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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오승훈 부국장 겸 경제산업부장 게재 일자 : 2018년 10월 24일(水)
市場 억누르면 民生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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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훈 부국장 겸 경제산업부장

18세기 유수원, 시장의 得 간파
애덤 스미스와 國富 근간도 유사
民産 확충이 부국안민의 기반

韓경제엔 反시장 이념이 압도
민생 고통, 투자 활력 상실 심각
노동력, 자본 이동에 길 터줘야


통치자가 묻는다. “집주인이 큰돈을 들이지 않고서 어떻게 기와집을 한두 달에 완성할 수 있는가?” 학자가 답한다. “집주인이 공본(설계도)을 문 앞에 내걸고 흥정꾼에게 알리면 기둥 기술자는 기둥을 세우러 오고, 나무장수는 목재를 다듬어 오고, 석공은 주춧돌을 가져오고, 목수와 미장이는 손질한 도구를 들고 옵니다. 각자 일을 끝내면 그 값을 받는데, 며칠이 안 되어 눈앞에 우뚝 선 집을 보게 됩니다.” 다시 통치자가 “일은 빠르나 비용 낭비가 많지 않겠는가.” 학자가 되받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법이 없어서 일이 지연돼 필요 없는 비용이 오히려 많이 들고 있습니다.”

조선 후기 학자 유수원(1694~1755)의 ‘우서(迂書)’에 나오는 문답이다. 그는 시장(市場)이 되레 삶을 궁핍하게 하지 않겠느냐는 통치자의 의구심을 덜어주려 떡집도 예로 들었다. ‘중국의 떡집은 하루 내내 떡을 친다. 방앗간에서 사 온 쌀은 빻아서 가루로 만든 것이고, 과점에서 가져온 과일은 이미 씨를 뺐으며, 밤은 껍질을 벗긴 것이다. 가게 주인은 오직 떡을 찌기만 할 뿐인데 10섬의 떡이 순식간에 팔린다. 비용이 덜 들고 이익이 후해서 주객이 모두 편하다.’ 시장의 노동 분업과 교역, 수요와 공급, 가격 효과를 이보다 쉽게 풀어낼 수 있을까.

이 이야기는 핀 제작 공정을 예로 들어 분업의 생산성을 강조하고, 빵과 고기로 근사한 식탁이 차려진 게 제빵사나 푸줏간 주인의 호의가 아니라 이익 경쟁에 있다고 일러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1776년)보다 약 40년이나 앞선다. 국가의 부(富)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두 사람의 근간은 비슷하다. 유수원은 임진, 병자의 난을 겪은 조선의 위기를 자원 부족이 아닌 바닥을 드러낸 ‘민산(民産)’, 즉 국민의 생산성 부족에서 찾았다. 상공업은 자유방임을 할 게 아니라 도(道·원칙)를 세우고, 기술을 혁신하며, 이치에 맞게 세금을 걷는다면 부국안민(富國安民)이 될 것이라고 했다. 스미스가 나라 곳간에 쌓인 금과 은에 집착했던 중상주의자들에게 맞서 국부를 노동생산성의 총량으로 설명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유수원은 농암(聾菴), 농객(聾客)으로 불렸다. 귀가 들리지 않았다. 영조가 ‘우서’를 보고 “나는 행할 수 있는 자리에 있으면서 행하지 못할까 말을 못 꺼내는 데 글로써 이를 기술했으니, 실로 나보다 뛰어나다”고 한 상찬을 그는 듣지 못했다. 중앙관직을 받았으나 노론의 기세에 눌려 지방 수령을 전전하다 괘서사건에 연루돼 대역죄로 사형된 비운의 학자다. 이로 인해 ‘우서’는 공식 기록에서 사라졌고, 이리저리 전승되다 제 이름을 찾아 본격적으로 연구된 건 200년이 훨씬 지난 1970년 전후란다. ‘우서’의 해제를 쓴 고 한영국(전 인하대 교수)은 “이처럼 총괄적으로 체계 지어 사회개혁론을 기술한 조선 후기인의 저서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어쩌면 ‘우서’가 사장됐던 기간은 탐욕, 독점, 매점, 가격조작 등 시장의 부정적인 측면만 강조돼 권력의지에 따라 농단해도 된다는 인식이 굳어진 암흑기였을지도 모른다. 사회체제가 달라지고 권력 주체가 바뀌어도 상공인을 천시하는 풍토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실학자들 가운데 북학파(이용후생학파)의 원류인 유수원은 온전한 시장경제의 주창자는 아니었다. 당시 중국만을 본으로 삼았던 한계도 뚜렷해 보인다. 그런데도 그의 책장을 다시 넘겨보는 것은, 그가 태동기에 시장경제 원리를 간파했음이 실로 놀랍게 보이는 요즘이어서다. 지금 한국 경제를 짓누르는 것은 반(反)시장이다. 시대착오적인 이념의 폭압 같다. 그 서슬에 상품과 서비스, 노동력과 자본의 길이 막혀버렸다. 그래서 민생은 취업 걱정, 집 걱정으로 고통받고 불감당인 기업들은 자포자기 상태다. 길을 트지 않고, 시장이 번성하기를 바라는 건 어리석다. 시장경제는 다른 어디서 수입된 게 아니다. 어느 땅이나 민생이 있는 곳에선 보편적인 삶의 방식이다. 근대 이후 시장을 억누르고 민복(民福)과 국부를 일군 사회나 국가는 단언컨대 없다. 유수원이 일갈한다. ‘오늘날 사람들이 산업(産業)을 다스릴 방도는 생각지 않고 교역이 성행되기 어렵다고만 말하니, 이것이 그 근본을 살핀 것인가. 말단만을 다스리고 근본을 다스리지 않는다면, 옛날 그대로 침고(沈痼·고질병)일 뿐이다.’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경구(警句)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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