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북핵 논의, 한국 안보 앞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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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한국핵정책학회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9일 기자들과 만나 2차 미·북 정상회담 시기와 관련해 “11월 6일 중간선거 이후 열리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네 번째 평양 방문 후 청와대를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2차 미·북 정상회담을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개최키로 했다”고 소개한 바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서울에서 베이징으로 떠나기 전 기자들에게 북한 비핵화 논의에 중대한 진전을 이뤘다고 했다. 하지만 어떤 구체적인 진전이 있었는지는 여전히 분명하지가 않다. 결과적으로 이번 방북에서 북한의 핵 신고와 미국의 종전선언 간 빅딜이 이뤄질 것이란 기대는 다시 무산됐다. 아마도 이번 방북 때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북한이 원하는 비핵화 일정과 더불어 미국의 상응한 조치 관련 요구 사항을 미국에 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은 북한이 이미 폭파한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에 대한 ‘뒷북 사찰’을 제안한 것을 중대한 진전으로 평가하는 것 같다. 하지만 무엇이 북한 비핵화의 핵심인지 본가지와 곁가지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비핵화의 핵심은 핵무기와 핵물질, 핵시설의 폐기다. 무기급 플루토늄(Pu) 혹은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 채광 및 제련 시설, 농축·재처리 같은 핵연료 주기시설, 그리고 핵 전문 인력의 전환 등 정치적·기술적으로 어려운 문제가 산적해 있다.

핵무기 자체의 폐기도 어렵지만, 여기에다 공개·비공개 북한의 핵시설 수십, 수백 곳을 사찰하고 검증하는 일은 벅찬 과제다. 아무리 낙관적으로 추산해도 초기 핵심 비핵화에 1∼3년, 시설 해체와 제염까지 최종적이고 완전한 비핵화에 10∼20년은 걸릴 것이란 게 대다수 원자력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이미 용도가 다한 풍계리 핵실험장이나 영변은 비핵화의 본질에는 한참 못 미치는 상징적이고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북한은 지금 미국을 상대로 ‘미래의 핵’ 동결을 미끼로 종전선언과 제재 해제 등 훨씬 큰 양보를 얻어내려고 한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당분간은 11월 중간선거 승리 외엔 아무런 관심이 없음을 잘 알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간선거에 도움이 되기만 하면, 미국에 직접적인 안보 위협이 되는 ICBM만 제거해도 대대적인 외교적 승리로 선전할 기세다. 김 위원장이 중간선거를 앞두고 외교적 업적이 급한 트럼프를 상대로 과평가된 청구서를 내미는 것이다.

한국은 단순히 트럼프와 김정은을 위한 운전사가 아니라, 북핵 문제의 당사자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당연히 미국과 북한보다는 한국의 안보와 국익을 우선시하는 입장으로 접근해야 한다. 북한처럼 비밀스러운 정권을 비핵화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과제일 수밖에 없다. 일단 북한 핵의 역사가 오래고, 북한 전역에 산재하거나 은닉된 핵시설들을 일일이 파악하고 사찰해 검증, 폐기하는 것은 어느 한 국가나 조직이 감당하기엔 벅찬 일이다.

결국, 북한 비핵화는 국제적 협력이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메가 프로젝트가 될 수밖에 없다. 앞으로 펼쳐질 북핵 엔드게임은 남·북, 미·북, 북·국제사회가 얽힌 3차원 복합 게임이 될 전망이다. 그 게임판에서 한국은 당사자라는 책임의식과 더불어 선의와 균형감을 잘 유지해야 한다. 북한 비핵화에 앞서 남북관계 개선에 욕심을 내다가 3차원 게임판의 균형을 깨는 일은 없어야 한다. 궁극적인 한반도 평화의 선결 조건은 결국 비핵화라는 사실을 한순간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