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7주년 특집-사회적 공존>수도권-非수도권 이분법 대립…‘분권화-脫규제’ 두 바퀴로 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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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 & 지방 상생

면적 12% 차지하는 수도권에
인구 절반·기업본사 73% 집중
비수도권 17곳 작년 ‘신생아 0’

수도권 규제 시행 30년 됐지만
격차는 안줄고 기업투자만 저하
소외감 큰 지방은 “더 규제해야”

獨지방정부 독자 입법·재정권
연방정부선 재정력 격차 조정
日은 지자체 합병 경쟁력 강화

“이대로 가면 대한민국은 수도권 공화국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달 5일 광주시청에서 열린 ‘대한민국이 직면한 공동체적 위기 극복방안’을 주제로 한 특강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김 장관은 “이제는 중앙정부가 권한과 재원을 움켜쥐고 국가 운영을 할 수는 없다”며 “국가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은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금처럼 권한과 재정이 수도권에 집중돼서는 국가 경쟁력 강화도 국민 화합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수도권공화국 vs 지방소멸 = 인구 965명의 강원 춘천시 북산면은 지난해 아이가 한 명도 태어나지 않았다. 지난달 27일 춘천 시내에서 자동차로 50여 분을 달려 도착한 이곳에는 토요일 대낮인데도 사람을 구경하기 어려웠다. 주인 없는 폐가가 곳곳에서 발견돼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마저 느껴졌다. 북산면은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노인이 400여 명으로 노인 비율이 40%가 넘는 초고령 지역에 속한다. 북산면 추전리와 대동리, 내평리는 2006년 출생통계가 작성된 이후 현재까지 10여 년이 넘는 기간 출생아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처럼 지난해 아이가 한 명도 태어나지 않은 전국의 읍·면·동은 모두 17곳으로 전년보다 3곳이 늘었다. 경남 4곳과 경북 4곳에서 신생아가 없었고, 강원도가 3곳으로 뒤를 이었다.

이상호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이 발표한 ‘한국의 지방소멸 2018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으로 전국 228개 시·군·구 중 30년 후 사라질 가능성이 큰 ‘지역소멸 위험 지역’은 89곳(39.0%)으로 조사됐다. 읍·면·동 기준으로는 전체 3464곳 중 1503곳(43.4%)이 소멸 위험 지역으로 분류됐다. 소멸 위험지역 상위 10곳은 경남, 경북, 전남의 군 단위 지역이었다.

인구 감소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지방과는 반대로 수도권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통계청의 ‘2017년 인구주택 총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11월 기준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 인구는 2552만 명으로 전년보다 13만 명이 증가했다. 전체 국토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절반(49.5%)이 밀집해 있는 것이다.

각종 경제지표는 ‘지방 소외론’의 배경을 더 극명하게 보여준다.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국내 1000대 기업 본사의 73.6%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또 지난해 △신규 취업자의 60.8% △지방세의 54.5% △법인세 58.5% △종합소득세 56.6% △종합부동산세의 79.1% △개인 신용카드 사용금액의 81%도 수도권에 집중됐다. 문재인 정부를 포함해 역대 정부가 강조했던 국가균형발전이 헛구호란 사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된 것이다.

◇수도권과 지방 간 갈등 = 재정과 권한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보니 지역이 느끼는 피해의식은 상당하다. 30년 넘게 시행 중인 수도권 규제를 둘러싼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해묵은 논쟁이 대표적 사례다. 수도권 규제는 1982년 공포된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라 수도권을 과밀억제권역, 성장관리권역, 자연보전권역으로 구분해 공장, 대학 등 인구 집중 유발시설의 입지를 억제하는 내용이다. 수도권 지방자치단체는 이러한 규제가 시행된 지 30년이 훨씬 넘었지만, 수도권 집중을 막지 못하고 기업 투자만 저해하고 있다며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규제로 수도권에 공장을 짓지 못하는 기업들이 중국, 베트남 등 해외로 빠져나가는 피해도 속출했다. 경기연구원에 따르면 수도권 규제를 강화했던 지난 2003년부터 5년간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옮긴 기업들은 141개에 불과한 데 비해 해외로 나간 기업이 1만6738개에 달했다.

하지만 비수도권 지방자치단체는 이를 두고 “수도권 규제가 없었다면 지역 간 격차는 지금보다 더 벌어졌을 것”이라며 “고사위기에 처한 지역 균형발전 차원에서 수도권 규제는 지속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2015년에는 비수도권 광역자치단체가 수도권 규제 완화 반대 1000만 명 서명운동에 나서며 정치권을 압박하기도 했다.

입법권을 지닌 국회의원들은 여야가 아닌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팽팽히 맞서, 수도권 규제 완화 문제는 각 정당에서 정치적 금기어가 된 지 오래다. 정치권이 사실상 손을 놓으면서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갈등의 골만 깊어지고 있다.

육동한 전국시도연구원협의회장(강원연구원장)은 “분권은 국가발전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중요한 기제이자 지역소멸 위기를 겪는 지방에서는 더욱 절실한 과제”라며 “분권을 체감할 수 있는 재정과 권한 등 핵심 이슈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도시경쟁력이 곧 국가경쟁력인 시대에 ‘수도권-비수도권’이라는 대립적 구도를 지속하면 국가 경쟁력 강화도, 국민 화합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정·자치분권 해외 사례 = 지방자치 강국 독일은 지방자치단체에 핵심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헌법을 통해 지방정부가 입법·재정·조직권 등을 독자적으로 갖고 있으며 이는 정책의 자율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독일의 자치입법권 및 자치행정권 기본법 제70조는 연방과 주의 입법 권한에 대해 구분하고 있는데, 중앙정부인 연방은 주와 지방자치단체보다 행정적으로 상당히 제한적인 업무만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 독일 주요 산업인 자동차와 항만기업의 본사가 주로 지방에 있어 지방이 수도인 베를린보다 더 잘사는 것이 독일에서는 일반적이다. 세계적 자동차 회사인 BMW(Bayerische Motoren Werke·바이에른 자동차공업 주식회사)는 지역의 본사가 있는 바이에른 지역의 이름을 회사명으로 사용했다.

특히 독일에서 주목할 점은 지역 간 재정력 격차를 해결하기 위해 연방정부가 시행하는 지방재정조정(Finanzausgleich) 제도다. 잘사는 주 정부가 가난한 주 정부에 재정을 지원하는 제도인데 주민 한 사람의 재정력이 전국 평균의 70% 이하인 주는 전국 평균의 91% 수준까지 재정조정이 이뤄진다. 또 재정력이 71~80%인 주는 93.5%까지, 81~90%인 주는 96% 수준까지 상향이 이뤄진다.

바이에른주에 있는 오버프랑켄 행정 관구 관계자는 “독일 각 지역에는 해당 분야에서 세계 1~2위를 다투는 히든 챔피언(강소기업)이 많이 있어 일자리가 풍부하다”며 “베를린으로 인구가 몰릴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지방소멸론이 제기된 일본은 일찍부터 대응책을 고심해 왔다. 지방자치, 지방분권도 비슷하다. 일본은 수도권 집중화, 인구 감소 등의 대책 마련을 위해 1995년 지방분권추진법을 시행하면서 지방분권 개혁을 시작했다. 지방분권추진법은 지방자치단체가 지역의 행정을 자주적이고 종합적으로 담당한다고 명시했다. 그 결과 일본 지방분권 수준은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다. 중앙정부의 지침이나 허락 없이 지역 스스로 자치단체의 통폐합을 추진할 수 있고 지역 의원 수도 정할 수 있다. 나가노(長野) 현에 있는 시나노마치의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많다.

일본은 지자체의 재정난으로 2003년부터 2005년 사이 전국 3232개의 지자체가 1820개로 합병됐다. 이 기간 시나노마치 주민들 역시 합병파와 자립파로 나뉘어 갈등을 겪었지만 결국 자립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마을 발전을 위한 대안을 모색했다. 주민들은 농·산촌이 안고 있는 과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마을의 지속 발전 방안을 최우선으로 고민했다. 그 결과 마을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산림을 활용해 산림치유 마을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마을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시나노마치는 현재 일본 산림치유의 1번지로 거듭났다.

춘천 = 이성현 기자 sunn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