 거치며 이 대사들은 ‘마성의 기쁨’을 대표하는 동시에 여심의 자극하는 명대사로 탈바꿈됐다. 오직 일밖에 모르던 남자가 사랑에 빠지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현실과 판타지 사이에서 적절히 줄다리기하며 연기의 맛을 십분 살리고 있는 셈이다.

그가 송하윤과 빚는 키스신 또한 일품이다. ‘마성의 기쁨’은 9부까지 무려 4차례의 키스 장면을 삽입했다. 계단에서, 파티에서, 빗속에서 최진혁은 박력있게 다가가는 키스를 선보였다. 남자의 키스다. 두 사람의 키 차이 때문에 목이 꺾이는 송하윤과 그런 송하윤의 머리를 포근하게 감싸는 그의 배려있는 큰 손이 각 키스신을 주옥같이 다듬었다. 그가 ‘신(新) 키스 장인’이라 불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결과적으로 여성 시청자들에게 ‘마성의 기쁨’을 시청하는 시간은, 최진혁에게 빠져드는 시간과 동일하게 흐른다. ‘마성의 기쁨’이 수출돼 동시 방송되고 있는 대만 등에서 일찌감치 그에게 팬미팅 제안을 하는 등 러브콜을 보내는 것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역시 배우는 연기를 잘해야 맛이다.

‘마성의 기쁨’의 인기가 높다는 대만의 인기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제목을 빌리자면, 최진혁은 ‘이 계절, 우리가 좋아했던 배우’라고 할 만하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