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 女주민 옆방 남성 괴롭힘에 노숙… ‘乙들의 전쟁’

공사장 인부들이 성적 욕설
“화풀이 대상 필요한듯” 씁쓸
쪽방촌 이웃간 소음시비 잦아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인 김모(여·51) 씨는 2개월 전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에 월세 25만 원의 작은 원룸을 구했다. 20년 전 갑자기 폐 건강이 나빠진 김 씨는 가족에게 짐이 되기 싫어 쪽지 한 장을 남기고 집을 떠났다. 이후 전국의 고시원 등을 전전하던 김 씨는 최근 입주한 원룸에 만족했다. 크기는 작지만, 샤워실은 물론 세탁기와 냉장고까지 갖춰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 씨는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집이었다”고 말했다.

기쁨은 잠시. 이사한 첫날부터 옆방에 사는 남성들의 괴롭힘이 시작됐다. 술에 취해 문을 두드리는 것은 기본이었고 성(性)적인 욕설을 쏟아냈다. 문 앞에 가래침을 뱉기도 했다. 김 씨는 17일 “이들 대부분은 나와 같은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로 공사장에서 하루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이었다”며 “해코지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결국 김 씨는 서울역으로 ‘피신’해 노숙 생활을 하고 있다. 김 씨는 “두 달 동안 새집에 머문 건 열흘이 채 안 된다”며 “그래도 혹시 성폭행을 당하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것보다 마음은 편하다”고 말했다. 서울역 광장에서 만난 김 씨는 “그 사람들도 다들 못사는 처지라 화풀이 대상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씁쓸해했다.

중구 남대문로의 한 쪽방촌에선 주민 사이 폭행 사건도 벌어졌다. 낡은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이곳은 벽과 벽 사이가 1∼3㎝밖에 떨어지지 않아 소음 시비가 잦았다. A(71) 씨는 최근 이웃 B(90) 씨에게 “조용히 해달라”고 항의했다가 주먹으로 얼굴을 맞았다. 왼쪽 눈엔 멍까지 들었다. A 씨는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가 며칠 뒤 취하했다. A 씨는 “쪽방촌에 사는 사람 중엔 일도 하지 않고 정부에서 나오는 돈으로 매일 술판을 벌이는 경우가 많다”며 “모두 어려운 형편인데 고소해봤자 뭘 얻겠나 싶었다”고 설명했다.

최근 사회 곳곳엔 이처럼 을(乙) 간의 다툼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 어려워진 경제와 심각해지는 빈부 격차로 인한 각박한 현실을 반영하는 씁쓸한 사회현상이라는 지적이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보통은 약자끼리 연대가 단단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의식주와 같은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를 두고는 갈등을 빚는다”며 “특히 빈부 격차가 벌어지고 계급화되는 시대엔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 한다는 관념이 생기게 된다”고 설명했다.

손우성·나주예 기자 applepi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