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에 지친 영혼… 어린시절서 위로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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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영혼 / 올가 토카르축 글,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 이지원 옮김 / 사계절

프랑스의 철학자 폴 비릴리오는 자신의 철학을 ‘질주학(dromology)’이라고 불렀다. 비릴리오에 따르면 기술문명은 지금껏 속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달려왔다. 그는 우리가 더 이상 속도를 높일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을 때 마침내 어떻게 될 것인지 묻는다. 과속에 지친 사람들은 잠시라도 멈추기를 원하지만 세계는 ‘정지야말로 죽음’이라고 몰아붙인다. 그림책 ‘잃어버린 영혼’은 바로 이 과감한 정지를 시도해 속도에 매몰된 삶을 구원해내는 이야기다.

그림책을 펼치면 습기로 얼룩진 앨범 사이에 끼워둔 낡은 사진 한 장이 나타난다. 작가는 ‘누군가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본다면, 세상은 땀 흘리고 지치고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로, 그리고 그들을 놓친 영혼들로 가득 차 보일 거예요’라며 나직하게 말을 꺼낸다. 이어서 펼쳐지는 것은 눈 덮인 겨울 숲이다. 아이들은 장갑을 나눠 끼고 서로 안아주면서 추위를 녹이지만 어른들은 가방을 들고 어디론가 걷는다. 이들의 영혼은 주인의 속도를 뒤따라가지 못해 길을 잃은 지 오래다. 안타깝게도 영혼은 자신이 주인을 잃었다는 걸 알지만 그 영혼의 주인은 이 사실을 모른다. 일을 아주 많이, 빨리하는 사람으로 소문났던 얀은 자신이 수학공책의 모눈 위에서 움직이는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을 느낀다. 그리고 의사를 찾았다가 이것이 영혼을 잃은 자의 증세라는 것을 알고 그날부터 같은 자리에서 영혼이 자신을 찾아오기를 기다린다.

작가 올가 토카르축은 심리학을 전공한 올해의 맨부커상 수상자다. 그는 누구나 마음속에 갖고 있지만 돌보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자신을 만나는 과정을 글로 썼다. 요안나 콘세이요의 그림은 이 지루한 기다림의 속도를 서정적으로 재현한다. 더딘 영혼을 기다리면서 가만히 달라지는 풍경을 바라보는 사이에 우리는 어느덧 이것이 가장 본래의 속도라는 걸 알아차린다. 어린아이의 얼굴을 한 영혼이 얀의 눈앞에 섰을 때의 뭉클함은 이 기다림 덕분이다.

좋은 그림책 한 권은 맥박을 바로잡아주기도 한다. 빼곡하던 모눈종이도, 기나긴 시간을 세듯 모서리에서 툭툭 등장하던 한 귀퉁이의 숫자들도 점점 푸르게 뒤덮인다. 나도 모르게 과속 경고등을 거듭 무시하고 있다면 이 그림책을 펼쳐보기 바란다. 어른이든 청소년이든 제대로 깊게 숨이 트이는 것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한다. 48쪽, 1만8000원.

김지은 어린이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