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영화 ‘비틀스: 하드 데이즈 나이트’에서 폴 매카트니, 존 레넌 등 멤버들이 길거리를 질주하고 있는 모습. 이 영화는 풋풋하고 발랄한 비틀스의 하루를 담은 것으로, 1964년 공개됐다. 영화 제목은 비틀스 3집의 타이틀이기도 하다.
■ 윤성은의 스크린 인물학
- ⑥ 론 하워드 감독作 ‘비틀스: 에잇데이즈 어 위크-투어링 이어즈’
밴드탄생부터 마지막 공연까지
화려하고 분주했던 순간순간을
히트곡·영상·사진 통해 되살려
1963년 케네디 저격 사건 등
혼란에 휩싸인 미국인들 앞에
음악성·무대 매너로 사로잡아
드러머가 중간에 바뀐 사실 등
사생활과 부정적 내용은 빼고
전설적 존재로서의 모습만 그려
존 레넌·조지 해리슨 위한 애도
폴 매카트니·링고 스타 근황 등
인간적 면은 담지 않아 아쉬워
‘보헤미안 랩소디’(감독 브라이언 싱어)에 한껏 취한 가슴을 잠시 진정시키고 찬찬히 상기해보자. 퀸보다 먼저 미국을, 세계를 뒤흔들어놓았던 영국 밴드가 누구였는지. 빌보드 핫 100에서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 타임지가 선정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뽑힌 록 뮤지션은 바로 ‘비틀스’다. 이들은 1964년 4월 4일자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1위부터 5위까지 석권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비틀스가 대중음악을 넘어 문화와 사회에 미친 영향력이 지대하다는 사실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해서 새삼스레 자주 언급되지 않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는 비틀스 리더였던 존 레넌에 관한 전시 (‘이매진 존 레넌展’)가 조용히 열리고 있다. 내년이면 그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지 40주년이 된다. 여전히 폴 매카트니와 링고 스타의 소식이 들려오긴 하지만, 가끔 네 명의 멤버가 함께 했던 모습을 보고 싶다.
◇신드롬의 탄생
‘비틀스: 에잇데이즈 어 위크-투어링 이어즈’(감독 론 하워드·‘에잇데이즈’)는 제목 그대로 1주일을 8일처럼 살았던, 비틀스의 가장 분주했던 시기를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밴드의 탄생 과정부터 마지막 공연까지 화려하고도 치열한 순간순간이 수많은 히트곡과 사진 및 영상 자료, 멤버들을 비롯한 측근들의 인터뷰에 의해 생생히 되살아난다. ‘스플래쉬’(1984), ‘분노의 역류’(1991), ‘뷰티풀 마인드’(2001), ‘다빈치 코드’(2006), ‘한 솔로: 스타워즈 스토리’(2018)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흥행사로 인정받아온 론 하워드 감독은 비틀마니아(Beatlemania·비틀스의 팬들)라면 잘 알고 있을 비틀스의 이야기를 137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흥미진진하게 엮어 나간다. 형식상 특별할 것은 없지만, 각종 자료화면과 인터뷰 컷들을 세심하게 배치해 극영화처럼 드라마를 강하게 느낄 수 있다. 또한, 러닝타임이 흐를수록 비틀스와 그들 음악의 위대함을 받아들이게 되는 동시에 한 밴드의 가장 찬란했던 시절이 저물어 가는 데 대한 쓸쓸한 감정과 향수까지도 자극하는 다큐멘터리다.
다만, 감독의 깊은 애정과 존경 때문인지 생존 멤버들에 대한 예우 때문인지, 영화에서 비틀스는 이상적인 그룹 그 자체로만 묘사돼 있다. 즉, 이 전설적 밴드에 대해 조금이라도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내용은 생략돼 있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정보가 좀 더 필요한 부분도 보인다. 가령, 1960년에 존 레넌,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그리고 베이시스트였던 스튜어트 서트클리프는 피트 베스트라는 드러머와 함께 함부르크에서 공연했었는데, 스튜어트는 자진 탈퇴했지만, 훗날 매니저가 된 브라이언 엡스타인이 비틀스를 만났을 때까지만 해도 피트가 드럼을 맡고 있었다. EMI에서의 역사적 녹음을 앞두고 드러머가 교체된 것은 피트의 연주 실력이 모자란다는 이유였는데, 다섯 번째 비틀스 멤버로 불리는 음반 프로듀서, 조지 마틴의 요구였다는 설도 있고, 다른 멤버들이 더 원했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링고 스타(로리 앤드 더 허리케인스의 전 드러머)는 1962년 8월, 마지막 멤버로 합류해 비틀스의 모든 영광을 함께 하게 된다. 그는 대인관계가 좋고 유머 감각이 뛰어나 팀이 지속되는 데 큰 역할을 한 반면, 연주 실력에 있어서는 다른 멤버들보다 떨어진다는 말들이 계속 나왔다. ‘에잇데이즈’는 스튜어트나 피트의 존재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으며, 다음과 같은 폴의 인터뷰로 링고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일축한다. “링고와 처음 같이 연주했던 때가 아직도 기억나요. 연주를 하는데 굉장하더군요. 감탄의 순간이었죠. 우린 이렇게 서로를 쳐다봤는데, ‘바로 이거야!’였죠. 그때의 감동이 되살아나네요.”
아무렴 어떤가. 누가 뭐래도 링고는 팬레터를 압도적으로 가장 많이 받는 멤버였고, 비틀스가 출연한 리처드 레스터 감독의 영화들, ‘비틀스: 하드 데이즈 나이트’(1964)와 ‘헬프!’(1965)에서도 사건의 중심이 되는 캐릭터를 맡을 만큼 개성이 넘치는 멤버였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영화 ‘에잇데이즈’의 스틸 컷. 비틀스의 단골 무대였던 리버풀의 캐번 클럽 공연(왼쪽 사진)과 호텔방에서 멤버들이 멜로디를 맞추는 모습이다.
◇신화의 비결
‘에잇데이즈’에는 인물 다큐에 흔히 등장하는 멤버들의 유년 시절이나 사생활 등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일례로, 존이 첫 앨범 녹음 당시에 이미 기혼자였다는 사실을 영화를 통해서는 알 수가 없다.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1960년대 영국 밴드들이 미국 시장을 장악했던 현상)의 시조가 된 위대한 밴드를 조명하는데 그런 자잘한(?) 정보는 불필요하다는 판단이었겠지만, 영화의 이런 접근 방식 때문에 멤버들의 인간적인 면을 거의 볼 수 없다는 부작용도 있다. 리처드 레스터 감독의 영화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다큐에서도 이들은 유쾌하고 성공한 이상적인 젊은이들로, 이들의 조합은 평생 함께하고 싶은 최고의 친구들 관계로 묘사된다.
또한 하워드 감독은 멤버들 각자에게 개성을 부여하기보다 이들이 모였을 때 생겨났던 폭발적인 시너지에 주목하고, 비틀스라는 한 밴드의 행보를 따라가는 데 집중한다. 그래서 어떤 히트곡을 누가 작곡했다거나 하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같은 헤어스타일을 하고 같은 의상을 입은 멤버들의 모습에서 강한 유대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처럼 이 다큐에서 이들은 비슷한 시기에 유사한 감정을 표출하며 같은 방향으로 나아간다. ‘에잇데이즈’가 처음 보여주는 것은 일과 인기를 마음껏 즐기던 그들의 모습이다. 다큐의 3분의 2 정도는 시원하게 뚫린 성공 가도를 달리던 비틀스의 공연과 인터뷰 장면들에 할애돼 있다. 훌륭한 음악 실력과 무대 매너, 재치까지 갖춘 그들의 매력에는 21세기의 관객들도 넘어가지 않을 재간이 없다. 리버풀의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난 젊은이들이 엄청난 인파와 환호 속에 연주하는 신들에서는 매번 전율이 느껴진다.
영국 밴드인 비틀스가 미국에서 폭발적인 성공을 거둔 요인으로 많은 연구자는 먼저, ‘196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을 꼽는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감독 로버트 저메키스)에 잘 묘사된 것처럼 미국은 당시 엄청난 혼란을 겪고 있었다. 특히 1963년 11월 존 F 케네디 대통령 저격 사건은 일순간 미국인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이후 인권 운동이 주춤해지고 냉전 상태는 심화됐으며, 반전주의자들의 거센 시위도 잇따른다. 이런 상황에서 비틀스는 미국 대중이 아무런 경계와 편견 없이 몰입할 수 있는 존재로서 강력하게 군림할 수 있었다. 비틀스의 공연장에서 함께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따라 부르는 동안 인종, 나이, 성별의 차이는 사라졌다.
그러나 비틀스의 음악만큼 중요한 인기 요인은 없다. 존과 폴은 명실공히 천재적인 작곡가들로, 따로 또 함께 많은 명곡을 제조해냈다. 남무성(재즈 평론가)과 장기호(뮤지션)는 비틀스의 음악이 지금까지도 대중음악 작곡가들에게 창의적인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있다고 평하면서 곡의 핵심 주제가 처음에 나오고 여러 번 반복되는 ‘AABA’ 형식의 히트곡이 많음을 언급했다. (‘팝 잇 업!’(POP IT UP!), 북폴리오) AABA 형식은 ‘틴 팬 앨리’(Tin Pan Alley·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뉴욕 28번가를 중심으로 성공적인 대중음악을 만들었던 음반업자들과 작곡가 집단)가 흔히 사용했던 것으로, 불후의 명곡인 ‘예스터데이’는 그 대표 격이면서도 예상을 벗어나며 전개되는 것이 특징이다. 일렉트릭 기타, 드럼과 타악기 대신 어쿠스틱 기타와 오케스트라 현악기를 활용했다는 점, 솔로 보컬과 유려한 멜로디 라인에 걸맞은 볼륨을 사용했다는 점 등에서 이 곡은 매우 특별하다. 부드럽게 상승했다가 하강하는 멜로디 궤적과 가사의 일치 또한 비틀스의 정교한 음악성을 드러낸다. 아마 대중이 인지하는 이 곡의 아름다움은 무엇보다 여기에 있을 것이다. 래리 스타(음악학자)와 크리스토퍼 워터먼(음악인류학자)은 ‘예스터데이’를 분석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비틀스는 단지 좋은 로큰롤 그룹 이상이었거나 새로운 형태의 록 아티스트 이상이었는지도 모른다. 혹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무엇이었는지도 모르겠다.”(‘미국/대중음악’, 한울)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윤성은 영화평론가
“앨범, 투어, 앨범, 투어. 그게 밴드가 하는 일이야”라는 ‘보헤미안 랩소디’의 대사는 밴드의 숙명을 말해준다. 그 숙명에 신물이 난 것은 프레디 머큐리뿐만이 아니었다. 비틀스 멤버들은 세계 곳곳으로 공연을 다니는 동안 다양한 사건, 사고를 겪으며 급격히 지쳐갔다. 저 유명한 비틀스의 ‘베개 싸움’ 장면을 포착했던 사진작가, 해리 벤슨도 2년 반 동안 그들과 동행한 후, 이렇게 기술한 바 있다. “나는 그들(비틀스)처럼 살고 싶지는 않았다. 한밤중에야 간신히 외출할 수 있었을 뿐 그들은 완전히 호텔방에 갇힌 죄수나 다름없었다.”(‘Beatles-비틀스, 젊음, 그 영원한 기록들’, 마로니에북스) 비틀스는 1966년 8월 29일 샌프란시스코 캔들스틱 파크 공연을 마지막으로 투어를 중단한다. 라이브 시대를 끝낸 후, 그들은 앨범 작업에만 집중하며 이듬해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트 클럽 밴드’(Sgt.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같은 명반을 내놓았다. 대중음악을 예술로 승화시킨 최고의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바로 그 앨범이다.(‘비틀스 신화’, 모노폴리)
하워드 감독은 1969년 1월 30일, 센트럴 런던의 애플 본사 옥상에서 있었던 라이브 공연 실황을 영화의 마지막 장면으로 택했다. 당시 만연했던 멤버들의 해체를 둘러싼 불화설이나 오노 요코(小野洋子)의 이야기 따위는 삽입되지 않는다. 존과 조지에 대한 애도, 폴과 링고의 근황도 없다. 그저 ‘돈 렛 미 다운’(Don’t Let Me Down)의 강렬한 사운드와 자신들의 음악에 심취한 듯 행복한 표정으로 연주하는 비틀스의 모습만이 담겨 있을 뿐이다. 신화의 마지막 장으로 꽤 적절한 선택이다.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자란 이들의 마음속에서 네 사람은 여전히 함께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성은 영화평론가
(문예지‘쿨투라’편집위원·‘윤성은의 스크린뮤직’ 팟캐스트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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