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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김효정의 에로틱 시네마 게재 일자 : 2019년 02월 12일(火)
손이 고와 ‘욕구 해결사’ 하다보니… 뒷골목서 찾은 ‘웃픈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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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리나 팜’

손이 고운 여자는 마음도 곱다고 했다. 샘 가바르스키 감독의 2007년 작 ‘이리나 팜’(사진)은 손도 마음도 고운 매기(매리앤 페이스풀)의 애처롭고도 용감한 모성을 그린 코미디 영화다.

런던 외곽에 거주하는 매기는 가난하지만 아들 톰(케빈 비숍) 가족과 가까이에서 살며 그럭저럭 시간을 보내는 중년 여성이다. 매기의 일상은 원인 모를 병으로 마땅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입원 중인 손자 올리(코리 버크)를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손자를 볼 때마다 마음이 무너지지만 도울 방법이 없어 답답한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올리의 담당 의사는 호주의 한 의사가 그를 치료할 수 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다만 치료 비용은 매기나 톰이 감당할 수 없는 큰 액수다.

런던의 중심가로 나선 매기는 올리의 병원비를 위해 은행을 전전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담보가 없는 매기에게 돈을 빌려주려 하지 않는다. 침통한 심정으로 소호의 홍등가를 지나던 매기는 ‘호스티스 구함’이라는 표지가 걸린 스트립 클럽으로 들어간다. 청소일을 구하러 들어갔던 매기에게 클럽 사장 미키(미키 마뇰로비치)는 매기가 할 일은 없다고 단칼에 거절한다. 낙심하고 일어서는 매기의 손을 유심히 바라보던 미키는 그의 손을 만져보고는 일을 제안한다.

유난히도 보드라운 손을 가진 매기에게 미키가 제안한 일은 하룻밤 가격을 감당할 수 없는 남자 손님들에게 저렴한 요금에 자위를 해주는 일. 벽에 뚫려 있는 구멍으로 손님들이 성기를 넣으면 벽 너머의 매기가 욕구를 해결해 주는 것이다. 일본 도쿄(東京)에서 성행하는 것을 벤치마킹했다며 히죽거리는 사장 앞에서 매기는 한도 끝도 없는 모멸감을 느끼지만 그가 제안한 적지 않은 보수에, 그리고 떨쳐 낼 수 없는 손자에 대한 측은지심에 밀려 매기는 일을 수락한다.

매기는 ‘속도조절’이 관건이라는 동료의 조언대로 성실히 연습한 후 곧 실전에 임한다. 다양한 모양을 지닌 손님의 성기에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매기는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클럽에서 단골이 가장 많은 직원이 된다. 매기의 벽 앞에 매일 길어지는 손님의 줄을 보며 만족한 미키는 자신의 첫사랑 이름을 빌려 ‘이리나 팜’이라는 간판을 달아준다.

▲  김효정 영화평론가
서민을 위한 ‘욕구해결사’의 역할에 서서히 만족감을 얻는 매기는 자위를 해주는 동안 책을 읽는 경이로운 경지에 이른다. 일을 시작한 후 동네 친구들을 피하던 매기는 새 직업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는 친구들에게 자신이 목격한 잊지 못할 성기를 소개하며 자신의 무용담을 풀어낸다. 안타깝게도 이리나로서의 새 삶은 엄마의 비밀을 알아버린 톰으로 인해 위기를 맞는다. 갑자기 6000파운드에 가까운 병원비를 들고 들어온 엄마가 의심스러워 뒤를 밟았다가 충격을 받은 톰은 일을 그만두지 않으면 올리와 만나지 못하게 하겠다고 통보하고는 떠나버린다.

그렇게 이리나는 다시 매기로 돌아오지만 예전의 삶은 이제 너무 밋밋해져 버렸다. 더 큰 사건은 매기가 미키를 사랑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미키는 이리나 팜을 정리하겠다는 통보를 하러 클럽에 들른 매기에게 자신의 전 재산을 모아 짓고 있는 별장사진을 보여주며 매기와 함께 하고 싶음을 고백한다.

장르와 성향이 다름에도 이 영화는 사회보장제도의 무력함을 고발한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떠올리게 한다. 매기가 죽어가는 손자를 위해 대출을 받으러 은행을 전전하는 대목, 그리고 담보도 없는 그를 경멸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은행 직원과의 에피소드는 복지사무실에서 먼지 취급도 받지 못하는 다니엘과 그의 저소득층 이웃들을 비추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초반부와 유사하다. ‘이리나 팜’은 코미디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계급 불평등에 대한 은유로 풍성하다.

돈이 없어 긴 밤을 즐기지 못하는 가난한 자들에게 역시 가난으로 병원비를 마련하지 못한 매기가 자위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설정은 영화의 코믹한 설정을 넘어 사회비판과 계급의 연대를 암시하는 이 영화의 굵직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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