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폐부 다 건드린 ‘고품격 막장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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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KY캐슬’ 엄청난 인기 왜?

탄탄한 연기·꼼꼼한 대본
시청자들 관심·욕망 자극

‘SKY 캐슬’(극본 유영미)이 2019년 초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만들고 있다. 지난해 11월23일 시청률 1.7%로 시작한 종합편성채널 드라마 ‘SKY 캐슬’은 지난 5일 방송 분량이 15.8%로 9배 가량 껑충 뛰었다. 그 사이 JTBC 역대 드라마 최고 기록도 새로 썼다. ‘왜 인기일까?’에 대해 분석하는 글도 넘친다. 성인과 아역을 가리지 않는 주·조연 배우들의 호연, 대한민국 입시 제도를 비판하는 꼼꼼한 대본, 등장인물의 죽음, 출생의 비밀 등 ‘막장’이라 불러도 반박할 수 없을 만큼 자극적인 소재 등이 손꼽힌다. 하지만 이런 표피 외에 ‘SKY 캐슬’은 보다 인간의 본질적인 부분을 건드리며 시청자들을 잡아 끈다. ‘고품격 막장’이라는 수식어가 썩 잘 어울리는 ‘SKY 캐슬’은 과연 무엇을 그리고 있을까?

◇가부장제 vs. 신데렐라 증후군 = 이 드라마는 시청자들의 댓글 경쟁이라는,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 중심에는 놀랍게도 남녀 대결이 명징하게 드러난다. ‘SKY 캐슬’ 속에서 부모(父母)라 불리는 남녀(男女)는 ‘자녀 교육’을 두고 충돌한다. 교육을 통해 그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부와 명예의 대물림이다. 이 드라마의 시작은, 총으로 자살한 이명주(김정난 분)가 아들을 서울대 의대에 합격시켜 3대째 의사 가문의 맥을 잇게 한 상황이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른 집도 매한가지다. 의사, 법조인 아빠와 같은 삶을 살게 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고문과 같은 교육을 강요한다. 로스쿨 교수인 차민혁(김병철 분)은 하버드 대학에 다닌다고 거짓말한 딸이 “아빠가 원하는 딸 노릇하기 싫어. 난 아빠 플랜대로 살기 싫어. 피라미드 꼭대기? 아빠도 못 올라간 주제에 왜 우리보고 올라가래”라고 외치자 망연자실한다. 결국 사회에서 꼭대기에 올라가지 못하고 집에서만 권위를 내세우던 그는 가장의 지위가 흔들리자 손찌검을 하고 만다. 가부장의 추락이다.

또한 이 드라마 속에서 이수임(이태란 분)을 제외한 대다수 여성이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한다. 특히 주정뱅이 아빠 밑에서 자란 한서진(염정아 분)은 신분까지 속이고 강준상(정준호 분)과 결혼하며 신분 상승을 꾀한다. 차민혁의 아내인 노승혜(윤세아 분)가 “박사과정을 수료하고도 애들 잘 키우는게 우선이지 싶어서 내 꿈은 다 포기하고 살아왔는데, 내 인생이 빈 껍데기 같아요”라고 눈물을 흘리는 것 역시 그가 피동적 삶을 살아왔음을 웅변한다. ‘suek****’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네티즌은 “자식도 자신의 열등감을 보상받으려는 수단으로 여기는 전형적인 신데렐라 증후군을 가진 여성들의 드라마”라고 꼬집었다. 이런 남녀의 상반된 목적성을 비튼 ‘SKY 캐슬’을 보며 이와 유사한 삶을 살거나, 그 언저리에서 배회하는 이들 모두 적잖이 씁쓸했을 법하다.

◇‘SKY캐슬’은 대한민국 사회의 축소판? = 이 드라마가 인기를 끌자 흥미로운 분석이 나왔다. 여주인공 5명이 모두 등장하는 포스터(사진)를 보자. 3선 국회의원의 딸인 노승혜와 서울 강남 건물주의 딸인 오나라는 각각 황금의자에 앉아 있다. 그들은 소위 ‘금수저’라는 의미다. 또한 오나라의 의자에는 팔걸이가 없다. 이는 오나라는 돈만 많은 집안의 딸일 뿐, 명예는 없다는 것이다. 한서진은 높은 나무 사다리에 앉아 있다.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은 그의 딸이 현재 전교 1등이기 때문이다. 자녀의 성적은 곧 부모의 위상으로 직결된다. 하지만 폭이 좁은 사다리는 영 위태롭다. 결국 가난한 집 안의 딸인 그는 출세의 사다리를 딛고 올라섰지만 언제든 떨어질 수 있어 보인다. 그리고 그 곁에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김서형 분)이 서 있다. 한서진의 딸 강예서를 가르치는 그는 사다리를 지탱하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언제든 밀어 떨어뜨릴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오직 이수임(이태란 분) 만이 의자에 앉지 않고 두 발로 서 있다. 어떤 환경이나 조건에도 굴하지 않고 소신있게 자신의 삶을 꾸리며 자녀를 교육하는 그의 모습과 일맥상통한다. 포스터 한 장 안에 대한민국이라는 생태계를 다 담은 셈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어떤 해석도 정답은 아니다. 결국 ‘SKY 캐슬’의 인기 원동력은 탄탄한 내러티브와 배우들의 호연으로 인한 드라마 자체의 재미를 넘어, 이를 보는 시청자들이 다양한 해석과 추측을 통해 그 이야기를 확장하는 동시에 참여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