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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9년 01월 29일(火)
환경은 ‘예술 잉태하는 자궁’…기후·풍토따라 유행사조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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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네, ‘해돋이-인상’. 아침 안개 속 일출의 강한 인상을 순식간에 그렸다. 형태의 윤곽이나 완성미가 없는 이런 방법의 그림이 지금은 익숙하지만 당시엔 너무나 전위적인 기법이었다. 캔버스에 유채, 48×63㎝, 1872년 작. 마르모탕 미술관 소장

■ 전준엽이 만난 美感의 세계 - ⑥ 자연의 옷을 입은 예술

날씨 좋고 풍광 아름다운 佛
빛 따른 색 변화 포착에 적합
‘인상주의’ 발전으로 이어져

獨, 음습한 기후에 척박한 땅
현상보다 안 보이는 세계 집중
‘표현주의’ 중심지로 떠올라

英엔 절벽·협곡 등 절경 많아
변화무쌍한 자연, 상상력 제공
神話 그린 ‘라파엘 전파’ 융성


▲  베크만 ‘자화상’. 베크만의 자화상은 외관을 닮게 그리려는 것이 아니다. 내면의 세계를 나타내려는 의도다. 캔버스에 유채, 140×95㎝, 1927년 작. 보스턴 부시 라이징 미술관 소장
자연환경은 예술이 태어나는 자궁 같은 역할을 한다. 자연이 아름다운 곳에서 풍경화가 번성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동양의 대표적 풍경 예술인 산수화가 발달한 곳은 수려한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중국 남부였다. 우리 전통 미술에서 산수화가 많은 부분을차지하는 이유도 빼어난 풍광을 가진 덕분이다. 추상적 문양이 발달한 곳을 보면 중동의 사막 국가나 툰드라 지역의 국가들이다.보이는 것이라고는 지평선과 흰 눈뿐인 척박한 자연환경이 빚어낸 당연한 결과다.

유럽 문화의 핵심축을 이루는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는 알프스 산맥을 공유하는 나라들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알피(Alpi), 독일은 알펜(Alpen), 프랑스는 알프(Alps)로 부르는데 모두 ‘희고 높은 산’이라는 뜻이다. 알프스산맥은 유럽의 문화적 지형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알프스 남부에 자리 잡은 이탈리아는 알프스를 병풍 삼아 지중해 기후의 혜택을 누려왔다. 따스한 햇볕은 풍요로운 자연을 연출해 이탈리아의 외향적 인성을 키워냈다. 자연이 든든한 친구와도 같았기 때문이다. 밝은 햇살과 푸른 바다가 힘을 모아 보여주는 자연 풍광은 일찍부터 예술이 발달할 수 있는 텃밭을 내주었다. 1년에 300여 일가량 맑은 날을 보장한다는 이탈리아에서 벨칸토 창법(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은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을 찬미하기에 적격이다. 테너가 기량을 맘껏 뽐낼 수 있는 이 창법은 드라마틱한 감성을 지닌 이탈리아 사람을 꼭 빼닮았다. 세계적인 테너 가수 대부분이 이탈리아에서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알프스 산맥 북쪽은 독일이다. 러시아 대륙으로부터 이어져 온 광활한 평원에는 북대서양의 차가운 기운이 음습한 기후를 연출한다. 지중해로부터 발원하는 맑고 따스한 기운은 알프스에 막혀 독일 평원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독일인들에게 자연은 극복해야 하는 두려운 대상이었다. 이런 자연환경은 독일인을 내향적이며 사색적인 기질로 만들어 주었다. 그런 이유로 신화, 철학이 발달했다. 독일인의 정서를 잘 드러낸 노래를 ‘리트’라고 한다. 깊은 사색을 담은 노래들이다. 이런 분위기를 제대로 표현하려면 바리톤 음색이 제격이다. 그래서인지 세계적 바리톤 가수 중에는 독일인이 많다.

알프스 서쪽은 프랑스다. 북대서양의 찬 기운과 지중해의 따스한 공기가 섞여 버라이어티한 기후를 연출할 수 있는 조건을 고루 갖춘 곳이다. 기름진 땅과 그 위를 떠다니는 짙은 습기 그리고 햇빛이 몽환적인 공기의 나라를 만들었다. 프랑스인의 노래 샹송이 왜 그토록 감미롭고 몽롱한 기분을 자아내는지 납득이 가는 대목이다.

▲  밀레이, ‘공기 요정에게 유혹당하는 페르디난드’. 셰익스피어 ‘템페스트’의 한 장면을 뛰어난 상상력으로 그렸다. 캔버스에 유채, 65×51㎝, 1849년 작. 개인 소장
인상주의는 가장 프랑스다운 그림 화법이다. 인상주의를 한 마디로 설명한다는 것은 실로 부질없는 짓이다. 너무나 복합적인 성격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소재가 다양하며, 그림 내용도 다채롭다. 그만큼 각기 다른 느낌의 작가도 많다. 그래도 굳이 한 사람을 꼽으라면 클로드 모네(1840∼1926)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우선 ‘인상주의’라는 말이 그의 그림 ‘해돋이-인상’에서 나왔고, 이 그림을 최초의 인상주의 그림이라고 말하니 어느 정도 타당성 있는 얘기다.

모네는 풍경화를 많이 그렸다. 그것도 프랑스 자연 풍광이 아름다운 곳을 찾아다니며 그림을 그렸는데, 시시각각 변하는 빛을 잡아내기 위해서였다. 같은 곳을 각기 다른 시간에 그린 그림도 있다. 같은 곳을 똑같은 방향에서 보고 그렸는데도 전혀 다른 그림으로 보인다. 빛에 의해 변하는 색채 때문이다. 빛이 보여주는 순간적인 인상을 그리려는 의도였다. 이게 인상주의 미학의 핵심이다.

모네 그림을 한참 보고 있으면 몽환적인 느낌이 든다. 마치 나른한 봄날 아지랑이가 아른거리는 들판에라도 온 듯하다. 모네 그림은 콧소리 많이 섞인 프랑스 말과 닮았다. 여러분이 모네의 ‘수련’이 걸린 갤러리에서 클로드 아실 드뷔시의 ‘바다’를 듣는다면 가장 프랑스적인 시청각 감성을 맛보는 일이다. 이게 프랑스 미감이다.

프랑스 말이 물처럼 흐른다면 독일어는 툭툭 끊어진다. 절도 있는 리듬의 언어를 쓰는 독일인은 이성적인 면이 강하다. 자연 현상을 느끼기보다는 ‘왜 그럴까’ 하고 따지려 든다. 감정이 일어나도 뱉지 않고 마음속에 쌓아둔다. 느끼기보다는 이해하려 한다. 눈에 보이는 세계가 진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웃한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자연은 보이는 그대로가 은혜로운 대상이었다. 풍부한 농산물은 다채로운 색채와 모습으로 눈을 즐겁게 해주면서 먹을거리까지 해결해 주는 자연의 선물이었다. 그러나 독일의 자연은 그렇지 않았다. 이런 혜택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척박한 땅은 고작해야 감자 정도를 키워낸다. 독일에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요리가 나오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척박한 자연환경은 햇빛조차도 인색하게 내준다. 그러다 보니 독일인은 햇빛을 찾아다닌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렇게 자연은 독일인들에게 늘 맞서서 이겨내야 하는 버거운 상대였던 셈이다. 극복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생각을 많이 해야 했던 것이다. 독일인은 맞서야 하는 자연을 보이는 그대로 인정하면 늘 지는 게임이라고 생각했다. 자연은 인자하지 않고 두려운 힘을 가졌으니까. 그래서 보이지 않는 세계와 자연을 움직이는 또 다른 힘이 있다고 믿고 싶었다. 이런 믿음을 상상력으로 풀어낸 것이 신화고, 현실로 끌어내기 위한 노력이 철학이다. 독일의 신화가 풍부하고 철학이 발달한 요인도 결국은 두려운 자연을 가진 덕분이리라.

보이지 않는 세계를 생각하다 보면 상상력이 풍부해진다. 상상력을 현실로 끌어내는 방식이 표현이다. 이성적인 면이 강한 독일인은 상상력을 현실의 이치에 맞게 끌어낸다. 그게 기술이다. 그것도 매우 수학적인 논리로 분석해 현실화시킨다. 20세기 최고의 공업 기술 국가가 될 수 있었던 힘이 여기에서 나왔다.

또한 상상력을 논리로 풀어내려는 태도에서 표현주의가 나온다. 독일인과 궁합이 잘 맞아떨어지는 예술 형식이다. 표현주의 운동은 프랑스가 먼저 시작했지만 독일에서 꽃을 피운다. 프랑스의 인상주의가 틀어쥐고 있던 서양미술의 주도권을 넘겨받게 되는 독일의 승리였다.

표현주의 초점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향하고 있었고, 이것을 개척하는 도구로 감성보다는 이성이 유리했기 때문이다. 인상주의가 자연을 바라보고 느끼는 것이라면 표현주의는 생각을 분석하고 논리로 풀어내는 것이다. 결국 보는 미술에서 생각하는 미술로 흐름이 바뀌게 되었다. 20세기 서양미술이 복잡하고 어려워지게 되는 이유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서양 현대미술의 본거지로 독일이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 온 것이다.

영국은 이야기의 나라다. 영국인이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치켜세웠던 셰익스피어는 불세출의 이야기꾼이었다. 딱딱한 정치, 역사도 극적인 드라마로 만들었으니.

이야기 중에서도 영국인들은 특히 환상적인 것을 좋아했다. 소인국, 대인국(걸리버 여행기/조너선 스위프트 작),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 나라 네버랜드(피터 팬/제임스 매슈 배리 작), 희한한 동식물과 괴물로 가득 찬 나라(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루이스 캐럴 작)를 만든 것은 모두 영국인들이다. 영국인의 환상 취향은 ‘반지의 제왕’(존 로널드 톨킨 작)과 ‘나니아 연대기’(클라이브 스테이플스 루이스 작)를 거쳐 ‘해리 포터’(조앤 K 롤링 작)로 정점을 찍는다.

두 세기에 걸쳐 전무한 출판 기록을 수립할 것으로 기대되는 ‘해리 포터’는 1997년 첫 권이 나온 후 2007년 7권으로 완결됐다. 그동안 67개국 언어로 번역돼 약 4억5000만 부나 팔렸다. 영화로도 만들어져 판타지 영화의 판도를 바꿨는데, 이를 통해 벌어들인 돈이 무려 8조 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 덕분에 가난한 무명작가였던 저자는 소설 하나로 세계에서 663번째 부자(2007년 집계 당시 기준)가 되었다. 이야기의 힘은 이렇게 엄청나다.

영국인의 이야기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들을 키워낸 자연이다. 영국은 북극을 지척에 둔 나라치고는 환경이 괜찮은 편이다. 많은 언덕과 평원, 호수와 폭포 그리고 절벽과 협곡이 빼어난 풍광을 가졌다.

멕시코 만에서 일어나는 따뜻한 기운이 대서양을 타고 오기 때문에 생각만큼 춥지도 않다. 겨울 평균 기온이 영상 4도라고 하니 상상외다. 여름은 16도를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선선하다. 북극에서부터 내려오는 찬 공기는 다양한 기후를 연출한다. 변덕스러운 날씨다. 하루에도 흐렸다 갰다를 서너 번씩 반복한다. 겨울은 밤이 길고 여름엔 낮이 길다. 하지 부근엔 백야까지 나타난다. 변화무쌍한 자연은 상상력의 보고다. 상식을 뒤엎기 때문이다.

영국인의 이야기 사랑은 미술에서도 보인다. 19세기로 들어서면서 유럽 대륙에서는 회화에서 이야기를 빼버리자는 흐름이 대세였다. 그런데 같은 시기 영국 회화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문학 작품이나 신화적 주제를 현실감 있게 표현하려고 했는데, 미술사는 이를 ‘라파엘 전파’로 기록하고 있다. 대표 작가 존 에버렛 밀레이(1829∼1896)는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모티브를 따와 걸작을 많이 남겼다.

그는 전례가 없는 요정까지 멋지게 창조했다.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 등장하는 캐릭터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이미지 대신 괴기스럽고 귀여운 모습이다. 박쥐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밀레이의 공기 요정은 영국인의 엽기적 환상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요즘의 감각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그래서 최근 붐을 이룬 판타지 모험 영화의 요정 모델이 되기도 했다. (문화일보 1월 8일자 22면 5 회 참조)

전준엽 화가·미술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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