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소리꾼 장사익이 지난 11일 인왕산이 보이는 서울 홍지동 자택 거실에서 김영랑의 시 ‘오매, 단풍 들것네’를 읊조리다가 곡조를 넣은 노래로 바꿔 부르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70세 맞아 순회공연 ‘자화상 七’ 펼치는 장사익
야구 9회말, 축구 90분처럼
우리도 90까지 최선 다해야
이제는 나를 사랑하며 살 것
꽃·바위 등 ‘자연’이 내 스승
조화와 겸허함 깨닫게 해 줘
詩 저절로 엮여 만들어진 곡
이젠 힘 빼고 자연스레 불러
“6학년 때까지는 그저 앞만 보고 왔는데, 7학년이 되니까, 어, 내가 벌써 여까지 왔네, 싶어서 거울을 봤쥬. 저 깊숙한 곳의 내 모습이 부끄럽고 부족하지만, 이제 나를 사랑해야 하것다, 그런 생각을 담은 노래판이유.”
소리꾼 장사익이 오는 11월과 12월 6개 도시에서 순회공연 ‘자화상 七(칠)’을 펼친다. 올해 일흔 살이 된 그는 이번 공연에 인생 종반전을 향하는 마음가짐을 담았다고 했다.
“야구 경기가 9회 말, 축구가 90분인 것처럼 우리 인생도 90까지 갈 것 같은디, 다 끝나기 전에 최선을 다해야지유. 해가 질 때 노을이 하늘을 멋지게 물들이는 것처럼 우리가 갈 때도 그래야 하지 않것는가, 하는 거유.”
걸쭉한 충청도 사투리로 그가 다시 강조한 것은 “그동안 조직을 위해, 가정을 위해 살았다면, 이제 나를 사랑하며 살자”는 것이었다. 40대 중반의 늦깎이로 노래판에 등장해 우리네 삶의 희로애락을 애수 어린 창법에 담아 펼쳐온 당대의 으뜸 가객. 그의 메시지가 20대의 나이로 세계를 흔들고 있는 방탄소년단(BTS)의 유엔 연설 주제와 상통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지난 11일 인왕산 북사면(北斜面)을 바라보는 서울 홍지동 언덕배기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았을 때, 그는 “쟤들이 내 선생이유”라고 했다. ‘쟤들’이란 집을 에워싼 산에 있는 꽃과 나무, 바위들이었다. 제자리에서 자연의 한 부분을 조화롭게 이루며, 계절의 변화에 순응해 사철 아름다운 풍경을 선물해주는 것에서 겸허함을 배운다는 것이다.
장사익과의 만남은 노래와 시(詩)의 향연이었다. 그는 미당, 목월 등의 시들을 나직나직 외다가 흥이 오르면 노래로 바꿔 불렀다. 평소 시를 즐겨 읽는 그는 모든 노래의 가사를 시 작품에서 “도둑질해 왔다”고 했다. ‘찔레꽃’ ‘하늘 가는 길’ ‘꿈꾸는 세상’ 등은 그가 직접 가사를 썼다. 나머지 작품들은 시에서 빌려왔다는 것이다. 현대시사를 빛낸 명작이 많지만, 무명으로 지역에서 활동한 시인들의 작품도 있다.
“시가 본래 노래잖유. 그것들을 입으로 1년쯤 외우다 보면 저절로 노래로 엮입니다. 그래서 저는 작곡이 아니라 그냥 엮는다고 하쥬, 하하!”
그가 가사에 시를 빌리는 것은 대중음악 수준을 높여 보겠다는 뜻도 있다. 외국에 우리 노래를 소개할 때 가사가 아름다우면 그 나라 사람들이 한국을 높여 보지 않겠느냐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번 공연의 주요 작품들도 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윤동주의 ‘자화상’을 비롯해 김영랑 ‘오매, 단풍 들것네’, 허영자 ‘감’, 기형도 ‘엄마 걱정’, 곽재구 ‘꽃길’ 등을 새 노래로 만들어 발표한다. 물론 관객들이 좀 더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목포의 눈물’ ‘두메산골’ ‘미련’ 등 흘러간 유행가도 부른다.
그의 공연에 15년을 함께한 기타리스트 정재열 음악감독이 이번에도 동참한다. 재즈 거장인 트럼펫 연주가 최선배, 아카펠라 그룹 ‘The Solist’ 등 15인의 음악인도 무대에 오른다. “우리는 가족이에요. 워낙 오래 함께 노래하니까 서로 눈 감고도 불러요, 하하.”
그는 자주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거실의 상에 놓인 떡과 대추를 연방 권했다. 상대방을 편하게 해 주려는 마음이 엿보였다.
그의 음악은 대중가요, 재즈, 국악, 트로트 등의 특정 장르로 규정할 수가 없다. 장사익류로 불릴 정도로 독창적인 그의 노래는 인생을 곰삭힌 듯한 목소리의 매혹과 더불어 때로 절규하는 듯한 창법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해왔다. 우리 시대의 절창으로 인정받던 그는 지난 2016년 성대에 혹이 발견돼 영영 노래를 부르지 못할 위기를 맞기도 했다. 수술 후 재활 치료에 성공함으로써 같은 해에 노래판 ‘꽃인 듯 눈물인 듯’을 열 수 있었다.
“이제 힘 빼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노래를 하려 합니다. 그게 7학년이 된 제가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힘을 뺀 채 제대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저에게도 사실 숙제예요, 숙제, 하하!”
‘자화상 七’은 11월 24, 25일 오후 6시 서울 세종문화회관을 시작으로 대구(12월 2일), 부산(12월 8일), 광주(12월 15일), 대전(12월 26일), 경기 고양(12월 29일)에서 이어진다. 티켓은 인터파크와 세종문화회관을 통해 예매할 수 있다. 문의 02-396-0514~5.
장재선 기자 jeije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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