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했던 젊음부터 ‘소설 50년’ 담아…신인처럼 설레”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오탁번 작가가 지난 4일 문화일보와 만나 “대학 재직중 절반은 교수로, 또 절반은 시인과 작가로 독하게 살았다”고 회고했다. 김동훈 기자 dhk@

등단 이후 작품 60편묶어 전집 펴낸 오탁번 작가

“절판 창작집 등 발표작 추려
시·공간 뛰어넘어 全作 출간

‘굴뚝…’등 지식인 비극그려
육사교수땐 10월유신 풍자

2019년 한반도 보수와 진보
서사문학 리얼리즘 담고있어
친일파 다룬 작품 써 보고파”

“등단 이후 50년간 쓴 소설을 모았다. ‘전집’이라는 표현 대신 ‘소설 오탁번’이라고 말하고 싶다. 거기엔 시공간을 초월해 절망에 몸부림치고 세상의 높은 벽 앞에 맨손으로 돌진하는 무모한 젊음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문단의 대표적 시인이자 국문학자인 오탁번(76) 작가가 최근 ‘오탁번 소설’(전 6권·태학사)을 펴냈다. 1969년 소설 등단작인 ‘처형의 땅’ 이후 지금까지 쓴 60여 편을 한데 묶은 것이다. 지난 4일 만난 오 작가는 “요즘 젊은이들은 나를 그냥 교수나 시인으로만 알지 싶다. 그러나 1980년대까지는 소설에 주력했다”면서 “30, 40년 전에 냈던 절판된 창작집과 그 후에 발표한 것들을 추렸다. 첫 창작집을 내는 신인처럼 설렌다”고 밝혔다.

오 작가는 고려대 재학생이던 196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196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된 데 이어 졸업 직후엔 대한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까지 석권하면서 ‘신춘문예 3관왕’으로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무엇보다 그때는 가난해서 학교에 다니기도 힘든 시절이었다. 신춘문예 상금으로 대학원에 갈 수 있어 다행이었다.”

이때부터 오 작가는 1980년대 말까지 50여 편의 중·단편을 쏟아냈다. 육군사관학교, 수도여자사범대, 고려대 교수를 거치며 강의와 창작을 병행했다.

그중 1973년 발표한 ‘굴뚝과 천장’, 1974년의 ‘우화의 집’은 오 작가의 문학적 지향을 엿볼 수 있는 명작이다. ‘굴뚝과 천장’은 1971년 모교 본관 다락방 강의실의 천장에서 11년 만에 시체로 발견된 고대생 사건이 모티프가 됐다. 고대생의 짧은 생애를 서사적으로 재구성해 사회변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실종된 지식인의 비극을 그렸다. ‘우화의 집’은 1972년 박정희 정권의 10월 유신을 풍자한 소설이다. 당시 오 작가는 육사 교수였다.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든 셈이었다. 아내에게는 내가 3∼4일간 집에 안 들어오면 AP통신에 전화하라고 당부해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육군 내부에 있어 오히려 검열에 안 걸린 모양이다.”

1986년 내놓은 ‘우화의 땅’은 고려시대 벼슬을 위해 아들을 거세시켜 내시로 들여보낸 사람들의 이야기다. “1980년대가 바로 ‘우화의 땅’이었다. 신념을 내던지고 권력에 빌붙는 지식인들이 고려시대 제 자식을 내시로 보낸 자들과 다를 게 없었다. 사람의 본능 속에 숨어있는 악마와 야만의 모습에 정말 놀랐다.”

하지만 오 작가는 고려대 재직 시절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담배를 나눠 피울 정도로 격의 없는 교수였다. 학생들은 그를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배우 로빈 윌리엄스에 비유했다.

오 작가는 2003년 고향인 충북 제천시 백운면의 한 폐교에 자신의 문학관을 겸한 ‘원서헌(遠西軒)’을 짓고 부인 김은자(전 한림대 교수) 시인과 함께 자연과 벗하는 삶을 살고 있다.

“2019년의 한반도는 보수든 진보든 다들 가슴 속에 죽창 하나씩 숨기고 상대방의 허를 노리고 있다. 바로 여기에 서사문학의 치열한 리얼리즘이 있다.”

오 작가는 앞으로 친일파 이야기를 써 보고 싶다는 의욕을 피력했다. 그는 항상 역사와 현실을 직시해왔으나 문학은 이념의 도구가 아니기 때문에 예술성을 우선 가치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그런 점에서 그의 향후 작업이 기대된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